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2
시니 글, 혀노 그림 / 영컴(YOUNG COM)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죽음에 관하여>는 사후 세계를 다룬 작품이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작가가 상상한 작품 속 세계는 무한동력기계처럼 알아서 돌아가는 삶의 터전인 세상이 있고, 그 세상을 창조한 후 세상사엔 개입하지 않는 `신`이 있으며, 세상에서의 생명이 끝나면 인간은 환생절차를 밟게 된다. 죽고 나면,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며, 빛이 나는 터널을 거치기 전 잠시 신을 만난다. 신은 세상사에 무심하나 경계의 공간에서 자신의 피조물과 만나 대화를 통해 망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신은 모습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나 자유로우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즐기는 남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신은 망자를 환생의 터널로 인도하는데, 바로 그 시간 동안 망자는 자신의 삶의 가치와 회한을 돌아보게 된다. 터널을 들어간 이후는 묘사가 되진 않지만, 영혼은 전생을 잊고 새로운 존재로 환생한다. 작품은 총 21편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 환생의 터널로 들어가지만 몇몇은 다시 살아나 깨달음을 자양분 삼아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기회를 얻기도 한다.


작품의 핵심은 공감을 통한 치유이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은 삶을 총체적으로 돌아볼 수 있음에 의의를 가진다. 살아 있을 때와 보는 관점이 달라지니 망자들은 깨닫는 것이 많다. 자신의 아픔, 소중했던 무엇, 미련, 고통이 이 경계의 공간에서 기억으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살아있는 독자들에게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로 돌아온다. 찰스 디킨즈가 지은 <크리스마스 캐럴>의 주인공 스크루지가 겪은 하룻밤의 카타르시스를,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얻어올 수 있다. 


또한 각 에피소드엔 여러 가지 상징과 암시가 가득하다. 3화에 등장하는 한부모는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데 뒷주머니에서 17이란 숫자가 적힘 총알을 두 개 발견한다. 그 총알로 신에게 총상을 당한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죽음`으로써 세상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는데, 그 총알은 그가 부양해야 할 17세의 두 아이들을 의미한다. 총상의 고통은 아비의 죽음으로 겪어야 할 아이들의 아픔이었던 것. 그리고 20화에 등장하는 `노는 오빠` 스타일의 청년은 죽음에 대한 유유자적함과 동시에 삶에 대한 낙관을 보여주는데, 이는 공자의 21세기형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치 꿈처럼, 세상에 남기고 온 것들, 죽어서까지 간직한 기억들이 상징으로 나타나 망자를 둘러싸고 신과의 대화를 통해 다음 생으로 녹아날 준비를 한다. 


몇 몇 에피소드에서는 범죄자들의 사후를 다루기도 한다. 이들은 특별한 이유없이 한 가정을 살인으로 박살내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죄책감도 없다. 작품의 사후 세상엔 영원한 불꽃으로 죄지은자들을 벌하는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계공간은 참회의 기회를 받을 수 있고, 다음 생으로 건너갈 수 있는 정거장 같은 곳인데, 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괴로움을 느껴보며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공포에 질린다. 이런 절차가 어쩌면 `지옥`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살아 있을 때 공감의 결핍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준 자가 사후에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자신이 만든 `지옥`을 겪어본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한 뉘우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죽음은 리셋버튼을 누를 기회를 얻는 통과의례이다. 이를 통해 지난 삶에서의 교훈과 타인과 나눈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망자에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과 같다. 그러나 그 선물은 환생하며 다시 망깍되고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버리는 모양이다. 긴 시간 세상은 존재들의 죽음을 겪어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곳이니까. 한편 제레미 테일러 같은 꿈 분석가라면 이 깨달음이 누적되어 집단무의식으로 녹아들고, 인간은 영적으로 진화한다고 볼 지도 모르겠다. 혹은 스티븐 핑커의 최근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작가가 방대한 데이터를 근거로 주장한 대로, 인간은 내면의 악마를 잠재우고 인류가 점점 선해지고 있음이(즉, 살인율이 줄어들고 있음이) 바로 이 깨달음의 누적때문이라 상상할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