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의 글쓰기 랩 - 디스 아닙니다, 피드백입니다
김봉현 지음 / 엑스북스(xbooks)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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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곧 ‘나의 삶을 잘 살고 싶다’는 마음과 같다고 말한다면 비약일까. 비약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라고 믿는다.

P.25

저자는 음악평론가이며, ‘글로forever’라는 글쓰기 합평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글이 쉽게 읽힌다.내가 기대했던 글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는 다르지만 글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있다. 그래서 자칫 원론적인 얘기로 지루해지기 쉬운 대목에서도 저자가 직접 쓴 예시와 합평모임의 글 예시 등을 통해 눈에 보이도록 보여준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균형 있게, 성실하게, 나답게”는 저자가 생각하는 좋은 글의 특징에 대해 논의한다. 흔히 들어본 좋은 글의 특징도 있으며, 저자 본인만의 색깔이 담긴 특징도 있다.

좋은 글이 되기 위해서는 ‘공감’보다 ‘영감’이 필요하다. 좋은 글은 공감보다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P. 57

깊이 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자기 스타일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P. 98

좋은 글에 대한 저자의 의견과 다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가 제시한 내용이 글쓰기에 대해 insight를 주었다면 그 자체로 영감을 준 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부 “글쓰기의 포인트, 소설 빼고”는 실제로 글을 쓸 때 알아야할 포인트와 알아두면 좋은 포인트를 제시한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고쳐쓰기에 대한 부분이다. 고쳐쓰기 노하우로 작가는 아래 6가지 질문을 제시하는데 내가 글을 쓸 때 쉽게 간과했던 부분도 있어서 도움이 되는 질문들이었다.

(1) 도입부가 급박하진 않은가? (때로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초조한 마음에 거창한 도입부를 쓰곤 했는데 중요한 포인트이다)

(2) 접속사가 과도하진 않은가? (나도 종종 글을 고치며 모든 문장을 접속사로 이어 답답함을 연출해냈기 때문에 특히 찔리는 부분이었다)

(3) 쓸데없는 쉼표는 없는가? (글을 쓸 때와 글을 읽을 때의 호흡이 다르다는 것! 쉼표를 자주 쓰는 나에게 새로운 정보였다)

(4) 조사류의 쓰임이 정확한가? (맞춤법을 틀리는 것 만큼이나 어색해 보일 수 있는 부분!)

(5) 관련 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관련 없는 내용을 적당히 뭉개서 연결하진 않았는가? (읽는 사람은 다 안다)

(6) 그 인용문은 정말로 글과 어울리는가? (내 글을 더 멋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 내용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된다)

그리고 마지막 3장은 실제 합평모임의 참가자들이 쓴 글과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장에서 내 글과 비슷한 글이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합평모임에 참가하면 아마 더 유익할 것이지만 간접적으로라도 글의 피드백을 알 수 있는 건 좋은 기회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위트 있게 알아듣기 쉽게 글쓰기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저자의 개그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ㅋㅋ) 그래도 내가 지금 제대로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읽어 보기 좋은 책이다. 특히 저 6가지 질문은 잊지 말고 꼭 써먹어야겠다.

*해당 리뷰는 엑스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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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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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와, 그리고 작가의 인생과 별개의 창작물이다. 대개 소설의 주인공에 작가가 깃들어 있다고 보고 책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열심히 작가의 인생을 파헤치는 노력도 있으며, 때로 납득이 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도 소설은 작가와는 다른 존재의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같다. 서유미 작가의 두번째 단편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서는 바로 그 시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별로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너무 평범해서, 어떤 이는 눈쌀이 찌푸러지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이는 보통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해서 눈길이 닿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너무 구질구질해서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쓸쓸한 그 인생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엔 비판이 담겨있지 않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지쳐있다. 치매 걸린 엄마와 진통이 온 딸 사이에서 분주한 <변해가네>의 여자의 삶은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후의 삶>에서 아내와 이혼했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고시원을 전전긍긍하다가 사우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영팔이 그 공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수면실에서 나오는 모습은 갑갑하기 그지 없다. 남편이 사라진 후 행방을 알 수도 없는 <뒷걸음의 발견>에서의 여자의 답답함은 또 어떠한가. 그리고 휴가가 주어 졌는데도 즐기지도 못하고 둘이서 함께 보내지도 못하는 <휴가>는 나른하다. 전세값이 올라 한해의 마지막 날 저녁에 집을 보러 갔는데 집주인이 야근이라 허탕을 치는건 삶이 녹록치 않음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에트르>의 주인공이 화가 나는데 상대방에게 분노할 수 없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에 차마 속 시원하게 화를 내지도 못하는 모습은 나도 <에트르>라는 제목에서는 왜 단맛 밖에 느껴지지 않아 인생의 쓴맛을 알 수 없는지 화내고 싶은 심정이다.

나도 내 인생이 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도 분명 5시까지만 해도 집에가서 가족들과 함께 할 저녁을 생각하며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5시 반에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왔어야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나서는 오피스 드라마라던지,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린 웹툰을 보면 내 처지에 너무 대입되어 한동안 보지 않았다. 이제는 좀 내 일도 익숙해진 것인지 소설 속에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인생의 무게에 눌려 있지만 묵묵히 살길을 찾는 것을 보니 내 삶의 무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타인의 삶의 무게에 대해 관심을 돌리게 된다. 

최근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에서 서유미 작가의 <틈>도 읽고 이번 민음사 문학잡지 12호에서도 서유미 작가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어서 읽었는데 이렇게 창비에서 좋은 기회로 새로 나온 단편집을 접할 수 있어서 작가님의 작품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서유미 작가의 묘사는 더 섬세해 졌는데 그리는 풍경이 더 거칠어졌다. 더 날 것 그대로의 느낌(raw)이라는게 더 덕절한 비유일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소설이라 제임스 로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번 소설집에는 아이러니한 교차점들이 소설을 가로지른다. <휴가>에서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부부와 TV에 방영되는 가상 부부의 모습이 교차된다.  나도 주인공 처럼 과연 그 가상부부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뒷모습의 발견>에서는 사라진 남편과 분실한 귀걸이가 그렇다. 귀걸이를 찾게 되면 남편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둘의 교차점에 희망을 걸게 된다. <에트르>는 가장 단면적으로 입에서 사라지는 달달함과 여운이 남는 인생의 쓴 맛이 교차된다.

그리고 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이 있다.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다. <에트르>에서도 동생과 공유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이제는 대화가 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곳이다. <변해가네>에서 이젠 식물 한 포기조차 키울 것은 하나 없는 가습기만 불을 깜박이는 집에 만족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을 옅볼 수 있다. 

나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6개의 소설 속에서 각각 주인공들이 어떤 형태로 자신의 집에 대해 애착을 갖는지가 눈에 더 들어왔던 것 같다. 나는 사우나 처럼 타인들과 빈틈 없이 북적거리는 공간도 싫고,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나 밖에 없는 원룸도 싫다. 나라면 차라리 불편하고 부대끼더라도 <에트르> 자매의 집을 선택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들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 집이 평안함과 아늑함, 쉼을 주지 못한다면 인생의 피로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삶이 공유되지 않는 <휴가>에 나오는 부부의 삶이 참으로 서글프게 다가 왔다. 

이렇듯 서유미 작가의 첫 소설집인 <당분간 인간>은 어딘가 현실을 약간 벗어난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면,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그녀가 즐겨쓰는 날카로운 Preppy 만연필로 종이를 뚫어 뒷면을 보여준 사실주의적 소설이었다. 이것이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나도 문득 목욕탕에서 땀을 빼고 묵은 때를 벗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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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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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때보다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 생각하고 자각하려고 한 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닐 것이다. 요즘에 인터넷 기사를 보면 잠을 충분히 자야한다 던지, 성공하는 사람은 아침잠이 없다던지, 낮잠이 중요하다는 등 잠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넘친다. 책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카를린 클라인은 수면 연구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몽유병과 그보다 심각한 몽유병일 때만 나타나는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고자 병적으로 잠에 대한 연구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자크 클라인도 어린나이에 수면장애를 겪는다. 카를린은 아들에게 유도몽이라는 꿈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방법을 사용하여아들을 '치료'하고 이후에도 '이어꾸기'를 가르쳐 공부를 돕는 등 자크의 사고 형성, 목표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도 잠이란 것에 어렸을 때부터 참 예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숙제 검사를 받고 엄마가 내가 빼먹을 숙제를 하라고 하면 울었다. 숙제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잠을 충분히 못잘까봐 울었다. 하지만 나는 꿈이나 수면 보다는 잠이 드는 순간의 나른함과 평안함이 섞인 달콤함을 무척이나 즐겼던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답게 잠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요함이 있다. 수면과 과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베르베르만의 상상력을 보태면 전혀 다른 세상이 창조된다. 노스피어, 잠의 6단계, 꿈에서의 조우, 그리고 깊은 6단계에서 마주한 자신의 무의식. 소설 초반에 심어놓은 수수께끼들이 폭죽놀이 같이 터진다. 그럼에도 수면으로 접어드는 단계에 대한 설명은 읽으면서도 내가 잠이 드는 과정을 그렇게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느껴본 적이 없기에 낯설었다.

고등학교 때 Health 관련 수업 때 수면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그 수업 때 깊은 숙면을 취하는 방식을 배웠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먼저 숨을 들이마시면서 얼굴을 찡그릴 때로 찡그렸다가 숨을 뱉으면서 확 푼다. 그다음은 어깨와 목, 배, 팔, 손, 다리 그리고 마지막은 발가락 까지. 발가락을 꽉 오무렸다 후ㅡ 풀면서 힘을 주는 신체 부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가 풀어주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고등학생이어서 이 때가 기회다 싶어서 그랬는지, 신기하게도 그렇게 다 따라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살짝, 그러나 깊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잠 가운데 - 꿈 가운데 - 베르베르가 말한 세계가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언젠가 단잠 자는 법에 대해 더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자각몽을 꾼 경험이 있어서인지 잠에 대한 그의 insight는 나의 상상력과 내 꿈에 대한 자극을 자극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베르베르도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 서양인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의 오랑 아슬리(Orang Asli, 원주민)인 세노이 부족과의 만남이 그랬다. 주인공 자크는 세상의 진보를 역행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세노이 부족의 삶의 이치를 동경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끊임 없는 과학적 연구와 첨단 기술을 통해 그 세노이 부족에게서 배운 것을 무언가 더 '나은 것'으로, 즉 진보를 이루고야 마는 자크가 결국엔 오리엔탈리즘의 잔재이지 않나 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잠은 달콤하다.

2017.6.5.
휴일을 앞두고 더 달콤한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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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시대>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으니 그에 상응하는 상투적인 질문을 하나 던져 본다. 정치가 무엇인가? 정치는 옳고 그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합리적인 질서를 위한 것인가? 만일 정치가 옳고 그름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의 제도로, 지금의 우리 모습으로 모두가 수긍하는 '옳은 것'을 분별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나의 현재까지의 해답은 - 정답이 아니라 해답이다. 왜냐하면 정답은 내가 살면서 끊임없이 고민하여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아니다'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제도가 '옳은 것'을 분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치를 논의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이라, 현재로서는 그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 (강사) 한홍구 교수는 한국의 현대사적 흐름 속에 민주주의를 낳기 위한 어떠한 산통을 겪어왔는지 풀어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자생된 제도가 아닌 대의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나라가 산통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예전부터 배워 온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필요했다고 해서 견딜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 발 자취 가운데 어떤 이의 마음에는 멍이, 어떤 이의 마음에는 눈물이 담기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광장은 토론의 장, 또는 대화의 장이라는 의미 보다는 무언가 외치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 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각기 다른 마음을 모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한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애쓰기 전에 바로 그 광장에서 무엇이 합리적인 것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선행 되었다면, 어쩌면 덜 힘을 들이고도 한 발씩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내실을 다지고 질서를 잡아야될 때인 것 같다. 외국에서의 삶과 비교해보면 실제로 피부로 와 닿는 면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많은 시스템은 편이함이 보장된다. 하지만 편이함이 곧 지속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편리하게, 더 빠르게,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놓쳐버린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렇기에 (이건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이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충분히 역사의 역행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도 한홍구 교수의 말 처럼 대의민주주의가 절대적으로 선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의식을 가지는게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판 의식을 가지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존중함으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게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의 작은 바램이다. 이제 광장이 권력으로 누르는 자리, 마음의 답답함을 외치는 자리, 호소하는 자리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 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이 존중받는 자리, 그런 자리였으면 좋겠다. 여전히 난 정치를 모르기에 정치로 반드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상적인 ideal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시행착오를 겪어온 우리나라가 앞으로 조금 더 나아지길, 조금 더 진정한 토론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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