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게으름 - 게으름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10가지 열쇠, 개정판
문요한 지음 / 더난출판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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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는 애증의 대상입니다. 제겐 그렇습니다. ‘근대사회, 소외된 노동자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득도 및 지행합일을 이루었다고 착각하게 하는 팁들을 모은 종이 다발 플러스 저자 자기 자랑’ 정도가 이런 부류의 도서가 갖는 의미랄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멘탈 게이지가 바닥을 드러낼 때 진통제 맞는 느낌으로 이런 책들을 읽곤 합니다. 읽을 상황이 아니면 이 부류의 제목들만 읽기도 하지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제법 큰 영향을 준 책입니다. 덕분에 일상에 규칙이 생겨 갈등상황을 큰 스트레스 없이 넘어갈 수 있었지요. 다만 플랭클린 플래너를 해마다 비싼 돈 주고 사서 폐지로 만들어 버린 일은 없었던 일로 하고 싶습니다(주먹울음).

<굿바이, 게으름>. 저같은 게으름뱅이가 아 읽어야지 하고 사놨다가 결국 안 읽고 말 것 같은 책이 가질 법한 제목입니다. 두 달 전부터 구독하고 있는 리디셀렉트에 들어와 있는 책 제목들을 슬렁슬렁 넘겨 읽다가 ‘그러고 보니 뽕 맞을 때가 되었군’ 하며 아무거나 찍어서 읽는다는 것이 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건질 것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자잘한 팁들을 그럴 듯하게 담아낸 책이 아니라, 게으름의 정의를 다시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바쁘게 움직이고 있더라도 사람은 게으를 수 있습니다. 게으른 행동이란 ‘자기 실현’이란 삶의 목적을 상실하거나 소홀했을 때 행하는 모든 도피적 행동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융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적 상실엔 여러 동기가 있겠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개인이 겪는 정신적 상처나 곤궁 혹은 성장의 부재를 가장 크게 봅니다. 그러니 이런 도식이 그려지지요 ; 정신적 곤란 => 자기 실현 목적 상실 => 자기 실현을 위한 생활에서 도피(=게으름). 이후 책은 이런 도피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방안을 워크북 방식으로 제시합니다. 워크북을 통해 단련되어 나오길, 필자가 바라는 독자의 모습은 ‘능동적이고 몰입과 휴식을 구분하며 실패로부터 배우고 하루를 반성하며 긍정에너지 충만한 인간’ 정도가 됩니다. (워크북을 따라하다 보면 이런 프로그램의 워크샵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는데 책 제일 뒤에 저자가 운영하는 기관의 워크샵 소개가 뙇... #빅픽처)

그런데 말이지요, 저는 왠지 이제 더 이상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란 융의 말을 대전제로 놓아두면, 나머지 인생의 이런 저런 요령들은 연역적으로 딱딱 해결되지 않을지. 자기계발서 독자의 마지막 수업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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