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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나를 이끌고 갔다 - 들숨날숨으로 만나는 백두대간 도보여행 에세이
이필형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떠날 수 있을 때도, 떠나지 못할 때도 여행 에세이를 읽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거의 쏟아져나오다시피 하는 여행 에세이들 중에서 내게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은 꽤나 어렵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지레 지쳐버리기도 한다.
정보 위주의 책들은 너무 무뚝뚝하거나 관용적인 미사려구로 꾸며져있기 쉽상이고,
너무 개인적인 감상만을 늘어놓은 책들은 맥빠질만큼 감정이 넘치는 경우도 문제지만, 기본적인 정보마저 빠져있으면 이런저런 궁금증에 독서가 중단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여전히 마음 설레게 하거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여행관련 책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 읽는 책 또한 그런 책 들 중 한권이었다.
저자 이필형은 책머리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직장을 떠나면서 어떤 위로도 귀에 닿지 않았다고 쓰고있다. '어디로 가야할까?' 그 막막함 속에서 백두대간을 만나 31일을 혼자 걸으며 완주한 길. 그 길은 그에게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두대간 걷기를 통해 삶의 새로운 답을 찾았다고도 한다.
이 책은 백두대간을 걸은 시간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마주하고,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고, 또한 새로운 모색으로 나아가는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며칠치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다만 혼자의 몸으로 마주치는 산과 물과 사람들에게 충분히 내 심장을 열어두고 걷고 또 걸은 이야기이다.
때론 과거를 추억하거나 아프게 기억하기도 하면서, 때론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때론 역사를 떠올리고, 때론 현재를 사는 이들의 풍경과 눈맞춤하면서 첫째날부터 서른하루째 날까지가 담담히 쓰여져 있다. 혼자가 되는 시간은 그렇게 오감을 예민하게 벼려주어 매 순간을 새로운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불필요한 과잉을 쳐 낼 용기를 주는가보다. 그 매일매일 걸은 길은 골짜기 이름, 지명, 짤막한 지형적 특징 등과 함께 간단한 산행도로 그려져 있어서 함께 그 길을 걷는 기분도 느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직접 백두대간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팁이 되어 줄 거란 생각이 든다. 저자는 5만분의 1. 지도 24장만을 들고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생 속에서 누구나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크건, 그 시간이 얼마나 길건, 그건 걸국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함을 그는 백두대간을 완주하며 받아들인것 같다. 물론 저자가 극복해야했던 물리적이고 감정적인 장애물은 나의 몫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혼자가 되어 완수해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일은 자꾸만 작아지는 내게 '용기를 가지라'고 토닥여준다.
다만 전문 여행작가의 글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는 유려한 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박하게, 열심히 자신을 전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져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누구라도 홀로 30여일을 걸어낸다면, 이런 긴 글 한 편을 써낸다면 말수가 부쩍 줄어들 것만 같다.
"산도 사람살이 같다. 같은 듯하나 각각 다르다. 가을 하늘처럼 유난히 높고 쪽빛이다. 햇살은 강렬하나 피할 곳도 없어 온 몸으로 받아낸다. 이렇게 길 위에 서길 잘했다." (113쪽)
"기웃거리고, 머뭇거리고, 우물쭈물하는 모습 그대로 내 길을 가야 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베케트처럼 기다림을 기다려야 한다. 실패를 고백해야 한다." (1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