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좀비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워키의 식인귀 제프리 다머를 모델로 삼아 만든 이야기입니다. ‘나’는 쿠엔틴이란 이름의 젊은이로, 내내 자신을 ‘나’와 ‘Q_ P_’로 분리해 이야기합니다. ‘나’와 달리 ‘Q_ P_’는 사회적 페르소나를 덮어쓴 존재이자 거울 속에서 문득 봤을 때 주인공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자못 달라 열등감과 패배감으로 ‘나’를 놀라게 하는 생경함을 지닌 이지요.

읽는 동안 힘들었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지인의 고민상담을 듣는 심정 같았달까요. 역자는 후기에서 우리 내면의 보편적 잔인성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편 인간으로서 잔인성이야 당연히 누구에게나 있지만 저런 환경에서 저런 식으로 발현되진 않지요. 참으로 ‘내 안의 일베’ 같은 소리 하고 있으십니다.

다만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선 주인공과 교집합으로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 누구와도 접점을 갖지 못한 채 타인을 수단으로밖에 생각 못하는 퇴행적 인간입니다. 그에게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로서 그의, 사랑의 대상은 오직 그만 바라봐야 하고 그를 위해 가학적 헌신을 해야 하며 그 어떤 생각도 가져서는 안 되는 진공같은 존재입니다-좀비인 것이지요. 현실에선 그런 타인은 있을 수 없으니 죽여도 뒷탈이 없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를 고르고 골라 얼음송곳을 이용한 뇌엽절제술 따위로 좀비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몇몇을 납치해 시도를 했으나 수술은 실패하고 대상은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주인공의, 타인을 대하는 이런 미숙한 태도에서 폭력성과 변태성을 제거하면 대강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 나오지 않나 싶어요. 거기에 동의한다면, 독자는 결국 주인공의 공허한 내면에 딸려 들어가 그 고통을 함께 맛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반감과 공감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입니다. 과거로부터 그 무엇도 성찰하지 못하고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현재만을 살아내는, 불안한 자신의 욕망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이 추악한 범죄자가 못내 철학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 그로 인해 더욱 혐오스럽고 그로 인해 어느 선까진 공감할 수 있어 독자에게 고통과 공포를 안겨주는 이 필력은 <흉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적이 있습니다.









* 제프리 다머의 아버지 라이오넬 다머가 쓴 ‘A Father‘s Story’에선 아내의 약물 중독으로 인한 문제를 심각하게 다뤘습니다. 이 소설에서 제프리를 모델 삼은 주인공은 어머니나 누나 주니에 대해선 별 언급이 없으나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눈에 띄게 표현합니다. 어머니, 할머니, 누나 주니는 호칭이나 이름으로 지칭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거리둘 때 쓰는 호칭법인 이니셜(R_ P_)로 표기합니다.

* 희생자들이 진짜 좀비가 되어서 주인공을 물어 뜯어 해치웠으면 좋겠다 바랐습니다. 그랬다면 이 소설은 공포소설이 되지 못했겠지요.

* 표지 광고에 ‘박찬욱 감독 추천’이란 글을 보고 아 읽지 말자 생각했었습니다. -_-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