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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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열세 명의 소녀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던 아버지도 사라졌다. 아무도 진상을 규명해주지 않으니, 직접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소녀 환이가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주인공이다. 목숨을 건 추적 끝에 마주한 진실은 소녀가 짐작한 것보다 더 어둡고 섬뜩하다. 몇명의 소녀를 구해내는데 성공했으니 구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이것으로 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어쨌든 환이는 성큼 한 걸음을 나아갔으니까. 환이는 더 이상 규방에 갇혀서 '착한 규수'가 되고 시집을 가는 삶에 속박되지 않을 것이니까. 서먹했던 자매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손을 맞잡았으니까. 공포와 절망에 지지 않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지워냈으니까.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유배지 제주를 배경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이어져 온 '공녀 제도'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소설. 작가는 판타지 속에서 현실의 15세기 소녀들은 꿈도 꾸지 못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이 자매들이 장화홍련처럼 규방에 갇혀 살해당하지 않고 씩씩하게 길을 떠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작품을 읽는 일에는 색다른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낯설게 보기.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냥 지나가버릴 일들이,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는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되는 것을 경험하는 읽기가 새롭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청록색 물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고,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면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수 세대에 걸쳐 여인들에게서 여인들에게로 전해진 호흡 기법이다 빈곤과 굶주림의 섬, 왕이 가장 내치고 싶은 신하를 유배 보는 이 섬에서 해녀들은 거친 물살에 굴하지 않고 맨몸으로 잠수하며 생존법을 터득했다." (196쪽)


제주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낯설게 보기를 경험할 수 있는 대목들이 도처에 있으니 그걸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활용해 보고 싶다.


1.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환이와 매월의 역할을 어느 배우에게 맡기고 싶나요? 꼭 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나 대사가 있나요?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2. 관계가 소원해진 가족이 있나요? 왜 그렇게 되었나요? 관계의 회복을 원한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3. 내 가족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4. 한국계 작가가 한국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쓴 작품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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