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자가 시공을 오가는 이야기를 하고 인물들의 대화를 섞고, 그 이야기를 나선으로 땋아내리고 인물이 태어난 해를 헷갈리게 쓰거나(14세기 사람인 에이메리크를 1900년에 태어나 훌륭한(?) 나치가 되었다든지, 나치 중령 루돌프 회스가 14세기에 태어났다고 하는 등) 교차하는 것은 우선 서술자가 치매로 정신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을 잘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오고감의 반복이 ‘악이란 무엇인가’의 실체로 또렷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의 보편성과 그 끈끈한 역사는 이렇게 형상화됩니다. 이 압도하는 본질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소거가 아니라 봉인이 아닐까 합니다. 그를 위해 인간은 수시로 악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해부하고 박제해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바치는 시간. 누군가는 종교재판에 휘말려 이유도 없이 모진 고문을 받고 누군가는 출세를 방해받아 짜증을 냅니다. 아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이 악의 생산자들에게 영원히 돌아갔으면.

잠을 자고 싶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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