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
메이슨 커리 지음, 강주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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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는 시간, 인생 전체에서 보면 참 짧은 순간이지만, 맥없이 보내버린 하루를 돌이켜보는 밤시간이 잦아지면 작은 탄식과 더불어 자책의 감정에 휘말려버린다. 가끔은 아쉬움을 덜 남기는 흡족한 하루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느라 다시 하루를 보내버리고.


최근 우연히 좋은 책을 서로 추천해보자는 취지의 온라인 모임에 잠시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 소개받은 책 중 한 권이 <리추얼>이다. 예전에 김정운 교수의 책에서 인상깊게 접했던 리추얼.


 이 책은 "지난 400년간 가장 위대한 창조자들로 손꼽히는 161명 지성들의 완벽한 하루에서 찾아낸 일상의 숭고함과 결정적 리추얼들"에 대한 것이다. 책을 펼치니 (역시나) 리추얼 찬양자 김정운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그는 일상의 사소한 반복을 가치있게 여길 때 지속가능한 의미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며 "리추얼은 바로 무의미한 듯 반복되는 일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기술"이라고 쓰고있다.


무려 161명이나 되는 인물들의 일상 속을 탐험하다보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리추얼 하나쯤, 일상에서 자신을 지킬 유용한 또하나의 일상 하나쯤 발견할 수 있지않을까? 작가는 "견실한 습관은 정신적 에너지를 몸에 밴 반복행위에 쏟고, 감상의 폭정이 끼어들 틈을 차단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최근 습관에 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부족한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법이 좋은 습관들이기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것을 habit이라고 부르건, routine라고 부르건 혹은 ritual이라고 부르건 삶을 꾸려갈 유용한 기술인 것은 분명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이들의 하루를 엿보는 것은 호기심과 흥미를 채워주면서 또한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게 하고, 조금쯤 다른 하루를 통해 삶을 바꿔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내가 변변치않게 여겼던 나의 시간들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기쁨과 더나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힌트를 얻는 유용함도 있다.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만큼 한명에게 할애된 분량은 사실 아쉬울만큼 적다. 그래도 줄지어 선 이들과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지나가는 느낌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경우에 책을 읽으면서 그의 작업습관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어떤 리듬으로, 어떻게 글을 쓰든 대부분의 작가에게 글을 쓰는건 즐거운 일이었고, 책상 앞에서 걱정거리를 잊었던 건 같다. 말하자면 글은 세상에서의 탈출구같은 것이었다. 다만 리추얼과 강박의 경계문제, 구속이 주는 편안함과 의무감이 주는 불편함 사이의 균형문제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곳이 서재이든 벤치이든 오두막이든, 그들은 자신만의 피난처에서 글을 썼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벼운 독서를 하고, 산책을 하며 사색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매일매일 글을 쓰듯 매일매일 산책을 했다. 의식을 치르듯 읽고, 쓰고, 걷는 것으로 온전해보이는 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짧은 일화만으로 '마음에 드는 작가' 리스트에 멋대로 올려버린 작가는 니콜슨 베이커. 그의 <구두끈은 왜>를 오래전 장바구니에서 썩혔던 일이 있는데 다시 담아야겠다. 회사원에서 전업작가가 되었던 그는 미루고 미루는 습관을 고치려고 또다시 출퇴근하는 일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내 기준으로) 왠지 있어보이는 작가 움베르트 에코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에도 '내 머리는 멈추지 않'는다고 앴다. 그의 머리는 언제나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었나보다. 최근에 읽고있는 작가 필립 로스는 스스로를 언제라도 글 쓸 준비가 되어있다는 의미에서 응급실 의사와도 같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좋은 습관들이기를 힘들어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담배, 커피, 약물, 술 등에 의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공통점은 혼자만의 작업시간을 지켜냈다는 것이었다.


관심있는 작가부터 찾아가며 읽어도 좋을 책, 한 명 한 명의 일화가 너무 짧아서 아쉬웠지만 사생활 엿보기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 나의 일상을 돌이켜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책 속에서


"그녀의 페르소나는 허황된 면이 잇었지만, 작업 습관만은 상당히 금욕적이었다." (조르주 상드)


"이런 자기중심적 시간표는 사교적인 삶을 허용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며 '초대를 반복해서 거절하면 누구나 불쾌하게 생각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자신의 삶에서 결코 등한시할 수 없는 관계가 독자와의 관계라고 확신하며" 소설가의 의무를 일상적인 삶보다 늘 앞에 두었다.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이다.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 한명인 칸트, "칸트는 5시에 일어났다. 그를 오랫동안 섬긴 하인이 퇴역 군인인 까닭에 주인이 늦잠을 자도록 내버려두지 말라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칸트와 퇴역군인 출신 하인, 둘의 합이 정말 잘 맞았을것 같다.

"한시간 정도 작업하고 나면, 이메일이나 그와 유사한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유혹에 종종 굴복한다. 이런 경우에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힘이 고갈되어 정신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누군가와 복잡한 문제로 티격태격하게 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적어도 45분의 시간을 날려버리게 된다." 존 애덤스(1947~. 미국 작곡가)의 이야기에서 현대적인 유혹들과 인간관계의 고단함을 읽을 수 있다.

"일상의 삶 속에서 힘들이지 않고 기계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정신의 힘이 본래의 역할에서 해방된다. (중략)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술을 마실 때마다, 매일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 때마다, 또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심사숙과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글이다. 생각에 갇혀 행동하지 못하고, 뭔가가 계속 지체되는 내게 뜨끔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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