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학년 때였다. 화창한 봄이었고, 원했던 학교에 원했던 학과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선배들 등 학교 생활에서 내가 불행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3월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그날 따라 수업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마음에 드는 옷도 입었고, 화장도 괜찮게 했고, 수업준비도 모두 마친 상태였다. 한 번쯤 수업 펑크 내는 게 뭐 어떻겠어, 하고 발길을 돌린 것은 집 근처 지하 만화방이었다. 거기서 해가 저물 때까지 만화를 읽었다. 그 다음 날도 학교로 가지 않고 학교 갈 준비를 해서 나온 후 만화방으로 갔다. 하루쯤 어떻겠어, 또 하루쯤 어떻겠어.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한 학기 동안 한 번도 학교에 출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것은 교수님의 전화였다. 무슨 사정인지는 묻지 않겠다. 그냥 **에 관한 리포트만 제출해라. 그러면 성적을 주겠다. 나는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계속 전화를 했고, 거기엔 정말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전화를 무시했고 끝까지 리포트를 쓰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우울증이란 말이 있는지도, 이것이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인지도 몰랐고, 그렇게 한 학기를 날리고 나서 내게 남은 것은 지독한 자기혐오뿐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가 만약 이 병에 대해 알았다면, 그것이 지금까지 따라다니는 고질병으로, 치료와 인내로 함께 지낼 수 있는 친구같은 병인 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앤드류 솔로몬은 학벌 좋은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다.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의 서문을 통해서였다. 그때는 이 사람이 심리학자쯤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소설가라, 전문가가 쓰지 않은 우울증에 관한 책이 과연 괜찮은 책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읽고난 지금은? 이제 더 이상 우울증에 관한 책은 읽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이 한 권이면 모든 것이 충분하고, 새로운 연구에 관한 것이 아닌 이상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복습하고 되새기기만 해도 나에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우울증의 증상과 현재 연구되고 실행되고 있는 치료방법, 역사, 우울증을 바라보는 사회의 관점과 우울증과 관계된 사회의 여러 가지 측면-가난, 정치 등-을 다룬다. 그런데 다른 책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지식들을 다루면서 자신과 지인들의 드라마를 함께 엮었다는 것이다. 책의 기둥은 작가 본인의 서사다. 어떻게 우울증이 왔고, 어떤 증상을 겪었으며, 어떻게 치료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상 본인의 프라이버시를 포기한다. 이 정도로 자신을 열어 보여주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걸까. 작품 속에 자신을 솔직하게 열어 놓기로는 김수영 시인 만한 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작가도 이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기둥에 가지를 꽂았는데 그 가지가 바로 우울증에 관한 객관적인 지식이다-증상, 정신과 물질로 나눌 수 있는 치료법과 통합, 유전, 역사, 현재의 연구상황 등. 그리고 그 가지에 다시 작은 열매들을 달았는데 그것은 지인들의 이야기로, 주로 우울증 치료와 극복에 관한 서사이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우울증에 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특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는 한꺼번에 다 털어놓지 않고 독서가 진행되면서 맺게 되는 독자와의 친밀도를 감안하여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를 테면 초반에 자신의 우울증이 발현하게 된 표면적 원인이 된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한참 뒤에 그 죽음 이면에 있는 더 깊은 이야기와 체험담을 털어놓는 식이다. 이런 식의 이야기하기 방법은 굉장한 전달력을 지닌다. 나는 작가가 소설가이기에 이런 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총 12장으로 되어 있고, 가장 인상적인 장은 9장 ‘가난’이었다. 우울증은 치료비용이 많이 드는 병이다. 가난이란 환경은 우울증 발현의 최적 조건이고, 의사도 상담사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읽은 우울증에 관한 어떤 책에서도 언급이 없었다. 의사나 상담사가 치료비를 마련해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장에서는 대담하게 우울증과 가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직면해야 하지만 직면해오지 않은 사실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이겨낸 사람들에 대한 사례를 소개한다. 또 11장 ‘진화’에서는 우울증이 인류가 진화하며 생존에 필요했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라는 여러 가설을 알려준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희망’이다. 원인을 안다고 해도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못할 때가 많으며, 발병 이후엔 치료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고, 여느 병이 그러하듯 치료에 관한 환자의 노력이 필요한(그러나 우울증 자체가 그 노력을 펼치지 못하게 하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지만)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병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그 증거로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 책 또한 그 목소리 중의 하나이다.

“물론 조금도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유머 감각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 우울증을 겪는 동안 꼭 명심해야 할 점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생이 끝난 시점에서 불행했던 세월만큼을 더 살 수는 없다. 우울증이 삼켜버린 시간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당신이 우울증을 겪으며 보내는 순간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시간들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분이 저조하다 해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겨우 숨만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참을성 있게 견뎌 내면서 그 견딤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우울증 환자들에게 주는 중요한 조언이다. 시간을 꽉 붙들어라. 삶을 피하려 하지 마라. 금세 폭발할 것만 같은 순간들도 당신 삶의 일부이며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원제는 ‘한낮의 악마’(Noonday Demon)이다.
“에바그리우스(4세기 신비주의자)도 우울증은 수행자를 괴롭히고 유혹하는 “한낮의 악마”라고 칭하며 우리가 물리쳐야 할 여덟 가지 유혹들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내가 “한낮의 악마(이 책의 원제 ‘Noonday Demon”)를 제목으로 택한 것도 우울증의 의미를 정확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낮의 악마”가 지닌 이미지는 우울증 환자를 괴롭히는 끔찍한 침입의 느낌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우울증은 뻔뻔스러운 면이 있다. 대부분의 악마들은(대부분의 고뇌들은) 밤의 어둠을 틈타서 찾아들며 그것들을 분명하게 보는 것은 곧 그것들을 쳐부수는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은 눈부신 햇살 아래 당당하게 서 있으며 우리가 똑바로 보아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그것의 모든 이유들을 알아도 무지한 것처럼 고통받는다. 그런 정신 상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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