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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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마음을 들여 이 책을 읽었지만, 막상 무엇을 적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책머리에 적어두시고 훌쩍 떠나버리신 신영복 교수님의 '따뜻한' 담론을 거친 몇글자로 정리하려니 당연히 막막하다.

그저 곁에 두고 내 마음이 식어갈 때, 내 발이 게을러질 때 수시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한학기 동안 이루어졌던 2014년의 강의녹취록을 저본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인간과 세계와 관계에 대한 공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다시 발로 내려왔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공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제대로 살아내기 위해 언제까지고 계속 해나가야할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1부에서는 동양철학을 통해서 2부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가르쳐주신다.


컵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바닷물이기는 하지만 이미 바다가 아니라는 비유를 들어 언어(문학, 사회학, 철학)만으로 세계를 올바로 표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들며 詩書畵樂을 이야기하고, 이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동양철학자들의 사상을 간결하고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 귀에만 익숙했던 동양사상들이 조금이나마 정리되는 것 같았고, 그 사상이 오늘날에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상은 노장사상이었다.노자의 말씀 중 "有가 이로움이 되는 것은 無가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과 "자연은 획일적 형식이 없기 때문에 닳거나 다함이 없다."는 말씀은 두고두고 곱씹어보게 되었다. 질량보존의 법칙이 여전히 유효하듯 자연은 탄생이래 무엇하나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느 한순간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마치 완성된 그림이나 음악곡처럼 느껴진다. 어떤 한 지향을 향해 나아가지 않기에 억지로 꾸미지 않지만(無爲) 극히 자연스러운 미완성의 상태라니, 열마나 경외스러운가... 또한 장자의 反기계론은 내겐 매우 새로웠으며 오늘날 기계문명에 대한 통찰적 시각과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1810년의 러다이트운동이 단지 기계의 자본주의적 채용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반면, 장자의 문제의식은 기계는 道를 실현할 수 없게 한다는데에 있었다. 노동을 생산요소가 아닌 '생명의 존재형식'으로 인식하고 노동 자체를 인간화하고 예술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속도와 효율, 더 많은 소유와 소비를 지향하는 우리 시대의 집단적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이었다.


2부는 주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소개된 일화를 매개로 '공부'를 가르쳐주신다. 기억하고 새겨두고 싶은 말씀이 너무 많은데, 특히 인간이 상품화 되어가고, 심지어 교환가치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었다. 인간을 위해 사회가 있어야하는데 사회와 조직에서 가장 소외되는 것은 바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 여행이라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다시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정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 공부는 진실의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과를 쪼개면 그래도 쪼개진 각각의 조각이 여전히 사과입니다. 만약 사람이나 토끼를 쪼갠다고 하면 그 쪼개진 조각을 여전히 사람이나 토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상화, 타자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차이는 자기변화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출발이어야 합니다. 차이는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어야 하고, 학습의 교본이어야 하고, 변화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유목주의가 바로 탈근대의 철학적 주제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톨레랑스는 은폐된 패권논리입니다. 관용과 톨레랑스는 결국 타자를 바깥에 세워두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옆사람을 향하여 부당한 증오를 키우지 않기 위해서 그 증오를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드러내고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감옥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공부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핵심을 요약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식은 壓骨美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상품사회는 이처럼 상품-화폐 구조 속에 우리를 가둠으로써 인간적 정체성을 소멸시킬 뿐 아니라 우리들의 미적 정서 그 자체를 역전시킵니다. 그리고 변화 그 자체를 이미지화함으로써 현실의 개혁과 진정한 변화의 열정을 소멸시키고 있습니다. (모름다움의 권력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우리가 생산이란 이름으로 자연 자원과 인간 노동을 사용한 다음 자연과 인간을 원상태로 돌려놓지 않습니다. 가져왔으되 도로 돌려놓지 않은 부분 즉 外化된 부분을 생산이라고 합니다. 가치 창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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