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여름 읽었던 미스테리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허즈번드 시크릿>이다. 그 책의 작가 리안 모리아티의

또다른 책을 발견하곤 의심없이 읽기 시작했다. 제목도 마음에 탁! 얹힌다. 표지그림을 보니 어린시절 재미로, 혹은 약간의 허세나 악의로 시작한 정말이지 작은 한마디에 두고두고 마음졸였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폭발하고 있는 알록달록한 막대사탕 이미지가 참 여러가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달콤한을 산산이 깨뜨리는 조그마한 뇌관, 그 사소한 거짓말을 찾아서...


이야기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우아한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초등학교가 바로 보이는 곳에 살고있는 노부인에게서 시작된다. 그녀는 어느날 학교 모금행사인 퀴즈대회에서 심상치않은 소란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살인사건이었다. 담당 경사 앞에서 여러 학부모들이 조각난 의견을 내놓고, 그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이 사건이 엄마들 사이의 전쟁에서 시작되었음이 감지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퀴즈대회 6개월 전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소설의 가장 특별한 점은 피해자가 나중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토리는 점점 퀴즈대회 당일을 향해 나아간다. 이 인물들 중에서 과연 '누가 죽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읽어가니 '누가 죽였는가'를 추리해가는 것보다 오히려 더 미스테리하고 스릴이 있었다.


학부모들 사이에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의와 형식적인 미소 등으로 교묘히 포장된, 갈등과 알력들이 많이 있다. 모두들 '내 자식'이라는 민감한 폭탄을 한두개씩 들고 모여앉는 모임이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도 보여지듯이 영재반에 들어간 아이들의 엄마와 평범한 아이들의 엄마, 일하는 엄마들과 전업주부(파트타임) 엄마들, 학부모회에서 활동하는 엄마들과 그렇지 않은 엄마들...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저기 금이가서 아슬아슬 세워져있는 탑이 이와 같을까? 어쨋든 어린 미혼모가 다섯살 아이를 예비학교(아마도 병설 유지원 정도인듯)에 보내면서, 이 아이와 엄마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갈등들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퀴즈대회에서 폭발해버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폭발은 결국 결정적이고 진정한 '악' 앞에서는 모두가 한 팀이라는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학교 엄마들 사이의 갈등이란 것은 결국 '내 아이'에 대한 조금 과도한 사랑의 표현일 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은 같은 편일 수 밖에 없다는걸  말이다. 악의없는 개인적이고 사소한 마찰은 각자에게 에너지 같은 걸 주기도 하고, 자신만의 색을 드러나게도 하고, 또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도 하는 순기능까지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정도의 갈등에는 거창한 이해관계 같은건 끼어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 두툼한 소설 속에는 여러 인물들의 가정사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소재들이 다뤄지고 있다. 가정폭력, 외모지상주의, 복잡한 사회에 노출되면서 점차 흐려지는 자기확식 같은 것들. 또한 작가는 사소한 거짓말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겨자씨만큼 작아보이는 거짓말도 언제든 큰 나무가 될 수 있는 싹을 감추고 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시 인간과 사회를 관찰해서 그대로 써내는 발자크의 사실주의 소설작품, 고리오 영감.

발자크는 고전주의 작품을 조금도 차용하지 않고, 내용이나 구성, 언어에 있어서도 날것 그대로를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모든것을 소설을 통해 완벽히 그려내려고 했다고 한다. <인간 희극>이라는 큰 틀 안에 모두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 했는데 결국 완성된 것은 91편, 그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가 바로 <고리오 영감>이다. 각 소설들이 커다란 덩어리의 일부라는건 극 중 인물들이 다른 작품에서 다시 등장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인물 재등장 기법)


이 소설은 당시 파리의 한 하숙집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장황하게 묘사되지만 비루한 하숙집 풍광, 그리고 그 곳에 사는 역시나 비루한 고리오 영감.

그는 한 때 많은 부를 소유했지만 두 딸의 허영심 혹은 본인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점점 몰락해간다.

또다른 축을 이루는 법대생 으젠,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들의 희망을 업은채 파리에 상경했지만 두꺼운 법전과 현란한 파리의 사교계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결국 죽음을 앞에 둔 고리오 영감. 하지만 두 딸은 찾아오지조차 않는다. 마침내 후회하고 딸들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그것을 죽음을 코앞에 둔 바로 그 순간이었을 뿐이다. 으젠은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사람들의 이기심과 속물성에 치를 떨지만 마지막에 다시 고리오 영감의 둘째딸네로 저녁을 먹으로 간다. 뭐지? 뒷이야기가 다시 궁금해진다. 이제 <고리오 영감>은 끝이나고 으젠 라스티냐크를 중심으로 새로운 소설이 시작될것만 같다.


사실 읽으면서 조금 지루했었다. 단순한 핵심에 다다르기 위해 지나치게 먼 길을 빙빙 도는 느낌이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해설을 읽고,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결 의미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멜로드라마적 비극성과 인간사의 희극성이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극적인 내용을 묵직한 비장미없이 우스꽝스럽게 그린 느낌이다. 작품 속에 매력적인 범죄자로 등장하는 보트랭의 뒷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인간들은 악덕은 용서하면서도 어떤 인간의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짓은 용서하지 않는 법이다."

"어쩌면 진정한 겸손이나 무기력 또는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에 고통받는 사람에게 계속 참으라고 하는게 인간 본성일까?"

"결국 그는 그녀에 대해서 이치를 따져주는 역할을 할 힘과 그녀 마음을 언짢게 할 용기와 그녀와 헤어질만한 덕성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즉 애정의 원이 자기들과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덜 사랑하게 되고, 멀어질수록 더욱 친절해진다."

"자기 견해를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이란 항상 외곬에 빠진 사람이고, 자신이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 바보일세. 원칙이란 결코 없네. 단지 사건들만 존재한다네."

"파리라는 좋은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의 하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태어나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이오. 그러니 이러한 문명의 혜택을 누립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간과 마음을 들여 이 책을 읽었지만, 막상 무엇을 적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책머리에 적어두시고 훌쩍 떠나버리신 신영복 교수님의 '따뜻한' 담론을 거친 몇글자로 정리하려니 당연히 막막하다.

그저 곁에 두고 내 마음이 식어갈 때, 내 발이 게을러질 때 수시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학기 동안 이루어졌던 2014년의 강의녹취록을 저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간과 세계와 관계에 대한 공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발로 내려왔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공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언제까지고 계속 해나가야할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1부에서는 동양철학을 통해서 2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주신다.


컵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바닷물이기는 하지만 이미 바다가 아니라는 비유를 들어 언어(문학, 사회학, 철학)만으로 세계를 올바로 표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들며 詩書畵樂을 이야기하고, 이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자들의 사상을 간결하고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 귀에만 익숙했던 동양사상들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것 같았고, 그 사상이 오늘날에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상은 노장사상이었다.노자의 말씀 중 "有가 이로움이 되는 것은 無가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과 "자연은 획일적 형식이 없기 때문에 닳거나 다함이 없다."는 말씀은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되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듯 자연은 탄생이래 무엇하나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느 한순간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마치 완성된 그림이나 음악곡처럼 느껴진다. 어떤 한 지향을 향해 나아가지 않기에 억지로 꾸미지 않지만(無爲) 극히 자연스러운 미완성의 상태라니, 열마나 경외스러운가... 또한 장자의 反기계론은 내겐 매우 새로웠으며 오늘날 기계문명에 대한 통찰적 시각과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1810년의 러다이트운동이 단지 기계의 자본주의적 채용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반면, 장자의 문제의식은 기계는 道를 실현할 수 없게 한다는데에 있었다. 노동을 생산요소가 아닌 '생명의 존재형식'으로 인식하고 노동 자체를 인간화하고 예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속도와 효율, 더 많은 소유와 소비를 지향하는 우리 시대의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었다.


2부는 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소개된 일화를 매개로 '공부'를 가르쳐주신다. 기억하고 새겨두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은데, 특히 인간이 상품화 되어가고, 심지어 교환가치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인간을 위해 사회가 있어야하는데 사회와 조직에서 가장 소외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 여행이라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다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정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과를 쪼개면 그래도 쪼개진 각각의 조각이 여전히 사과입니다. 만약 사람이나 토끼를 쪼갠다고 하면 그 쪼개진 조각을 여전히 사람이나 토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상화, 타자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는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유목주의가 바로 탈근대의 철학적 주제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옆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핵심을 요약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식은 壓骨美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상품사회는 이처럼 상품-화폐 구조 속에 우리를 가둠으로써 인간적 정체성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우리들의 미적 정서 그 자체를 역전시킵니다. 그리고 변화 그 자체를 이미지화함으로써 현실의 개혁과 진정한 변화의 열정을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모름다움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생산이란 이름으로 자연 자원과 인간 노동을 사용한 다음 자연과 인간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습니다. 가져왔으되 도로 돌려놓지 않은 부분 즉 外化된 부분을 생산이라고 합니다. 가치 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염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이 토끼였을 때
세라 윈먼 지음, 정서진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내게는 낯선 작가, 세라 윈먼. 그럼에도 제목과 표지가 예뻐서 거침없이 읽기 시작했다.

책날개를 보니 배우에서 소설가로 변신했다는 작가의 첫소설이다. 이 소설로 여러가지 상을 받았다고도 쓰여있다.

어쨋거나 신과 토끼라니.. 내용이 궁금해진다.

When God Was a Rabbit.


조금은 특별한 남매의 성장이야기이다. 그들이 '신'이라 이름지은 애완토끼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신이 죽고 어른이 되어서의 이야기로 크게 나뉘어진다.


문장 자체에서 조금 특별하게 읽혔던 점은 현재의 사건과 상황이 종종 미래에 일어날 일과 연결되어 묘사되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아빠는 흇날 많이 이들이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하게될 사기꾼을 돕고 몇가지 옵션을 제시하기 위해 막판 협상에 불려나가고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그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걸 몰랐다. 어쨋든 훨씬 나중까지."


내용은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겪게되는 일들에 대한 것이다.

우연한 만남과 이별, 때론 더 아픈 이별, 행운, 문득 반짝이는 한 순간, 예기치못한 비통함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독특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두 남매는 이런 순간을 더 심하게 앓는다. 읽는 독자도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상처받고 대체로 외로워지지만 그래도 그들의 이야기는 눈이 부시다.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둘 사이의 관계가 또한 부럽게 다가온다.

한편으로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작품 속의 여러 인물들 역시 더 자유롭고 더 두려움없는 이들을 질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는 늘 채워지지않는 욕망 같은 것 때문에 속을 끓이게 마련인 모양이다. 서글프면서도 위로가 된다. 또한 한쪽을 꾸준히 채워가면서 다른 한 귀퉁이부터는 어쩔수 없이 무언가를 상실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지만, 시간만으로 완전히 치유되는 상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소녀 엘리에게는 비밀을 공유하고 지켜줄 오빠 조가 필요했고, 마침내는 관계 속에서 상처를 천천히, 불완전하게나마 치유받을 수 있었다. 더이상 곪지않게 서로의 상처를 덮어주며 세상을 견디고 성장한 두 남매의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물들 마카롱 에디션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19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두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의 이야기이다.

너무나도 풍요로운 시대, 교양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富를 추구하며, 때론 풍요를 즐기고 대체로 좌절한다.

사회 초년병,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상품개발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프리랜서 사회심리조사원인 이들은 나름 열심히 일하지만 또한 젊음을 즐긴다. 사무실에 들어앉아 승진에 목을 메고, 화를 참아가며 일하기를 원치 않지만 후일에 대한 불안 또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무모한 젊음을 향유하고, 좌절하고, 무작정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사회로 진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적확한 단어들로 날카롭게 풀어내고 있다.


60년대 파리가 배경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비슷한 대도시에서 사물들에 휩싸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읽혔다. 점점 늘어만가는 필수품 리스트, 옵션이 어느새 기본이 되어가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비 만능주의에 쫓겨 한없이 자꾸만 멀리멀리 밀려가는 느낌이랄까.


카페에 비치된 사치품 잡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 위험한 잡지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허상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이를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바로 이 점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모든 것이 귀했던 때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단지 소유하기만 해도 충분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넘쳐나고, 다만 소유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것'을 가졌는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어버렸다. 취향 따위를 논하기에는 선택지가 너무나 빈약했던 성장기를 거졌지만 이제는 점점 취향없는 물건을 견디기 힘들어지고, 원래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개인적인 소지품에서 치약 하나까지도 엄격히 고르는 생활에 젖어버린 것 같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한 생활, 물건들을 위해 내가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건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행복감과 충만감은 너무나 짧은 순간만 허락되고 쉽게 터져버린다. 그러면 다시 행복을 보장해 줄것만 같은 물건을 찾아나서야하는건가..


그 모든 물건의 종착지는? 문득 태평양 바다에 조류에 밀려 어마어마한 크기로 떠다닌다는 쓰레기섬이 떠올랐다.


다시 두 젊은 부부에게로 돌아가보면,

무언가를 계속 누리는듯 하지만 엄밀한 현실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어 늘 박탈감에 시달렸던 제롬과 실비. 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제자리에 머물러있을 줄 알았지만 물건들이 소모되어가고 빛이 바래듯이 찬란했던 그들의 젊음도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되어 간다.


"그리고 한참 후 그들은 풍요의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점 궁핍한 섬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라기 보다 탈출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들은 튀니지로 떠난다. 그들은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이 낯선 느낌은 갈수록 심해져서 그들을 거의 짓누르다시피했다. 그들 앞에 아무 할 일 없는 긴 오후, 기대할 것 없는 일요일이 돌아오면 (중략) 그들은 몇시간이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인생은 흘러갔다."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 삶."


마침내 "그들은 더는 욕망하지 않았다."


사물은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 되었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소중한 삶을 흔들어대도록 놓아둔다면, 우리를 지탱하는 축이 되도록 한다면 정말이지 초라한 삶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