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살인, 악, 어둠... 무슨 말로 이 소설을 시작할지 몇번을 망설였다. 책 뒤쪽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는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서 살아남은 자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인 것이다.
이 책 속의 주인공 유진은? 생존에 대한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것일까, 악한 본성을 타고난 것일까, 어떤 외부적인 자극으로 악이 확대재생산된 것일까...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타고난 '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시선은 자꾸만 외부적인 것으로 향했다. 특히 '리모트'라는 약.
그 약은 작가가 만들어낸 (다행스럽게도) 허구의 약이라고 하는데, 엊그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졸피뎀이라는 약물의 부작용에 대한 내용을 보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소설 속의 약이건, 실재하는 약이건 인간의 뇌에 작용한다는 점이 나는 무섭다.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나아가 우리의 몸도 철저히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이 여러 의료기술과 장비, 약들을 발전시켰고 덕분에 건강과 장수의 혜택이라면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사회. 하지만 뇌까지 건드린다는건 사실 끔찍한 일이다. 외과적인 것을 넘어 화학적으로 그 신비로운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언제라도 괴물이 탄생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뇌를 다스리는 약들이 꽤나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져 오고, 안전성과 효과가 인정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나는 뇌는 건드리지 말아야할 성역이란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유진이 리모트를 먹지 않았다면, 이모와 엄마가 조금이라도 유진에게 사랑과 신뢰를 주었다면, 형이 야비한 장난으로 유진의 악을 촉발시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초기값에 작은 변화만 주어도 결과는 크게 흔들리지 않던가. 사이코패스, 타고난 포식자는 과연 실재하는걸까? 우리 사회에 편리한 면죄부같은 단어는 아닐까?
덧, 이전의 <28>, <7년의 밤>이 콸콸 흘러내리는 스토리를 가졌다면, 이번 <종의 기원>은 왠지 고였다가 쿨렁, 다시 고였다가 쿨렁쿨렁 흘러가는 탁류같다고 느끼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