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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백범
홍원식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6월 25일은 어떤날인가.
또 우리에게 8월 15일은 어떤날인가.
새해가 되면 왜 6.25는 쉬지 않는 날로 만들어놨는지 전 대통령이 야속하기만 하고. 8.15는 여름휴가와 겹쳐 어디로 떠날까 고민하는 날로 전락해버린 우리의 6.25와 8.15
그 날의 중심에 서있는 요즘 7월이다.
어릴적 위인전기에서 본 백범김구는 동그란 까만테 안경을 쓰고 검은 두루마리를 입은 김구선생님으로 기억된다.
한때 5만원권이 나올즘. 10만원권이 나온다면 김구선생이 단연코 1위를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위인전기에서 읽었던 김구선생님의 업적은 모두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시 나이 서른이 넘어 [영웅 백범]을 읽었다.
꼭 애국심은 외국에 나가야만,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열려야만, 새록새록 살아나는 정신이 아니었던가.
백범 김구 선생님의 업적을 하나하나 돌이켜 볼때마다 탄식이 나온다.
나이 스무살도 안된 청년 김창수는 동학군의 장수로서 민생을 대표하는 삶을 시작했다. 동학군의 장수로서 활약하던 그를 눈여겨 본 동학군 토벌군의 수령 안태훈은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이다. 안태훈의 도움으로 도망다니던 김창수는 공부도 하고 가족도 함께 살게된다. 조선은 왜척의 세력에 힘을 못쓰고 곧 한일합방을 맞게된다. 민생과 나라를 생각했던 김창수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알고 일본인 자객을 죽이는 사건으로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후에도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기 시작한다.
젊은 청년시절 사랑했던 여인들이 여럿있었고 결혼의 인연까지 가게 될 여인들도 있었지만 그들과의 인연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나버린다. 후에 최준례라는 신여성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지만 세재딸까지 모두 죽고 훗날 아들둘을 나아 인과 신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수년의 옥살이를 한 김구는 옥살이중에 이름을 개명한다.
백범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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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九 자는 많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 동양에서 九는 완전 한수, '가득 참'을 의미하면서도 十에 가까우나 꽉 차지는 않은 숫자로서 겸허의 뜻도 담고 있었다. 완전에 가까울 만한 인품과 덕, 그리고 지혜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다 해도 교만 하나를 더해 十을 이루게 되면 하늘 두려운 줄 모르고 자만하다가 궁극에는 재앙을 받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하나 모자란 九'에 머물러 하늘과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겸허함이 진리임을 선인들은 알았던 것이다. 한학에 조예가 깊었던 김구는 자신의 삶 또한 九에 가까워지되 십까지 차올라 교만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에 그 뜻을 새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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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뜻만 보아도 김구선생님의 삶에 답에 나와있는거 같다.
감옥에서 나와 부인과 어머니와 아이들과 민생 계몽활동을 하던 그는 나라가 점점 일제의 압박에 힘겨워하자 중국으로 이동해 독립운동을 하게된다.
상해임시정부에 들어가 훗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기까지. 그는 일제의 수많은 감시와 안전의 위협을 받아야했다.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의 항일 투쟁도 김구선생님의 지시하에 있었고. 한국 광복군의 창설도 함께 만들었다.
훗날 한국 광복군의 서해침투사건의 계획 며칠전 천황의 항복으로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었을때. 가장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은 임시정부의 사람들이고 김구선생님이었다. 자주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기회를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의 허탈함은 독자인 나도 함께 안타까웠다.
이런 사실은 우리 젊은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광복 즈음의 우리나라의 흐름. 광복에 이어 곧 일어난 625전쟁까지.
모두 어떤 이유로 광복을 하자마자 남한은 미국에, 북한은 소련에 지배를 받으며 살게 되었던 것일까. 그 역사속의 안따까운 현장에 김구선생님이 있었다.
그 분단을 막으려 몇몇 수행원만 데리고 북한에 갔던 그와 김일성의 대화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이렇게 흘러갔던 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강대국들과의 땅따먹기 싸움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1949년 6월 26일 74세의 나이로 가슴에 총을 맞아 죽음을 맞이한 김구선생님.
그의 죽음 또한 미국의 남한통치를 향한 열망의 결과였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우리나라의 역사에 전쟁걱정없이 편히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죄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는 바로 알고 잊지 말아야 할것임을 더없이 깨달으며 커다란 위인전을 읽는 어린이들만 재촉하지 말고 어른들도 역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