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듣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14
정은 지음 / 사계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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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집어들긴 했지만 장애에 관한 내용이라고해서 뻔한 교훈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아름다운 문장들이다.

자꾸 작가의 약력을 살필만큼 콕콕 마음에 와닿는, 저장해놓고싶은 문장들.

4년간 퇴고를 하셨다는데, 그래서 이런 문장들을 만들어낸걸까?

책을 읽는 내내 참 예쁜책이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더 멋져보이는 작가님의 삶.

매년 한 달 이상 다른 도시에 머물면서 쓴 글과 찍은 사진을 두 권의 독립출판물로 만들어 독립서점을 통해 판매하였다니.. 몇년 전부터는 다른 도시에 머무르는 대신 한 달 동안 칩거하며 장편소설의 초고를 쓰고있다고 한다. 그 결과물이 이 책 <산책을 듣는 시간> 인가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어릴 때 독감으로 인해 청력을 잃은 정수지이다.

이 아이가 자라며 겪는 상황들을 보여주는데,

청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큰 주제가 되지 않아서 좋았다.

흔히 있는 장애 극복 이야기 이런 게 아니라서 좋았다.


시각장애가 있거나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각각 다른 배려거 팔요했고 그것을 내가 다 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장애가 없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면 서로가 조금씩만 배려하면 될 텐데, 장애가 있는 친구들끼리 있으면 서로가 두 배로 배려해야 한다. 

마는 점점 특수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내게 필요한 특수교육을 제공한다기보다는 분리를 위한 것 같았다. 보는 게 싫어서 분리수거하듯 분리해버린 것이다. 내가 분리되어야 할 존재라는 생각을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나는 소라를 못 듣는 개 나만의 독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 장애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살아왔다.ㅡp39


면접이 정말 거지 같았어. 장애인 수시 전형이었거든. 내가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말이 제일 싫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똑같지 않다는 걸 강조할 뿐.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세계를 만들어주지 않을 바에는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

면접관이 뭐라는지 알아? 베토벤은 귀머거리지만 훌륭한 곡들을 많이 남겼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베토벤은 청력을 잃기 전애 이미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청력을 잃지 않았다면 훌륭한 곡들을 더 많이 남겼을 거라고 대답했어. 왜 내게 극복을 강요해?ㅡp109


개는 우리보다 후각이 몇배나 예민한데 우리를 후각장애라고 생각하지 않고

음향을 모아서 듣고보면 우리가 살면서 놓치는 소리들이 매우 많은데 청각장애를 따로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집중해야할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할 시간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가 이다.

수지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로소 슬픔을 배운 후에는 숨을 방이 있고 필요할 때 숨을 줄 아는 사람, 블랙홀처럼 마음을 닫고 있던 엄마가 행복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니다.

그러면서 수지는 사실 자기가 걱정한 것은 엄마가 아닌, 엄마에게 위로받지 못한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너 나와 내 선택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시간을 존중해야한다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린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 수 있는가인 것이다.


수지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너 자신과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네가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행동하는 방식대로 너 자신에게 행동하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다는 걸 알게 될거야. 너 자신과 친구가 되고 나면 너 자신을 대하듯이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는 거야. 불필요한 위로를 하지 않게 되지. 누구에게나 삶은 단 한 번 뿐이지. 후회하지 않을 선택만 해야 해. 너의 삶이니까. 선택은 언제나 너 자신을 위해서 네가 하는 거야.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앚지 말아야할 것은, 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알고 있다는 거야. 그 힘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의무가 있어. 그것만 잊지 말아 주렴.-p125 


고모가 할머니에게 주위 사람들의 희생을 강요한다고 했을때, 그들은 그것을 선택한 것이니 희생이 아니라고 했던 할머니의 말.

이렇게 항상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라는 할머니의 삶의 핵심은 사랑이었다.


남자친구는 아니고 그냥 친구가 있는데... 근데 그 친구의 개가 자꾸자꾸 보고싶어.

사랑은 느낌이 다가 아냐. 실물이 오고 가야 사랑이야.

네가 느끼는 걸 상대방도 그대로 느낄 거라고 착각해선 안돼. 백개쯤 해주면 상대방이 한개쯤 눈치채고 감정을 느끼는 게 사랑이야. 마음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어. 사람은 빈껍데기니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거야. 관계는 길 같은 거지. 많이 걸어다녀야 길이 반들반들하게 나는 거고. 그러니까 저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여면 최대한 많이 받아내야 한다. 선물을 달라고 해. 이것저것 달콤한 거 있잖아ㅡp61


이 책의 예쁜 문장 목록에 있는 이 부분은 수지가 할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에게 있어서의 한민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그래서 한민과 더 가까워지고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작곡을 할 때에 또 한 번 멋진 문장이 나온다.


들리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지. 지구 돌어가는 소리거 크게 울리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못 듣는 건지도 몰라. 우리의 진짜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가 내는 소리에서 지구가 내는 소리를 빼야 할 거야....

별들이 자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다는 한민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구도 지구만의 소리를 내고 있고, 사람도 고유의 음을 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걸 믿는다. 그리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은 상대방이 내는 소리를 감싸듯 나머지 공간을 침묵의 소리로 채우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우리가 감지할 수 없다고 해도 분명히 우리 몸은 듣고있고,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민과 같이 있을 때 말없이도 대화하는 것 같은 황홀하고 다정한 순간들에 관해서 설명할 방법이 없다. ㅡp90


이렇게 예쁜 문장으로 여운을 남기고, 신선한 내용전개로 새로움을 주는 책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 주위 사람들과 함께 읽어봐야할 것 같다.



https://m.blog.naver.com/skjmail/221335424651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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