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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김혜영 지음 / 그늘 / 2025년 5월
평점 :
#아보카도
#도서제공
김혜영 작가님의 책 <아보카도>의 표지는 굉장히 화려하다. 미술을 잘 모르지만 무엇인가 파스텔로 그린 것 같은 다양한 색상, 특히 원색들도 눈에 띄는 여러 어우러진 배경색 위에 있는 아보카도 4조각.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겨있는 소설집인 것을 감안하면 '각각의 소설 색이 많이 화려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표지였다. 표지의 촉감도 참 보드랍다. 잘 후숙된 아보카도를 한 숟갈 푹 떠서 먹는 느낌 마냥.
책 <아보카도>는 총 여덞 편의 소설과 작가의 말이 담겨져 있다. 여덟 편의 소설 모두 '상실'을 맞이한 사람들의 감정,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에 대한 상실이었고 상실의 과정이 어땠는지는 담백하게, 단순하게 알려준다. 대신 '상실' 이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어서 감정몰입이 빠르게 되는 소설이었다. 직접적으로 감정들이 언급되지 않기에 '지금 이 화자는 이 감정을 느끼고 있겠다'라고 유추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여덟 편의 모든 소설 속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에 빠져있지는 않다.
-"소희야, 억지로 참지 마. 우린 모두 충분한 애도를 해야 해." (p.40 -박수정기 노을 중)
-한참동안 뱉지 못한 씨앗 하나가 여전히 입속을 굴러 다녔다. 끝부분이 날카로워 입천장을 찔러대던 그것을 왜 아직 입속에 머금고 있었을까. 나미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서둘러 그것을 뱉어냈다. 비로소 입안이 개운해졌다. (p.68 -대추 중)
-아직 무너지지 않은 아버지의 마지막 염막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p.127 -자염 중)
떠난 사람들과는 다르게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남겨진 일들이 많다. 그 중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묻어두는 것'보다 충분한 '애도'라고 생각한다. <박수정기 노을>, <대추>, <자염>처럼 서로 충분히 애도하며 위로하고, 스스로를 다지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세 소설을 읽으면서 훈훈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원색이 떠올랐다.
한편 <공가>, 표제작인 <아보카도>, <지연>, <BABY IN CAR>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열려있다. 당장이라도 '다음 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알려주세요!' 라는 질문을 김혜영 작가님에게 던지고 싶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 소설 한가운데에 들어가서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 화자를 바로보고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너의 찰스>는 여덟 편의 소설 중 스스로 급한 감정 곡선을 그렸던 소설이다. 이야기의 끝은 무엇일지 역시나 궁금해졌다.
<아보카도>를 읽으면서 드러나있지 않은 감정들을 상상하고, 감정을 상상하기 위해 이야기를 따라가느라 바빴다. 조용한 문장들 사이에서 오히려 독자인 내가 할 일이 많았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문장들이 넘쳐나는 생활 속에서 <아보카도>는 나에게 색다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