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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평점 :
저번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에 이어서 <정조 평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12월의 첫 번째 독자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학기 학교에서 수강했던 수업 중에서 역사 교육과의 전공 수업을 선택해서 듣게 되었는데(정말 순전히 호기심으로) 이를 통해서 예전에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했던 것이 떠올랐고 역사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 번째 독자 책 중에서 <정조 평전>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은 정조가 재위했던 24년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설명한 후 그의 주변 사람들이나 정조가 시행했던 여러 정책들과 국가 운영에 있어서 정조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부제목인 ‘말안장 위의 군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조는 위태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왕이 되었다. 사도세자의 일로 인해서 정조의 왕위 등극을 반대하는 이가 많았고 정조를 죽이려는 이도 많았기 때문이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정적 제거와 아버지인 사도세자 문제, 당파 싸움이 치열하여 백성들의 불편함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상황을 해쳐나가야 했다.
정조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단순히 한 세력만을 등용하고 반대 세력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의견이 보다 우수한가?’를 내세워서 능력을 중요시하고 신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도고 상인들의 독점적 상행위를 막기 위해서 통공정책을 실시했고,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도 백성들을 생각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렇게 훌륭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사실이지만 읽으면서 정조라는 인물에 대한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다. 시대의 영향이 컸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내가 봤을 땐 답답한 부분도 있었다. 백성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는 점, 단순히 정책의 수혜자로 보는 관점이었다. 물론 정조가 시행했던 많은 정책들 덕분에 당시 백성들이 수혜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 애초에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시민들이 뽑는 현재의 상황에서 봤을 때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 혹은 시민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인데 그 점은 인지를 못한 것이다. 비단 현재의 상황 뿐 아니라 당시 세계 여러 나라의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정조가 재위하기 훨씬 전에 영국에서는 왕정을 몰아내는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이 일어났고 최초의 입헌 군주제가 수립되었다. 정조가 재위하는 시기에는 영국과 더불어서 산업혁명이 한창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고, 우리나라에서도 박제가와 같은 북학파에 속한 인물들이 북학의 중요성을 알렸지만 정조는 여전히 북벌을 취하는 태도였다. 그가 조금만 더 세계를 둘러보고 발맞춰서 나아가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학문이 정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 게 낫고, 문장이 실용에 쓰이지 않는다면 없는 편이 낫다’라고 하며 소설에서 쓰이는 문장을 잡문체라고 규정하면서 이를 금지하였다. 소설을 읽은 관리는 파직되어서 반성문을 쓰거나 책이 불태워지기도 했다. 이 점 또한 아쉬운 부분이었다. 직접적으로 피를 흘린 사건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여러 가지 사유와 문화가 성행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되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점에 매우 공감했다. 당시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소설, 박지원의 <양반전>과 같은 작품들을 사회 기강을 문란하게 하고 체제의 정당성을 훼손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을 읽으면서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라는 생각과 동시에 전제군주 정치의 한계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문체라고 칭하는 것들을 통해서 서민들은 글자와는 먼 생활이 아니라 유희를 얻을 수 있고 글을 익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를 비판한 소설들이 퍼지면 사회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는 계기가 되면서 올바른 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정조가 백성들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알겠지만 전제 군주 정치의 한계점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생각했다. 여전히 신분제 사회였고(정조가 노비 해방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그가 죽은 후 순조가 즉위하고 나서 공노비가 해방됨.), 전제군주 사회였으며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용 중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8챕터의 ‘정조 시대의 법과 정치’ 부분이었다. 신해통공이나 초계문신제 등등 정치 사회, 경제와 관련된 부분들은 조금 알고 있었지만, 법과 관련된 부분은 처음 접해보는 부분이라서 흥미로웠다. 특히나 억울하게 아내를 죽인 범인이 되어서 죽을 뻔한 사건을 긴밀히 조사하게 하여서 억울한 이를 없게 만든 사례는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한국사는 매우 좁은 지식을 가르쳤던 것 같다. 역사의 큰 흐름만 알고 있던 상태에서 한 인물의 전반적인 줄거리와 그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었던 정치에 대한 생각들, 재위 전반에 걸쳐서 시행된 여러 가지 정책들을 이해하기 쉽고 자세하게 배울 수 있었던 책인 것 같다. 학교 시험을 위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것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래는 어떻게 계획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책이자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있게 도와준 책이었다. 나중에 역사를 좀 더 공부하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졌을 때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