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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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때보다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 생각하고 자각하려고 한 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닐 것이다. 요즘에 인터넷 기사를 보면 잠을 충분히 자야한다 던지, 성공하는 사람은 아침잠이 없다던지, 낮잠이 중요하다는 등 잠에 대한 연구와 조사가 넘친다. 책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는 카를린 클라인은 수면 연구자이다. 그녀는 자신의 몽유병과 그보다 심각한 몽유병일 때만 나타나는 통제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고자 병적으로 잠에 대한 연구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자크 클라인도 어린나이에 수면장애를 겪는다. 카를린은 아들에게 유도몽이라는 꿈을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는 방법을 사용하여아들을 '치료'하고 이후에도 '이어꾸기'를 가르쳐 공부를 돕는 등 자크의 사고 형성, 목표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나도 잠이란 것에 어렸을 때부터 참 예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초등학교 때 엄마한테 숙제 검사를 받고 엄마가 내가 빼먹을 숙제를 하라고 하면 울었다. 숙제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잠을 충분히 못잘까봐 울었다. 하지만 나는 꿈이나 수면 보다는 잠이 드는 순간의 나른함과 평안함이 섞인 달콤함을 무척이나 즐겼던 것 같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답게 잠이라는 주제에 대한 집요함이 있다. 수면과 과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베르베르만의 상상력을 보태면 전혀 다른 세상이 창조된다. 노스피어, 잠의 6단계, 꿈에서의 조우, 그리고 깊은 6단계에서 마주한 자신의 무의식. 소설 초반에 심어놓은 수수께끼들이 폭죽놀이 같이 터진다. 그럼에도 수면으로 접어드는 단계에 대한 설명은 읽으면서도 내가 잠이 드는 과정을 그렇게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느껴본 적이 없기에 낯설었다.

고등학교 때 Health 관련 수업 때 수면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그 수업 때 깊은 숙면을 취하는 방식을 배웠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근육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먼저 숨을 들이마시면서 얼굴을 찡그릴 때로 찡그렸다가 숨을 뱉으면서 확 푼다. 그다음은 어깨와 목, 배, 팔, 손, 다리 그리고 마지막은 발가락 까지. 발가락을 꽉 오무렸다 후ㅡ 풀면서 힘을 주는 신체 부위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가 풀어주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고등학생이어서 이 때가 기회다 싶어서 그랬는지, 신기하게도 그렇게 다 따라하고 나서 나도 모르게 살짝, 그러나 깊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잠 가운데 - 꿈 가운데 - 베르베르가 말한 세계가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언젠가 단잠 자는 법에 대해 더 보편적으로 가르치는 미래가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자각몽을 꾼 경험이 있어서인지 잠에 대한 그의 insight는 나의 상상력과 내 꿈에 대한 자극을 자극했다.

단,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베르베르도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 서양인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의 오랑 아슬리(Orang Asli, 원주민)인 세노이 부족과의 만남이 그랬다. 주인공 자크는 세상의 진보를 역행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세노이 부족의 삶의 이치를 동경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끊임 없는 과학적 연구와 첨단 기술을 통해 그 세노이 부족에게서 배운 것을 무언가 더 '나은 것'으로, 즉 진보를 이루고야 마는 자크가 결국엔 오리엔탈리즘의 잔재이지 않나 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잠은 달콤하다.

2017.6.5.
휴일을 앞두고 더 달콤한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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