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서유미 지음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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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작가와, 그리고 작가의 인생과 별개의 창작물이다. 대개 소설의 주인공에 작가가 깃들어 있다고 보고 책의 의미를 찾기 위해 열심히 작가의 인생을 파헤치는 노력도 있으며, 때로 납득이 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어도 소설은 작가와는 다른 존재의 창작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 작가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 같다. 서유미 작가의 두번째 단편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서는 바로 그 시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별로 눈길이 가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너무 평범해서, 어떤 이는 눈쌀이 찌푸러지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이는 보통 스쳐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해서 눈길이 닿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이는 너무 구질구질해서 외면하고 싶다.

하지만 쓸쓸한 그 인생을 그려내는 작가의 시선엔 비판이 담겨있지 않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지쳐있다. 치매 걸린 엄마와 진통이 온 딸 사이에서 분주한 <변해가네>의 여자의 삶은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이후의 삶>에서 아내와 이혼했지만 집이 팔리지 않아 고시원을 전전긍긍하다가 사우나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영팔이 그 공간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수면실에서 나오는 모습은 갑갑하기 그지 없다. 남편이 사라진 후 행방을 알 수도 없는 <뒷걸음의 발견>에서의 여자의 답답함은 또 어떠한가. 그리고 휴가가 주어 졌는데도 즐기지도 못하고 둘이서 함께 보내지도 못하는 <휴가>는 나른하다. 전세값이 올라 한해의 마지막 날 저녁에 집을 보러 갔는데 집주인이 야근이라 허탕을 치는건 삶이 녹록치 않음을 전면으로 보여준다. <에트르>의 주인공이 화가 나는데 상대방에게 분노할 수 없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분노”에 차마 속 시원하게 화를 내지도 못하는 모습은 나도 <에트르>라는 제목에서는 왜 단맛 밖에 느껴지지 않아 인생의 쓴맛을 알 수 없는지 화내고 싶은 심정이다.

나도 내 인생이 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도 분명 5시까지만 해도 집에가서 가족들과 함께 할 저녁을 생각하며 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5시 반에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왔어야 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나서는 오피스 드라마라던지,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린 웹툰을 보면 내 처지에 너무 대입되어 한동안 보지 않았다. 이제는 좀 내 일도 익숙해진 것인지 소설 속에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인생의 무게에 눌려 있지만 묵묵히 살길을 찾는 것을 보니 내 삶의 무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타인의 삶의 무게에 대해 관심을 돌리게 된다. 

최근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에서 서유미 작가의 <틈>도 읽고 이번 민음사 문학잡지 12호에서도 서유미 작가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어서 읽었는데 이렇게 창비에서 좋은 기회로 새로 나온 단편집을 접할 수 있어서 작가님의 작품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서유미 작가의 묘사는 더 섬세해 졌는데 그리는 풍경이 더 거칠어졌다. 더 날 것 그대로의 느낌(raw)이라는게 더 덕절한 비유일 것이다. 사실주의적인 소설이라 제임스 로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번 소설집에는 아이러니한 교차점들이 소설을 가로지른다. <휴가>에서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부부와 TV에 방영되는 가상 부부의 모습이 교차된다.  나도 주인공 처럼 과연 그 가상부부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졌다. <뒷모습의 발견>에서는 사라진 남편과 분실한 귀걸이가 그렇다. 귀걸이를 찾게 되면 남편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둘의 교차점에 희망을 걸게 된다. <에트르>는 가장 단면적으로 입에서 사라지는 달달함과 여운이 남는 인생의 쓴 맛이 교차된다.

그리고 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애착을 가지는 것이 있다.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다. <에트르>에서도 동생과 공유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이제는 대화가 단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곳이다. <변해가네>에서 이젠 식물 한 포기조차 키울 것은 하나 없는 가습기만 불을 깜박이는 집에 만족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자기만의 공간에 대한 집착을 옅볼 수 있다. 

나도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6개의 소설 속에서 각각 주인공들이 어떤 형태로 자신의 집에 대해 애착을 갖는지가 눈에 더 들어왔던 것 같다. 나는 사우나 처럼 타인들과 빈틈 없이 북적거리는 공간도 싫고, 살아있는 생물이라곤 나 밖에 없는 원룸도 싫다. 나라면 차라리 불편하고 부대끼더라도 <에트르> 자매의 집을 선택하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설들 속에서 사람들의 일상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져 집이 평안함과 아늑함, 쉼을 주지 못한다면 인생의 피로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삶이 공유되지 않는 <휴가>에 나오는 부부의 삶이 참으로 서글프게 다가 왔다. 

이렇듯 서유미 작가의 첫 소설집인 <당분간 인간>은 어딘가 현실을 약간 벗어난 공간에 위치해 있었다면,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는 그녀가 즐겨쓰는 날카로운 Preppy 만연필로 종이를 뚫어 뒷면을 보여준 사실주의적 소설이었다. 이것이 우리 이웃의 모습이다. 나도 문득 목욕탕에서 땀을 빼고 묵은 때를 벗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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