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 문
서맨사 소토 얌바오 지음, 이영아 옮김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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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문
#클하서포터즈 #도서제공

최근 읽었던 책 중 가장 두꺼운 벽돌책이라, 솔직히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그 우려는 사라졌다. 『워터 문』은 독자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로 단숨에 끌어들이는 힘을 가진 작품이었다.

줄 서서 먹는 평범한 라멘집. 그러나 길을 잃은 이들에게는 ‘후회’를 맡기면 따뜻한 차를 내어주는 전당포 ‘이키가이’로 나타난다. 주인공 하나는 이 전당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되지만, 첫날 아침 그녀가 마주한 것은 망가져버린 가게와 사라진 ‘선택’, 그리고 자취를 감춘 아버지였다. 혼란 속에서 등장한 닥터이지만 의사는 아닌, 물리학자 게이신은 하나의 여정에 동행하며 사라진 것들을 찾기 위한 문을 함께 열어간다.

읽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면 묘사였다. 작가는 마치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하듯, 독자가 머릿속에 장면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도록 세심하게 길을 터주었다. 그 섬세하고도 친절한 문장은 따뜻함을 전했고, 왜 이 소설을 영상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민규동 감독의 추천사가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작품의 큰 장점을 정확히 짚은 것임을 확인하는 순간들이었다.

사실 나는 평소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워터 문』을 읽으며 판타지라는 장르가 지닌 매력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나와 게이신이 사라진 선택과 아버지를 찾아 시공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물과 공간을 마주하는 과정은 흡입력 있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세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의 끝자락에 다다르게 된다. 긴 분량이 무색하게 지루할 틈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이었다. 또한 책 표지부터 책 곳곳에 있는 일러스트 또한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오래 남은 것은 작품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하나의 선택은 또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후회가 뒤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후회가 있더라도, 결국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증명해내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회라는 감정조차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작품의 제목처럼, 물 위에 비친 달은 분명 존재하지만 손에 닿을 수는 없는 것처럼, 선택과 후회 또한 우리 삶에서 늘 곁에 있으면서도 끝내 붙잡을 수 없는 무엇과 닮아 있었다.

『워터 문』은 판타지라는 옷을 입었지만, 결국에는 우리 삶을 비추는 이야기였다.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망설이거나, 이미 내려놓은 선택을 돌아보며 흔들리는 이들에게 이 책은 특별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줄 것이다. 한 권의 소설이 이렇게까지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가면서도,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을 주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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