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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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는 시간, 인생 전체에서 보면 참 짧은 순간이지만, 맥없이 보내버린 하루를 돌이켜보는 밤시간이 잦아지면 작은 탄식과 더불어 자책의 감정에 휘말려버린다. 가끔은 아쉬움을 덜 남기는 흡족한 하루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느라 다시 하루를 보내버리고.


최근 우연히 좋은 책을 서로 추천해보자는 취지의 온라인 모임에 잠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소개받은 책 중 한 권이 <리추얼>이다. 예전에 김정운 교수의 책에서 인상깊게 접했던 리추얼.


 이 책은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로 손꼽히는 161명 지성들의 완벽한 하루에서 찾아낸 일상의 숭고함과 결정적 리추얼들"에 대한 것이다. 책을 펼치니 (역시나) 리추얼 찬양자 김정운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있게 여길 때 지속가능한 의미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리추얼은 바로 무의미한 듯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쓰고있다.


무려 161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일상 속을 탐험하다보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리추얼 하나쯤, 일상에서 자신을 지킬 유용한 또하나의 일상 하나쯤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 작가는 "견실한 습관은 정신적 에너지를 몸에 밴 반복행위에 쏟고, 감상의 폭정이 끼어들 틈을 차단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최근 습관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부족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 좋은 습관들이기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것을 habit이라고 부르건, routine라고 부르건 혹은 ritual이라고 부르건 삶을 꾸려갈 유용한 기술인 것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이들의 하루를 엿보는 것은 호기심과 흥미를 채워주면서 또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게 하고, 조금쯤 다른 하루를 통해 삶을 바꿔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내가 변변치않게 여겼던 나의 시간들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기쁨과 더나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힌트를 얻는 유용함도 있다.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만큼 한명에게 할애된 분량은 사실 아쉬울만큼 적다. 그래도 줄지어 선 이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지나가는 느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 책을 읽으면서 그의 작업습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떤 리듬으로, 어떻게 글을 쓰든 대부분의 작가에게 글을 쓰는건 즐거운 일이었고, 책상 앞에서 걱정거리를 잊었던 건 같다. 말하자면 글은 세상에서의 탈출구같은 것이었다. 다만 리추얼과 강박의 경계문제, 구속이 주는 편안함과 의무감이 주는 불편함 사이의 균형문제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곳이 서재이든 벤치이든 오두막이든, 그들은 자신만의 피난처에서 글을 썼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벼운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사색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매일매일 글을 쓰듯 매일매일 산책을 했다. 의식을 치르듯 읽고, 쓰고, 걷는 것으로 온전해보이는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짧은 일화만으로 '마음에 드는 작가' 리스트에 멋대로 올려버린 작가는 니콜슨 베이커. 그의 <구두끈은 왜>를 오래전 장바구니에서 썩혔던 일이 있는데 다시 담아야겠다. 회사원에서 전업작가가 되었던 그는 미루고 미루는 습관을 고치려고 또다시 출퇴근하는 일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내 기준으로) 왠지 있어보이는 작가 움베르트 에코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에도 '내 머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앴다. 그의 머리는 언제나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었나보다. 최근에 읽고있는 작가 필립 로스는 스스로를 언제라도 글 쓸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응급실 의사와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습관들이기를 힘들어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담배, 커피, 약물, 술 등에 의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만의 작업시간을 지켜냈다는 것이었다.


관심있는 작가부터 찾아가며 읽어도 좋을 책, 한 명 한 명의 일화가 너무 짧아서 아쉬웠지만 사생활 엿보기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 나의 일상을 돌이켜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책 속에서


"그녀의 페르소나는 허황된 면이 잇었지만, 작업 습관만은 상당히 금욕적이었다." (조르주 상드)


"이런 자기중심적 시간표는 사교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며 '초대를 반복해서 거절하면 누구나 불쾌하게 생각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자신의 삶에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관계가 독자와의 관계라고 확신하며" 소설가의 의무를 일상적인 삶보다 늘 앞에 두었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이다.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명인 칸트, "칸트는 5시에 일어났다. 그를 오랫동안 섬긴 하인이 퇴역 군인인 까닭에 주인이 늦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칸트와 퇴역군인 출신 하인, 둘의 합이 정말 잘 맞았을것 같다.

"한시간 정도 작업하고 나면, 이메일이나 그와 유사한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에 종종 굴복한다. 이런 경우에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힘이 고갈되어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와 복잡한 문제로 티격태격하게 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적어도 45분의 시간을 날려버리게 된다." 존 애덤스(1947~. 미국 작곡가)의 이야기에서 현대적인 유혹들과 인간관계의 고단함을 읽을 수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정신의 힘이 본래의 역할에서 해방된다. (중략)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술을 마실 때마다,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또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심사숙과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글이다. 생각에 갇혀 행동하지 못하고, 뭔가가 계속 지체되는 내게 뜨끔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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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읽는 매일 아침 1분 철학 그림으로 읽는 매일 아침 1분 철학 1
왕위베이 지음, 웨이얼차오 그림, 정세경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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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상에 대한 설명으로만 알고있는, 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수없이 많이 들어온 옛 철학자들. 하지만 정작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는 쉽지않다. 감히 철학자의 책이라니... 엄두가 나질 않으니 그저 유명한 짧은 경구와 철학자를 줄긋기해보는 정도가 고작이랄까.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그런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비록 많~이 부족하나마 직접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매 페이지, 한장의 그림과 철학자의 한마디와 짤막한 해설이 붙어있는 책, 제목처럼 1분 철학책이다.

우선 이 책이 담고있는 14명의 철학자 몇몇을 보면 디오게네스, 에피쿠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논, 키케로,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다. 이름이 낯선 철학자들을 빼고나니 요정도이다. 주로 고대의 철학자들, 과연 그들이 소리내어 말한 것들은 어떤 말들일까, 그들의 사상의 요체는 어떤 말들에서 나왔을까를 토막토막이나마 직접 읽어볼 수 있었다.


전체 제목이 <그림으로 읽는 매일 아침 1분 철학>인만큼 그림 또한 철학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는 명화들이 실려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단순하면서도 뭔가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나는 그림들이다. 그린 이의 약력을 보니 심장내과 전문의인 웨이얼차오. 그는 야간 당직을 설 때마다 처방전 뒤에 그림을 그렸으며 이후 화집 등을 출간하고 많은 책의 삽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의 그림들, 확실이 멋져보이지는 않지만 단색의 선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참 많이 담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단순함, 빈 공간사이를 슥슥 가로지르는 그다지 매끄럽지 않은 선들이 표현하는 이야기들은 풍성했다. 그림을 그릴 때, 기술보다 중요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철학이라는게 참 골치아픈 것 같지만, 그저 말과 이야기로 접하니 만만하다. 누군가는 신을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신을 부정하고, 이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그런 모순이 골치아프게 느껴지기보다는 두 주장 모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짧고 단순하게 읽히지만 역시 철학자들의 길고 깊은 사색의 결과물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결국 지향점은 모두 진리를 향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철학은 어렵다.


생각의 결과를 정리하고 수용하기 위해 읽어야하는 책이 아니라 '생각하기' 그 자체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1분 철학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머리가 맑은 아침시간에, 혹은 간밤의 어지로운 꿈이 여전히 떠도는 아침시간에, 간결한 선그림과 짧은 생각이 담긴 한 장의 메시지 카드를 받는 기분으로 책장을 두어장 넘겨보면 좋을 듯 하다. 그렇다고 철학적인 하루를 보낼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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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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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악, 어둠... 무슨 말로 이 소설을 시작할지 몇번을 망설였다. 책 뒤쪽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 유진은? 생존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것일까, 악한 본성을 타고난 것일까, 어떤 외부적인 자극으로 악이 확대재생산된 것일까...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타고난 '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은 자꾸만 외부적인 것으로 향했다. 특히 '리모트'라는 약.


그 약은 작가가 만들어낸 (다행스럽게도) 허구의 약이라고 하는데, 엊그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졸피뎀이라는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소설 속의 약이건, 실재하는 약이건 인간의 뇌에 작용한다는 점이 나는 무섭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나아가 우리의 몸도 철저히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의료기술과 장비, 약들을 발전시켰고 덕분에 건강과 장수의 혜택이라면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사회. 하지만 뇌까지 건드린다는건 사실 끔찍한 일이다. 외과적인 것을 넘어 화학적으로 그 신비로운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언제라도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뇌를 다스리는 약들이 꽤나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져 오고, 안전성과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나는 뇌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성역이란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유진이 리모트를 먹지 않았다면, 이모와 엄마가 조금이라도 유진에게 사랑과 신뢰를 주었다면, 형이 야비한 장난으로 유진의 악을 촉발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초기값에 작은 변화만 주어도 결과는 크게 흔들리지 않던가. 사이코패스, 타고난 포식자는 과연 실재하는걸까? 우리 사회에 편리한 면죄부같은 단어는 아닐까?


덧, 이전의 <28>, <7년의 밤>이 콸콸 흘러내리는 스토리를 가졌다면, 이번 <종의 기원>은 왠지 고였다가 쿨렁, 다시 고였다가 쿨렁쿨렁 흘러가는 탁류같다고 느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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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 정재승 + 진중권 - 무한상상력을 위한 생각의 합체 크로스 1
정재승,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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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하는 어떤 것, 떠오르는 표제어, 유독 반복되는 사회현상이나 필요성 이상으로 유혹적으로 느껴지는 문화현상 등등에서 우리는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사소하고 단편적인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당대의 세상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을테니까. 자타공인 한 知性하시는 정재승, 진중권이 모두 21개의 키워드를 놓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이 책은 깊은 지식의 대결이라기보다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의 소소한 관심사에 대한 생각나누기 정도로 가볍게 읽을만했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같은 이야기로 나아가기도 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는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결론으로 끝나기도 해서 시종 흥미롭게 읽혔다. 한편으로는 어떤 주제어에 대해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쓰고자 할때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지, 하는 글쓰기에 대한 교본처럼 읽히기도 했다.



*책 속에서


구글/정재승/ "그들이 과연 꿈꾸는 세상을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심과 회의가 적다. 프로그램 개발자와 통계 전공자들로 가득 찬, 그래서 대부분이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전 세계 검색 포털 사이트 회사들과 달리, 구글은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을 불러 모아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리포트/진중권/ "예측과 예방은 그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낸다. 질병과 범죄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노력이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범죄, 새로운 의료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헬로키티/정재승/ "키티의 표정이 오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입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그 눈이 아무런 감정 상태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덕분에 사람들은 키티의 눈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다양하게 감정을 읽는다."


셀카/정재승/ "내가 찍는데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왜곡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세라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의 기록'이다."


쌍꺼풀수술/진중권/ "공동체에 원만히 입성하려면 칼의 세리머니가 필요하다. 사회의 온전한 성원이 되기 위해, 유대인 남성은 성기에 할례를 받고 한국인 여성은 눈두덩에 할례를 받는다."


앤절리나 졸리/진중권/ "졸리의 존재미학은 도덕울 유습게보는 개별자의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더 높은 사회적 윤리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데 그 요체가 있다. (중략) 모든 것을 혼자 소유하는 속된 탐욕의 쾌락주의도 아니고, 모든 것을 헌납하고 빈자의 삶을 살아가는 답답한 금욕주의도 아니다. 그녀는 이런 상투성의 경계에서 스틱을 당겨 가볍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생수/정재승/ "생수 한 병을 마시는 것은 자동차 1키로미터를 운전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환경에 영향을 주며, 생수 1리터를 만드는 것이 같은 양의 수돗물을 생산할 때보다 600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중략) 그다지 몸에 좋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고, 지구에 유익하지도 않지만, 생수는 이제 휴대전화처럼 '패션 액세서리'가 됐으며..."


9시 뉴스/정재승/ "9시 뉴스는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 그날 있었던 스포츠 경기 스코아보다 더 하찮게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들에게 일깨워주는 고독한 시간이다."


레고/정재승/ ' 그러나 나 같은 21세기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사주고 싶은 장난감은 레고가 아니다. 조립해 쌓는 레고와 함께 '깍고 조각하는 톱다운 top down 식 장난감을 나란히 가지고 놀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작은 블록에서 세상을 쌓아가는 분석적 사고와 함께, 큰 밑그림에서 세부적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적 사고도 다음 세대에겐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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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 완전개정판 다빈치 art 3
J.M.G. 르 클레지오 지음, 백선희 옮김 / 다빈치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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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르 클레지오를 읽으려고 이 책을 골라들었지만, 프리다 칼로만 만날 수 있었다.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프리다 칼로에 대한 그의 애정과 팬심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더불어 그동안 무지했던 멕시코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발을 들일 수 있었다.


1521년, 번영하던 아즈텍제국이 에스파냐에 의해 정복된 이후 300년의 오랜 식민지 시대를 보낸 멕시코는 독립이후 공화제를 선포하고 대통령을 선출하였지만 정치적 혼란 끝에 디아스에 의한 독재정치가 행해졌다. 결국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한 때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기도 했지만 지나친 외채부담과 유가하락으로 다시 경제적 문제와 더불어 양극화문제가 심각해졌고, 현재도 많은 정치경제적 문제를 안고 있다. (두산백과 요약)


디에고(1886년)와 프리다(1910년)은 멕시코 혁명과 그 직후의 시대를 살며 한편으론 혁명을 꿈꾸고, 다른 한편으론 원주민들이 살던 이전의 문명의 평화를 꿈꾸었다.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다시 버스사로고 평생 불편한 신체와 육체적 통증 안에 갇혀 살았지만 자기자신과 디에고에 대한 사랑으로 시들지 않는 삶을 살아낸 프리다의 일생을 읽으며 정말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다. 그녀의 그림에 나타난 아픈 꿈의 단면들은 섬뜩하면서도 마음이 아파오는 것들이었다. 꿈보다 더 솔직하게 자신을 나타내주는 현실처럼 보였다. 디에고에 대한 집념어린 사랑이 때론 자기애의 다른 일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러 현실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어느 자리에서나 빛나보이는 그녀였다.


디에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디에고는 전형적인 남성상으로, 위압적이고 관능적이며 여성들 앞에서는 유치할 정도로 연약했다. 또한 이기주의자에다 향락주의자이고, 늘 불안해하며 질투심 많고 이야기를 꾸며대는 허풍쟁이였다. 그러면서도 힘과 열정과 권위, 초자연적인 순진함을 가진 애정의 화신이기도 했다." (28쪽)


그는 평생 놀랄만한 에너지를 과시하며 연애와 예술활동을 했고, 그 예술적 결과물은 양에서나 질에서나 놀랄만한 것이었지만(힘과 재능과 상상력이 넘치는 작품들), 그가 정말 가장 열정을 가졌던 일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혁명을 얘기했고, 그 길 위에 있었지만 디에고에 있어서는 '혁명' 역시 자신을 빛내기 위해 선택한 장식품 정도로 보일 지경이다.


디에고를 만날 당시 프리다는?


"인디언의 무사태평함과 혼혈아의 고뇌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대인의 근심과 관능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한 눈에 알아본 그는 프리다의 성숙한 젊음에 마음이 끌렸다." (50쪽)


많은 나이차를 넘어 둘은 결혼하고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였다. 디에고는 훗날 "그녀의 그림과 빛나는 존재감이 자신에게 놀라운 환희를 불러일으켰다"고 회고한다.


사실상 이 책에서 작가의 애정은 디에고보다 프리다에게 쏠려있다. 내용이나 사진들의 분량은 거의 반반정도인듯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읽으면서 자꾸 디에고에 관심이 갔다.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와 사진은 이전에 몇번 접해본 일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왜 프리다가 그다지도 디에고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에게 집착했을까'가 궁금해서엿다. 대단한 천재성을 인정한다해도 나쁜 남자의 전범같은 사람이 아닌가. (추남에 배불뚝이라는건 눈감아준다고 해도)


"어느날 저녁 충동적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 이혼에 합의해달라고 할 작정이었어. 초조해진 나는 야비하고 어리석은 핑계를 만들어댔어. 그게 통했던지 프리다가 즉시 이혼하자고 하더군." (188쪽)


책을 다 읽고도 여전히 문제의 해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런 그와 헤어지고 끔찍한 공허 속에서 지낸 프리다, 그의 바람기에 피를 뚝뚝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던 프리다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가 살며 이해할 수 있는 세계와 그들이 지향하고 구축해갔던 세계가 당연한 얘기지만 참으로 많이 다른 모양이다.


우주 속에서 멕시코 유모가 프리다를 안고 있고, 프리다는 다시 이마에 제 3의 눈을 가진 디에고를 안고있는 프리다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본다. <우주와 지구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와 디에고, 솔로틀이 벌이는 사랑의 포옹> (1949년작)


"디에고는 일생동안 공산당에 대한 소속감과 개인주의적 표현 사이에서 방황했다. 이것은 그가 실천, 애정행각, 여행, 돈의 위력 같은 존재의 유혹과 자신의 내면세계 사이에서 흔들렸기 때문이다. 그의 존재 깊숙한 곳에는 프리다의 얼굴이 있었다." (235쪽)


어찌보면 디에고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자기애로 인생을 채운 남자, 디에고. 하지만 프리다가 그를 흔들었던 것 또한 분명한 것 같다. 프리다는 자신을 잘게 더 잘게 부수어 강철같은 디에고의 거의 보이지않는 틈새로 조금씩 들어가려 했을까? 그의 후기 그림들이 조금쯤 프리다의 작품과 닮아있는듯 보여지기도 했다.


자신의 실재 얼굴보다 훨씬 멋진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던 디에고, 자신의 실재 얼굴보다 늘 더 투박한 모습의 자화상을 그렸던 프리다. 둘은 서로가 자신을 채워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혁명, 그것은 저항이었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과 공포의 눈길이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이자 착하고 힘없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었다. 또한 푸른집과 그 정원,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미묘하고 고뇌에 찬 우주를 두루 껴안고자 하는 꿈이었다. 그녀의 혁명, 그것은 육체적 고통의 폭발이고, 고통을 견디기 위해 점점 더 많이 복용해야 하는 진통제이며,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나 망각과 비현실 속에 머물기 위해 이따금 피우던 마리화나였다. 또한 그것은 고통과 난관을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오랜 의지이고, 부러졌다가 스스로 연결된 그녀의 척추를 대신하는 '희망의 나무' 였다." (246쪽)


특별한 삶을 살다간 이들의 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다양한 감각들을 자극한다. 아주 낯선 장소를 여행할 때처럼 생경함과 두려움, 불가해한 느낌, 설레임과 질투 같은 온갖 감정들을 출동시킨다. 프리다와 디에고의 삶 역시 나 감각들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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