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 새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엄지영 옮김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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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든 느낌은 공포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

사만타 슈웨블린 <입속의 새> 중 '행복한 문명을 향해서' 128p

현재 한국에 출간된 사만타 슈웨블린의 작품 중 가장 초기작에 해당되는 <입속의 새>를 읽어보았다. 처음으로 읽은 중편 <피버 드림>과 달리 2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피버 드림>만큼이나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소설집이었다.

갑자기 새를 먹기 시작하는 딸(입속의 새)이나 목적을 알 수 없이 집요하게 구덩이를 파는 사람(구덩이를 파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하고, 잔돈이 없어 기차 티켓을 구매하지 못하여 기차역 역무원과의 기묘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행복한 문명을 향해서)도 나온다. 심지어는 살해당해 트렁크 가방에 넣어진 여성의 시신이 예술작품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하나같이 독자에게 그 어떤 자세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갑작스럽고 기이한 사건 속에 내던져버리고 이야기 또한 갑작스럽게 끝나버린다. (내던진다는 표현이 딱이다. 그냥 갑자기 낯선 곳에 뚝 떨어진 느낌.) 솔직히 읽으면서 당혹스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왜인지 기이한 사건들과 그로 인해 남게 되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건조한 문체들이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책 뒤표지에 ‘새롭고, 용감하고, 미친 스무 편의 이야기’라는 카피가 정말 공감되었던 작품.


+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작품은 <보존>. <행복한 문명을 향해서>, <사물의 크기>,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임신과 출산에 대한 불안감을 이야기하는 <보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작은 테레시타 위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천장을 쳐다본다. 다른 생각은 할 수도 없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령 어느 나라에서 렌터카를빌려 다른 나라에서 반납하고, 한달 전에 죽은 생선을 냉동실에서 꺼내 해동하고, 집을 나서지 않고도 각종 공과금을 내는 놀라운 일들이 가능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건의 순서를 조금 바꾸는 것처럼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걸까? 나는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다.

사만타 슈웨블린 <입속의 새> 중 '보존' 26 ~ 27p

자줏빛 육체. 그들 몇미터 앞에 주검이 놓여 있다. 인간의 살과 인간의 피부가, 거대한 허벅지가, 그 모든 것이 가죽에 짓눌린 채 여행가방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부패의 냄새.

사만타 슈웨블린 <입속의 새> 중 '베나비데스의 무거운 여행가방' 287p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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