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시대에나 착취와 피착취의 구조는 늘 있어왔다. 특별히 그런 구조가 극에 달했던 식민지 시대를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점례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왜? 나라없는 백성이 되었는가? 언제까지나 이러고 살아야 되는 걸까? 아무런 해답도, 전망도 가지지 못한 채 휘둘리며 살아야 했던 그녀였다. 결국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 아버지에게서 세 자녀를 둔 점례. 이 세 아이의 출생은 우리의 아픈 한 시절을 각각 드러내보인다. 하지만 세 자식을 위해 어떻게든 삶을 꾸리고 그들을 키워내는 이야기는 점례 한 사람으로서는 실패의 역사이면서 한편으론 성공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늘 긴밀히 이어진 과거로 인해 각성되고 방해받는다. 언제라도 끊임없이 끼어드는 과거들로 휘청이며 살아가는 현재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왔고 또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제 나이 든 그녀는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글로 써내려가는 것을 '현재'의 일로 삼기로 한다. 그렇게 <황토>의 이야기는 완성된다.



"나를 자신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누구라도 자살을 결정해선 안된다. 그건 곧 '살인'이 되니까"

"의심을 받는 진실의 억울함보다 믿음 앞에서 거짓을 비밀로 감추는 괴로움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중략)  그 사람의 믿음은 그대로 남고, 그 믿음을 속인 아픔도 그대로 남아 20년의 세월이 바람결인듯 흘러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결이 나를 이끌고 갔다 - 들숨날숨으로 만나는 백두대간 도보여행 에세이
이필형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떠날 수 있을 때도, 떠나지 못할 때도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거의 쏟아져나오다시피 하는 여행 에세이들 중에서 내게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꽤나 어렵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지레 지쳐버리기도 한다.

정보 위주의 책들은 너무 무뚝뚝하거나 관용적인 미사려구로 꾸며져있기 쉽상이고,

너무 개인적인 감상만을 늘어놓은 책들은 맥빠질만큼 감정이 넘치는 경우도 문제지만, 기본적인 정보마저 빠져있으면 이런저런 궁금증에 독서가 중단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여전히 마음 설레게 하거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여행관련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 읽는 책 또한 그런 책 들 중 한권이었다.


저자 이필형은 책머리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직장을 떠나면서 어떤 위로도 귀에 닿지 않았다고 쓰고있다. '어디로 가야할까?' 그 막막함 속에서 백두대간을 만나 31일을 혼자 걸으며 완주한 길. 그 길은 그에게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두대간 걷기를 통해 삶의 새로운 답을 찾았다고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을 걸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마주하고,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또한 새로운 모색으로 나아가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다만 혼자의 몸으로 마주치는 산과 물과 사람들에게 충분히 내 심장을 열어두고 걷고 또 걸은 이야기이다. 


때론 과거를 추억하거나 아프게 기억하기도 하면서, 때론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때론 역사를 떠올리고, 때론 현재를 사는 이들의 풍경과 눈맞춤하면서 첫째날부터 서른하루째 날까지가 담담히 쓰여져 있다. 혼자가 되는 시간은 그렇게 오감을 예민하게 벼려주어 매 순간을 새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불필요한 과잉을 쳐 낼 용기를 주는가보다. 그 매일매일 걸은 길은 골짜기 이름, 지명, 짤막한 지형적 특징 등과 함께 간단한 산행도로 그려져 있어서 함께 그 길을 걷는 기분도 느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직접 백두대간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팁이 되어 줄 거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5만분의 1. 지도 24장만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생 속에서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건, 그건 걸국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함을 그는 백두대간을 완주하며 받아들인것 같다. 물론 저자가 극복해야했던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장애물은 나의 몫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혼자가 되어 완수해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은 자꾸만 작아지는 내게 '용기를 가지라'고 토닥여준다.  


다만 전문 여행작가의 글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 유려한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박하게, 열심히 자신을 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져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홀로 30여일을 걸어낸다면, 이런 긴 글 한 편을 써낸다면 말수가 부쩍 줄어들 것만 같다.



"산도 사람살이 같다. 같은 듯하나 각각 다르다. 가을 하늘처럼 유난히 높고 쪽빛이다. 햇살은 강렬하나 피할 곳도 없어 온 몸으로 받아낸다. 이렇게 길 위에 서길 잘했다."  (113쪽)


"기웃거리고, 머뭇거리고, 우물쭈물하는 모습 그대로 내 길을 가야 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베케트처럼 기다림을 기다려야 한다. 실패를 고백해야 한다."  (19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근담 : 철학노트 필사본 10년 후 나를 만드는 생각의 깊이 3
홍자성 지음, 김성중 옮김 / 홍익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차례 컬러링북의 열풍이 휩쓸고간 자리에, '필사'책의 바람이 불고있는 것 같다

손에 맞는 필기구를 들고, 마음에 맞는 문장을 써내려가는 일은 훨씬 고요한 바람이다.


정보를 구하고, 스토리를 쫓으며 읽는 형태의 독서가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때로는 느린 독서에 빠지고 싶은 때가 있다.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꼼꼼히 읽어가거나, 외국어로 된 책을 한 문장 한 문장 우리글로 옮겨가며 읽어가거나..  '필사' 역시 그런 느린 독서의 매력적인 한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필사에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자는 '한자'가 아닐까. 한글자 한글자에 의미를 담고있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사유'를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이 책은 한자 원문을 필사하며, 우리말 풀이로 그 뜻을 다시 새겨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필사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신민이 "사람이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다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고 한 것에서 그 제목이 유래되었다는 <채근담>은 명나라 말기 문인이었던 홍자성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전집 225장, 후집 13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전편은 주로 사람과의 교류에 대해서, 후편은 자연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 쓰여졌다고 하는데 이 책은 원문의 순서와 상관없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공감을 줄만한 내용을 가려뽑아 여섯개의 장으로 나누어 싣고 있다.그리고 각 글마다 매끄럽게 의역된 우리말 문장과 함께 부분부분의 한자어 주석도 실려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道에 이른다는 것, 참되게 산다는 것, 타인과 어울려 산다는 것, 세상을 헤쳐 나간다는 것, 군자의 도리에 따른다는 것.


각 장이 제시한 이러한 것들을 보면 조금은 뜬구름같기도 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 읽고 써보고, 반걸음씩이라도 발걸음을 내디뎌보는 과정 속에서 '나'를 바로세워가는 일이 이 복잡하고 갈피잡기 힘든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 것인지도 모르겠다. 느린 필사를 하고, 옛 시대의 글을 끄집어내는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달랑 펜 한자루 그리고 필사할 좋은 내용과 필사할 빈 노트까지 한 데 묶여있는 이 책 한권이면 갑작스런 자투리 시간도,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날의 긴 긴 낮시간도 사색의 시간으로 변신시켜 줄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었지만 여전히 변화의 에너지가 될만한 말씀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잊고 지내는 인생의 팁들을

나의 功과 시간을 들여 

되돌아보고 싶은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인생이란 덜어 버린 만큼 초탈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면 과실이 적어지며,

불필요한 생각을 줄이면 정신력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함을 내세우지 않으면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덜어 버릴 줄 모르고 오히려 날마다 더하는 데 힘쓰는 자는

참으로 자신의 인생을 속박하는 사람이다.

(후집 132) / (116쪽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든사인 30 - 내 몸이 보내는 죽음의 신호
박민수 지음 / 보랏빛소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난 건강염려증 환자가 아니야.'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어 보기도 하지만, 주변의 각종 매체는 끊임없이 건강! 건강!을 외쳐댄다. 그러니 가끔은 건강에 대한 그럴듯한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들, 뭔가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광고가 붙거나 권위있는 이들의 책들이 나오면 저절로 눈길이 가고, 낚이고 마는거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는데... 일단 알고 속는게 나으려나?

어쨋든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은 이렇다. <내 몸이 보내는 죽음의 신호, 골든 사인 30>


사실 사소하고 일시적인 몸의 이상에까지 일일이 체크하는건 뭔가 우스꽝스럽다고도 생각되지만, 작은 신호를 무시하고 넘겼다가 큰 병에 이르는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접하다 보니 어떤 이상 신호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궁금했는데, 다 읽고보니 이 책이 그런 궁금증에 대한 어느 정도의 참고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우리가 내 몸이 주는 사인에 대해 익혀야하는 이유를 "조기경보 시스템을 켜두면 나중에 크게 후회하는 일도 없을 뿐더러 여러 면에서 더 유익하고 경제적"이라고 쓰고있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Part 1. 당신의 몸이 죽어가고 있다. 에서는 결코 갑작스레 죽거나 병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전에 우리 몸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인을 보낸다는 사실을 여러번 강조한다. 조기 사망에 이르거나 여러가지 병증과 통증에 시달리지 않고 늙어서까지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미리미리 건강관리를 해두어야 한다고 (거의 종교적인 어조로) 거듭 쓰고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먹은 지금'이 바로 골든 사인 예방과 관리의 적기라고 강조한다.

Part 2. 내 몸이 보내는 죽음의 신호 골든사인 30.은 말 그대로 몸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30개의 신호에 대해서 상세히 적고있다. 새로운 내용도 많았고, 설명이 매우 상세해서 뭔가 몸에 이상이 있을 때 부분부분 찾아 읽을 수 있는 좋은 자료집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뭉뚱그려져 있는 의학 정보들도 많은데, 이 책은 쉬우면서도 구체적이어서 실질적인 잣대가 되어줄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예를 들어, 치매의 경우 초기에 감지할 수 있는 증상으로서 세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가 혀의 떨림, 둘째가 후각기능의 상실 (왼쪽 코에서 시작해 오른쪽 코로 진행된다고 한다), 셋째가 8시간 이상의 수면이라고 한다. 물론 그 과학적인 이유도 상세히 적혀있다. 그저 건망증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몸 자체에서 이런 신호를 보낸다는게 놀라웠다.

또 하나의 예로 심혈관 질환에 대한 첫번째 이상 신호는 혀 뒷면의 정맥이 부풀어 있을 경우이고, 두번째 신호는 귓볼의 주름이라고 한다. 귀의 혈관구조가 매우 미세해서 우리 몸의 가장 정교한 혈관건강 검사지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Part 3. 죽음으로부터 나를 구할 골든 트라이앵글 전략.에서는 내 몸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답이라고 강조하면서, 백세건강을 보장하는 3대 요소로서 호르몬, 혈관, 면역을 제시한다. 그리고 각각의 요소를 어떻게 건강하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 알려준다. 예를 들면 꼭꼭 씹어먹는 것으로서 어떻게 혈관 건강을 지킬수 있는지, 다혈질과 완벽주의가 면역계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등등의 이야기가 재미있고 소상하게, 과학적인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건강의 중요성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너무 쉽게 잊고 지내기도 하는 것 같다. 건강에 너무 집착하거나, 한두권의 책 내용을 맹신하는 것 역시 위험할 수 있지만 종종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나의 생활 습관을 되짚어 보고, 먹거리에도 조금더 신경쓰게 만들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애거사 크리스티의 <두번째 봄>을 포스팅하다보니

갑자기 이 책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맞아.. 이 비슷한 책이 있었지...'


한 때 독특한 소재와 섬세한 묘사가 좋아서 열심히 읽었던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왠지 싫증이 나서 덮어두었었는데

지난달, 예쁜 표지에 덥석 빌려와 읽었다.

<두번째 봄>과 비슷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식구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라는 어린시절 이야기와

작가의 싹을 틔우고 키워가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만의 家를 이룬 한 남자를 필두로

그 남자의 城에서 살아가는 가족(자녀와 손자녀)들 이야기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작가의 상상력 속에서 자라나고, 자신의 生을 꾸려간다.

오랫만에 읽었지만 여전히 '그녀만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당연하게도 '바로 이 느낌이었어...'하는 느낌.

그녀만의 인물들이 궁금하고,

가끔은 나와 合이 딱 맞는 문장을 만나기도 했지만,

책장을 덮으며 든 생각은

'에쿠니 가오리, 당분간 안녕~' 이었다.


그녀의 소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조금 정리해보자면,

1. 감각적이고 멋져보이고 혹은 쿨해보이는 많은 것들이 총출동하는 소설.

2.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내게는 그다지 소용이 닿지않는 물건같은 느낌.

3. 그럼에도 눈길이 가고, 바라보면 흡족하고, 막상 손에 넣고보면 살짝 실망하고마는 무엇.



*책 속 문장들과 토달기



(107쪽) "거리의 분위기, 사람들의 기질, 인격을 드러내거나 혹은 은폐하기 위한 대화, 거기서 생겨나는 빛나는 착오."


(122쪽)  "무척 가정적이고 따스한 분위기에 싸여 있는 이 집의 거실은 어김없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그것은 나의 도피벽이나 연약함과 상관있는지도 모른다."

// 무언가 완벽해보이는 대상은 내게 이제 무너질 일만이 남았다는 공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나 역시 도피벽이 있고, 연약한 모양이다.


(419쪽)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내가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싶어하는지 어떤지. 사회라든지, 개인적인 규범도 법률도 아닌 규칙이라는지, 예의 이상의 협동심이라든지, 타인과 올바르게 거리를 두는 법이라든지, 요즘의 놀이방식이라든지, 폭력을 회피하는 방법이라든지? 사람은 대학에서 학문 이외의 대체 무엇을 배우는걸까." 

//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미덕' 같은걸 모두 배운다고 해서 제대로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세상살이는 언제나 case by case. 어렵기만 하다.


(457쪽) "샤워.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그거였다. 호텔 방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도 있고 향수를 뿌리고 온 사람도 있었다. 더구나 꼬치구이며 이탈리안 샐러드며 와인이며 소주 따위의 후텁지근한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내가 씻어내고 싶었던 건 그런 냄새라기 보다 사람들의 목소리며 웃는 얼굴, 그 방에 소용돌이치던 개개인의 사정이랄까 생활감이었다."


(493쪽) "하지만 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도 못 한 기분이다. 나는 데릭에게 말하고 싶었다. 저녁 하늘이 파랬던 거며, 조사를 읽어준 젊은 사장이 마지막에 '잘가요, 기리노스케씨'라고 한 것, 화장터의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던 것, 영정 속 외삼촌이 웃고 있었던 것, '기리바코' 조크도."

//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다시 내 속으로 꿀꺽 삼켜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저 안부를 묻거나, 서툰 웃음을 짓고마는 것이다.


(579쪽) "그러면서도 묘한 일이지만 이 방에 있다보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가 있다. (略) 그것들은 내가 아니라 이 집의 기억이리라. 왜냐면 내가 알 리 없는 소리까지 가끔 방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