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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평점 :
판매중지
처음 읽은 정이현 작가의 소설입니다. 달콤한 나의 도시와 이 책, 둘 중 무엇을 먼저 읽을까 하다가 ‘낭만‘이란 단어에 꽂혀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습니다. 이 단어만큼 그 뜻을 이해하는데 오래 걸린 말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언제 어디서든 이 단어를 만나면 바짝 긴장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로맨티시즘이 왜 물결 랑, 흩어질 만으로 번역되었는지는 그냥 두겠습니다. 낭만에 대한 국어사전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1)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
그러나 우리는 머릿속에 각자의 사전을 넣어두고 있지요. 제 사전엔 이렇게 입력되어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애써 좋게 미화하는 감정적 감상적 작업. 예를 들어 <메밀꽃 필 무렵>의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 운운 밤길 장면. 아름답고 서정적이나 실은 밤에 잠도 못 자고 개고생하며 다음 장터로 가는 거임 ㅇㅇ‘
그렇기에 이 책의 표지를 열며, 표지 이곳 저곳 흩어져 있던 꽃모양들이 날카롭거나 여위었거나 흐릿한 것에 주목을 했지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포함해 총 8편의 단편소설들을 담고 있습니다. 긴장하길 잘했지, 사실 이런 문체나 이야기는 제게 많이 낯섭니다. 이렇게 속물적인 인물들이 연달아 주인공이라니. 이렇게 아무도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니. 그런데 완벽하게 불행해 보일 수도 있다니. 게다가 2000년대 초반에 적힌 세태소설 답게 ‘아햏햏‘ ‘열라 캡숑‘ 같은 말들이 인용되어 있는데 소싯적 그 말들을 사용하던 제게 그걸 읽는 것이 어찌나 고통스럽던지요. 하지만 그런 고통은 독서 중 느끼는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이날 포카칩을 사왔어야 했습니다). 물질주의, 가부장제에 대한 완벽한 풍자. 이 소설집은 고현학적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 특히 가부장제 체제 유지의 도구로서의 로맨스에 대한 통렬한 돌려까기엔 저도 모르게 행간에 ‘좋아요‘ 버튼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했었습니다.
다만 이걸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진 모르겠습니다. 체제 순응을 역이용한 기만이 과연 세계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의미하는지 의문이 많습니다. 강남 거주 중산층 ‘왕여우‘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대한 조롱과 전복의 서사일까요. 저는 그냥 작가가 ‘보여주며‘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에 이 소설의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뒷편에 실린 비평문엔 이 소설이 새로운 유형의 여성들을 만들어냈다고 했으나 글쎄요. 기존 자연주의 소설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 저는 이 작품들 중 <무궁화>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