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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을 포스팅하다보니
갑자기 이 책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맞아.. 이 비슷한 책이 있었지...'
한 때 독특한 소재와 섬세한 묘사가 좋아서 열심히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왠지 싫증이 나서 덮어두었었는데
지난달, 예쁜 표지에 덥석 빌려와 읽었다.
<두번째 봄>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식구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라는 어린시절 이야기와
작가의 싹을 틔우고 키워가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만의 家를 이룬 한 남자를 필두로
그 남자의 城에서 살아가는 가족(자녀와 손자녀)들 이야기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자라나고, 자신의 生을 꾸려간다.
오랫만에 읽었지만 여전히 '그녀만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바로 이 느낌이었어...'하는 느낌.
그녀만의 인물들이 궁금하고,
가끔은 나와 合이 딱 맞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에쿠니 가오리, 당분간 안녕~' 이었다.
그녀의 소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1. 감각적이고 멋져보이고 혹은 쿨해보이는 많은 것들이 총출동하는 소설.
2.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내게는 그다지 소용이 닿지않는 물건같은 느낌.
3. 그럼에도 눈길이 가고, 바라보면 흡족하고, 막상 손에 넣고보면 살짝 실망하고마는 무엇.
*책 속 문장들과 토달기
(107쪽)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기질, 인격을 드러내거나 혹은 은폐하기 위한 대화, 거기서 생겨나는 빛나는 착오."
(122쪽) "무척 가정적이고 따스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이 집의 거실은 어김없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나의 도피벽이나 연약함과 상관있는지도 모른다."
// 무언가 완벽해보이는 대상은 내게 이제 무너질 일만이 남았다는 공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도피벽이 있고, 연약한 모양이다.
(419쪽)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내가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싶어하는지 어떤지. 사회라든지, 개인적인 규범도 법률도 아닌 규칙이라는지, 예의 이상의 협동심이라든지, 타인과 올바르게 거리를 두는 법이라든지, 요즘의 놀이방식이라든지, 폭력을 회피하는 방법이라든지? 사람은 대학에서 학문 이외의 대체 무엇을 배우는걸까."
//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미덕' 같은걸 모두 배운다고 해서 제대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세상살이는 언제나 case by case. 어렵기만 하다.
(457쪽) "샤워.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그거였다. 호텔 방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고 향수를 뿌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더구나 꼬치구이며 이탈리안 샐러드며 와인이며 소주 따위의 후텁지근한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내가 씻어내고 싶었던 건 그런 냄새라기 보다 사람들의 목소리며 웃는 얼굴, 그 방에 소용돌이치던 개개인의 사정이랄까 생활감이었다."
(493쪽) "하지만 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못 한 기분이다. 나는 데릭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녁 하늘이 파랬던 거며, 조사를 읽어준 젊은 사장이 마지막에 '잘가요, 기리노스케씨'라고 한 것, 화장터의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던 것, 영정 속 외삼촌이 웃고 있었던 것, '기리바코' 조크도."
//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다시 내 속으로 꿀꺽 삼켜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저 안부를 묻거나, 서툰 웃음을 짓고마는 것이다.
(579쪽) "그러면서도 묘한 일이지만 이 방에 있다보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略)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이 집의 기억이리라. 왜냐면 내가 알 리 없는 소리까지 가끔 방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