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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 ㅣ 마카롱 에디션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19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한 두 젊은 부부 제롬과 실비의 이야기이다.
너무나도 풍요로운 시대, 교양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시대 속에서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富를 추구하며, 때론 풍요를 즐기고 대체로 좌절한다.
사회 초년병, 소비자 인터뷰를 통해 상품개발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프리랜서 사회심리조사원인 이들은 나름 열심히 일하지만 또한 젊음을 즐긴다. 사무실에 들어앉아 승진에 목을 메고, 화를 참아가며 일하기를 원치 않지만 후일에 대한 불안 또한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무모한 젊음을 향유하고, 좌절하고, 무작정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사회로 진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적확한 단어들로 날카롭게 풀어내고 있다.
60년대 파리가 배경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비슷한 대도시에서 사물들에 휩싸여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읽혔다. 점점 늘어만가는 필수품 리스트, 옵션이 어느새 기본이 되어가고, 아주 사소한 디테일 때문에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비 만능주의에 쫓겨 한없이 자꾸만 멀리멀리 밀려가는 느낌이랄까.
카페에 비치된 사치품 잡지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 위험한 잡지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허상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이를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바로 이 점이 그들에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모든 것이 귀했던 때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단지 소유하기만 해도 충분했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넘쳐나고, 다만 소유의 유무가 아니라 '어떤 것'을 가졌는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되어버렸다. 취향 따위를 논하기에는 선택지가 너무나 빈약했던 성장기를 거졌지만 이제는 점점 취향없는 물건을 견디기 힘들어지고, 원래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개인적인 소지품에서 치약 하나까지도 엄격히 고르는 생활에 젖어버린 것 같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한 생활, 물건들을 위해 내가 봉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건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행복감과 충만감은 너무나 짧은 순간만 허락되고 쉽게 터져버린다. 그러면 다시 행복을 보장해 줄것만 같은 물건을 찾아나서야하는건가..
그 모든 물건의 종착지는? 문득 태평양 바다에 조류에 밀려 어마어마한 크기로 떠다닌다는 쓰레기섬이 떠올랐다.
다시 두 젊은 부부에게로 돌아가보면,
무언가를 계속 누리는듯 하지만 엄밀한 현실로 돌아오면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어 늘 박탈감에 시달렸던 제롬과 실비. 모든 것이 그대로이고, 제자리에 머물러있을 줄 알았지만 물건들이 소모되어가고 빛이 바래듯이 찬란했던 그들의 젊음도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되어 간다.
"그리고 한참 후 그들은 풍요의 바다 위에 떠있는 한 점 궁핍한 섬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라기 보다 탈출에 가까운 심정으로 그들은 튀니지로 떠난다. 그들은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이 낯선 느낌은 갈수록 심해져서 그들을 거의 짓누르다시피했다. 그들 앞에 아무 할 일 없는 긴 오후, 기대할 것 없는 일요일이 돌아오면 (중략) 그들은 몇시간이고 돌아다녔다."
"그들의 인생은 흘러갔다."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 삶."
마침내 "그들은 더는 욕망하지 않았다."
사물은 공기처럼 우리 곁에 있어야만 하는 그 무엇이 되었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소중한 삶을 흔들어대도록 놓아둔다면, 우리를 지탱하는 축이 되도록 한다면 정말이지 초라한 삶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