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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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어린이들
#도서제공

노란 표지와 수다 떨며 어딘가 걸어가는 듯한 아이들의 그림을 보며 동심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말랑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두 단어의 조합이 낯설게 느껴졌다. '제국’이라는 단어와 ‘어린이들’이라는 말이 나란히 놓인 순간부터, 이미 이 책이 전해줄 이야기가 단순한 동심의 기록만은 아님을 예감할 수 있었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겨울날 아파서 몸져누운 어머니를 위해 공용 수돗가에서 찬물에 손이 얼얼해질 때까지 쌀을 씻던 기억, 돼지를 키우며 가족 생계를 돕던 이야기, 눈이 내려 신나게 놀던 이야기 등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부터 전쟁 한복판에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까지 한가득 담겨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글짓기 대회 우수작들이다.

책은 조선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글이 나란히 놓고 있다. 조선 아이들이 쓴 이야기, 일본 아이들이 쓴 이야기로 분류해놓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나이, 같은 또래임에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영은 작가가 말하는 그 '경계'가 아주 잘 느껴진다.

일본 아이들의 글에 나오는 동물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즐거움을 나누는 친구지만, 조선인 아이들에게는 동물이 가계의 생계를 꾸려가는 수단으로 묘사 된 부분 가장 기억네 남는다. … 「아이들이 가장 슬픈 순간은 가축이 죽었을 때가 아니라 팔 때다.」

뿐만 아니라 책에는 당시 역사적 배경, 생활환경 등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어 수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역사적 사료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을 읽으며 느낀 것은 아이들의 언어는 꾸밈이 없다는 것과 그렇기에 더욱 진실하다. 그들의 글에서 느껴지는 순수함은 오히려 제국주의, 식민통치시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끝맺으며'까지 다 읽고 책장을 덮고나니 마음 한켠이 오래도록 먹먹했다.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이 담긴 수필이지만 그 수필을 썼던 조선 아이들의 경험과 감정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제국의 어린이들>을 읽는다는 것은, 오래전 아이들이 남긴 목소리를 통해 제국주의의 폭력과 실체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묻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있을까? 훗날 지금의 아이들이 남길 기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제국의 어린이들》은 단순히 과거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책이었다.

그리고, 8월이 가기 전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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