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금각사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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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승려의 아들로 태어난 미조구치는 자신없는 외모에 말을 더듬는 문제로 일찍부터 세상과 자신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그 공허한 거리를 메우는 것은 미에 대한 성찰과 탐닉이었지요. 그 ‘미’는 금각사로 형상화 되어 미조구치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의 열등감은 높은 담장이 되어 세상을 아래에 두는 거만함의 기반이 됩니다. 금각사는 이후 짝사랑하던 우이코의 이미지로 변형되기도 하는 등 그의 성장기에서 이성에 대한 욕망과 구별되기도,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아버지 사후 그는 금각사의 도제로 들어가고, 거기서 친구 쓰루카와와의 교제를 통해 밝은 세상에 편입되기도 합니다.

이후 차기 금각사 으뜸 자리에 대한 야망을 인정받아, 소원대로 노사의 총애를 받게된 그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거기서 안짱다리를 가진, 또한 휘어진 다리 못지 않게 휘어지고 뒤틀어진 정신세계를 가진 가시와기와 교제합니다. 롤모델이 되어 마땅함직한 노사의 부정을 목격하고 노사만이 알고 있는 자신의 부정과 암묵적인 거래를 하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미에 대한 문제는 미조구치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미조구치 역시 이에 집착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기까지, 금각사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험담부터 좀 하겠습니다.
1. 여성에 대한 시각이, 당대 세태를 감안해서 까방권을 준다 하더라도 불쾌하기 그지 없습니다. 여성이 사람이란 걸 전혀 감안하지 않습니다.
2. 현실에 발 딱 붙이고 밥 먹고 열심히 살면 안 되겠니?
3. 남성성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모르는 작가의 집필 태도 괴롭습니다.

작품이 총 100으로 되어 있다면 여기서 위의 3을 빼고, 나머지 97은 놀랍고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기껏 천재로 태어나놓고 왜 인생 후반을 작가는 그렇게 살고 말았을까 안타깝고 애석하지요. 탐미의 문제에 있어선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또한 그에 맞선 대결이 한 인물의 인생을 끌어가는 줄기라는 것, 허무를 통해 완성하는 존재에 관한 고찰(이 부분이 상당히 일본답다는 생각이 들구요), 성욕을 통해 보여주는 생명과 소멸에 관한 인식, 이 정도가 단편적으로 머리에 떠돌 뿐입니다.

다만 좋았던 97의 지분은 문장 속에 결마다 스며든 유려한 감정 묘사와 통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문 몇 개를 들면 이렇습니다.

“그는 정말로 선의의 통역자, 내 말을 현세의 말로 번역해주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렇다. 때로는 쓰루카와가 납에서 황금을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처럼 여겨졌다. 나는 사진의 음화, 그는 양화였다. 한번 그의 마음으로 여과되면 나의 혼탁하고 어두운 감정이 하나도 남김없이 투명한 빛을 발하는 감정으로 변하는 것을 몇 번이나 놀라움으로 바라보았던가! 내가 말을 더듬으며 주저하고 있는 사이에 쓰루카와의 손이 내 감정을 뒤집어서 외부로 전해준다.”

“하나의 솔직한 감정을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정당화하는 동안은 좋으나, 때로는 두뇌에서 만들어낸 무수한 이유들이 자신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을 스스로 강요하게 만든다. 그 감정은 원래 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역시 내 체험에는 누적이라는 것이 없었다. 누적되어 지층을 이루고 산의 모양을 형성하는 따위의 두께가 없었다. 금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사물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 나는 자신의 체험에 대해서도 각별한 친근감을 품지 못했다. 단지 그러한 체험 중에서 어두운 시간의 바다에 휩쓸려버리지 않는 부분, 무의미하고 끝없는 반복으로 함몰되지 않는 부분, 그러한 작은 부분의 연속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의 꺼림칙하고 불길한 그림이 점차로 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맥락 속에서 생명력을 가진 문장들을 칼로 도려내듯 떼어와서 인용하니 그 싱싱함을 잃어버렸지만, 이런 표현들이 독서 당시 마음에 일으킨 파문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다소 정적으로 진행되던 줄거리가 후반부 급물살을 타며 긴장감으로 터질 듯할 때 이 파문은 큰 파도가 되지요.

독자에 따라 호오가 갈릴 것 같은 작품입니다. 현란한 기교로 때우는 소설로 읽힐 수도, 탐미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여 속세로부터 보호해주는 피난처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추천하고 싶습니다.






* 1950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읽었는데 덕분에 후반에 줄거리가 갖는 긴장감을 ‘스포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읽다가 뒤집어지게 웃은 부분이 있었는데 각종 뜬구름 잡는 소리로 사람 불편하게 하는 가시와기가, 돈 문제가 딱 걸리자 무섭사리 현실모드로 전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주인공도 만만치 않아 떼먹을 궁리부터 합니다. 이런 묘사가 없었으면 소설은 상당히 느끼했을 것 같습니다.

* 마루야마 겐지는 미시마 유키오의 저격수였던데, <금각사>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궁금합니다.

* 20대 남자들 허세는 시대와 장소 불문 견디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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