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가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지현 옮김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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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포소설집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초자연적 현상에 기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조리한 상황 속에 놓인 인물들은 서로 소통할 수 없고 공포의 대상은 비유의 보조관념과 원관념을 동시에 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소설 <흉가>가 그러합니다. <흉가>에서 만나게 되는 공포의 대상은 희미하게 나타나는 다른 세계의 그림자가 아니라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대상들입니다. 다만 이것을 범죄소설이 아니라 공포소설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탁월한 묘사력 때문이지요.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존재를 가진 공포는 실체가 없는 모종의 상황들이기에 인물들은 대적할 수 없습니다. 이런 꿈은 깨고 나서도 한참을 두통에 시달리게 하지요. 여성이란 특수한 성별이 겪는 일상의 고통을 몇백 배 확대해서 보여주는 사진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사진은 사진이지만 이상한 사진입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 같습니다. 그의 작품 <99센트>는 거대한 마트 내부를 찍은 듯한 평범한 사진 같지만 모든 곳에 또렷하게 초점이 맞춰지게 인위적으로 보정한 사진이기 때문에, 즉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낯익은 공간의 사진임에도 거북함과 이상함이 느껴집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작품들이 그러합니다. 소비로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현대인의 공포, 여성이기 때문에 느껴야 하는 공포, 개인의 개성이라는 것이 미디어와 자본에서 정해주는 것 따위임을 알았을 때의 공포, 직업적 소명이라는 것이 일에 소외된 채 부품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공포, 그 공포가 극대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집의 매력은 전복입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그들은 불균등한 세상에서 우위를 점하며 어떤 착취를 하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상식적이고 순진한 존재들이지만 그 순진함의 대가는 참혹합니다. “지금은 문명이 저무는 시간이었다. 조코가 여러 번 주장했듯 “가해자가 있는 경우에는 신이 벌을 내려 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다.”_<가해자>







*아래 이미지는 안드레아스 거스키, <99센트>입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블라이 저택의 저주받은 거주자들>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못 회전>을 차용한 작품입니다. 그에 대한 평은 작가 듀나가 적은 것이 있습니다.

http://news.bookdb.co.kr/bdb/Column.do?_method=ColumnDetailM&sc.webzNo=3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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