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당대총서 20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이광근 옮김 / 당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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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에 대한 논평




1.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을 통해서 본 세계체제론의 내용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에서 월러스틴은 노학자의 폭넓고 높은 시야를 통해 세계체제론이 하나의 학문으로 형성되기까지의 서양의 지적발전사를 다루고 그런 이후에 본격적으로 세계체제론의 구체적 내용과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체제론은 세계체제라는 분석단위를 가지고, 장기지속이라는 시간단위를 가지며, 학제간 장벽을 허물면서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 근본적 특징이다.

‘세계체제’는 세계경제체제이며 자본주의세계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체제는 끊임없는 축적을 목적으로 하며 이는 세계경제의 분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와 세계경제는 서로를 보완하며,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 규정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기축적 분업을 통해 생산을 핵심부적 제품생산과 주변부적 제품생산으로 양분한다. 이윤획득은 독점화의 정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핵심부적 생산과정들은 바로 준독점에 의해 통제되는 생산과정들을 뜻하는 것이다. 이 결과 잉여가치는 주변부적 제품의 생산자로부터 핵심부적 제품의 생산자에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교환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세계경제는 끊임없는 이윤축적을 위해서 그것에 용이한 정치적 체제로서 (세계제국을 지양하는 한에서) 국가간 체제를 가진다. 자본가들은 팽창적 시장 확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가권력의 힘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국가권력이 자본주의적 축적원리에 반할 만큼의 강제력을 가지게 되는 것, 즉 세계제국화되는 것은 자본주의 원리상 자본가들에 의해 반대된다. 그리고 세계경제는 국가간 체제와 더불어 세계체제를 지지하는 중심적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가진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는 보편주의와 특수주의(인종주의, 성차별주의)가 내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것들이 과거의 인종혐오주의와 가부장제와는 달리 자본주의적 축적을 뒷받침하는 요소를 구성한다. 세계체제 속에서 시장은 독점시장을 의미하는데, 이 때 독점의 창출과정에서 국가는 주요한 행위자로서 작동한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경제적 힘을 가진 국가가 헤게모니를 가진다. 지금까지의 헤게모니의 순환은 대략 세 가지였고, 현재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고 월러스틴은 진단하는데 17C 네덜란드, 19C 영국, 20C 미국, 현재의 다중심체제가 그것이다.  

월러스틴에게 세계체제는 역사적 체제이다. 이는 그것이 생성 발전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는 의미인데, 현재의 시기는 월러스틴에게 현 체제의 소멸기이며 새로운 이행의 시기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위기 내지는 이행이 나타나는 원인일 텐데, 외견상 그러한 원인은 68혁명의 저항적 힘이 위기를 표면화시켰지만, 내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장기적 추세에 의해 위기는 심화되어 온 것이다. 즉 비용위기로 인한 평균이윤율의 압박이 그러한 위기를 추동하는 실질적 힘이며, 이것이 정치적 위기와 결합함으로써 현재의 이행의 시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는 지배자들의 대응은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로 나뉘지만, 이들 각각의 실효적인 대응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또한 중요한 점은 새로운 운동형태의 등장이다. 기존의 국가장악을 목표로 하는 운동에 대한 환멸로 인한 새로운 운동형태, 즉 운동들의 운동을 향한 경향은 앞으로의 우리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이 현재 이행의 시대를 규정하며,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로 놓여있게 된다.

월러스틴이 기술한 바에 의하면 세계체제에 대한 비판은 실증주의자들(이론적 검증의 문제), 정통 맑스주의(유통주의적이고, 생산주의적인 기반을 무시한다는 비판), 국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들(경제주의), 문화적 특수주의자들(경제주의)등으로부터 나타났다. 월러스틴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여러 비판들의 요점은 바로 주체성의 부재라는 점이라고 판단하며, 그에 대해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체라는 문제는 언제나 구조 속의 주체성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점을 떠나서는 현재의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러한 구조의 움직임을 아는 것이라고 월러스틴은 주장한다.  




2. 세계체제론에 대한 논평




앞서 세계체제론 비판에 대한 월러스틴의 답변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듯이, 세계체제론의 전체적 구성은 주체성의 측면을 사상한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성의 측면보다는 체제의 구조적 운동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 월러스틴 자신의 전략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체제론이 앞으로의 변혁에 대한 전망을 내세우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주체성의 사상은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이는 현재를 이행의 시대로 규정할 때 주체성의 힘을 외적인 요소 또는 우연적인 요소로 바라보는 관점을 세계체제론이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인데, 이는 자본을 하나의 사물로서 또는 그것만을 진정한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수많은 맑스주의 경제학들이 가지는 한계를 되풀이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본을 사회적 관계로 바라보는 관점들 즉 노동자계급과 자본의 계급투쟁의 결과로서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바라보는 관점에 의해 비판되고 있는 관점이다. 역사적으로 혁명적 주체성을 제기하는 전통적 관점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에서 비롯된다. 그는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에 맞서 혁명적 주체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당대의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화시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이룩하자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레닌의 논의는 민족국가 중심적 시야와 필연적 프롤레타리아 승리 결정론에 갇혀있었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러한 레닌의 한계에 대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적 정정은 민족국가적 시야를 넘어서며 필연성에 대한 완화를 통해 일견 긍정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레닌이 취했던 혁명적 주체성의 입장이 월러스틴에게서는 체제 외부적 요소로 머물고 있다. 즉 위기는 실제로는 체제의 자기결정성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월러스틴에게 투쟁의 관건은 이러한 구조적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 즉 앎의 문제이다. 물론 자본주의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문제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파악에서 실제적 투쟁이 차지하는 위치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이다. 따라서 결국 문제는 자본의 자기운동으로 파악할 것인가, 노동과 자본의 계급투쟁의 과정으로 파악할 것인가일 것이다.  

그리고 월러스틴의 자본개념은 임노동과 자본의 적대에서 비롯된다기 보다는 분업과 독점을 전제로 한 끊임없는 축적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맑스가 『자본』에서 갈파한 일상적 시장 속에서 잠재된 임노동과 자본 사이의 근본적 적대를 사상시키는 관점이다. 맑스는 시장을 자유시장과 동일시한 적이 없으며, 그에게 시장은 언제나 불평등한 교환이 발생하는 또는 착취가 발생하는 장소였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상품이 교환되는 모든 시장은 언제나 착취를 전제하며, 그것의 내부에는 노동과 자본의 적대관계가 놓여있다는 것이 맑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월러스틴의 자본개념 속에서 이러한 맑스의 생각은 희미하고 애매하게 놓여있어 착취를 둘러싼 주요한 적대를 자본과 노동 간이라기보다는 국가간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러한 착취에 대한 관점이 확장된 것이 종속이론적 관점이다. 이들은 세계체제를 중심과 주변으로 바라보면서 중심부 국가들에 의한 주변부국가들의 수탈 문제를 처음으로 체계화하였다. 실제적으로도 중심부국가들의 착취는 엄연한 현실이며, 종속이론가들은 적절한 문제제기를 하였지만, 이들은 그 문제의 근본적 문제를 국가간의 문제로 간주함으로써 착취문제를 진정으로 자본과 노동 간의 문제로 제기할 수 없었다. 이들은 자본주의적 발전이 아닌 다른 종류의 발전이라는 다시금 ‘발전’이라는 문제에 갇히게 되는 길을 밟아나가게 되는데, 그것은 이들의 이론에 내재한 국가주의적 사고에 비추어서 보면 필연적 수순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주요한 변혁의 동력으로 제3세계 민중만을 사고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제3세계적 전망이라는 협소한 관점에 머물고 있는 종속이론적 관점을 월러스틴은 반주변을 도입함으로써 좀 더 설명력을 갖추는 것으로 보완하려고 하지만, 월러스틴 역시도 이러한 제3세계적 전망과 국가주의적 접근법의 틀을 극복하기 보다는 유지하고 있는 한계를 지닌다. 중심-주변-반주변이라는 지리적 구분은 세계를 다시금 국가적 경계선들을 중심으로 나누며 그러한 경계를 중심으로 착취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한 변혁의 동력은 다시금 주변부로 향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아리기처럼 제3세계 엘리트들과 제1세계 노동자들 간의 동맹이라는 전략으로까지 나아가게 만든다.

그리고 또한 중심과 주변이라는 지리적 관계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최근의 자본주의 발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화는 더 이상 외부를 발견할 수 없으며, 이 상황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맑스가 말한 실질적 포섭의 상황에 놓이게 되며 ‘주변’이라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세계체제론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위기의 한 요인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변화된 상황이 나타내는 결과를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반주변인 한국의 서울에서도 제1세계와 제3세계는 동시에 존재하며, 주변부인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제1세계와 제3세계는 혼재하며, 중심부인 미국에서도 그것은 혼재하고 있다. 즉 더 이상 지리적 관계로 중심과 주변을 나눌 수 없으며 전지구적으로 그것은 혼재한다. 따라서 중심과 주변의 지리적 잔존을 자신의 이론 속에 내재화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제1세계 자본가와 제3세계 민중간의 대결이라는 전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세계체제론에서 주요한 행위자는 자본가와 국가이다. 그리고 독점의 창출배경은 항상적으로 국가이다. 이러한 국가의 힘을 배경으로 해서만 자본은 이윤창출의 근거가 되는 독점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자본주의발전단계는 이러한 국가중심적인 시각을 상당부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세계체제론은 국가자율성론을 부정하려고 노력하며 심지어는 경제결정론으로까지 불리지만, 체제 내부에서 행위의 주체가 실제로는 국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은 아이러니로 보인다. 초국적 자본과 초국적 기업과 초국적 국제기구들의 활동은 전세계를 다시금 새로운 수준으로 절합하면서 이러한 국가의 중심적 활동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민족국가 중심적 시야를 벗어나 세계적 시야를 가지려고 하지만, 그 내부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양상은 과거의 제국주의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세계체제론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겠다.













참고문헌

이매뉴얼 월러스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당대, 2005

이수훈, 『세계체제론』, 나남, 1999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제국』, 이학사, 2001

조정환, 『지구제국』, 갈무리, 2002

정성진, 「세계체제론: 맑스주의적 비판」, 『진보평론』2호, 1999

비버리 J. 실버.지오반니 아리기, ‘남과 북의 노동자’,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7장,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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