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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mm의 거리
강성욱 지음 / 글멋 / 2024년 7월
평점 :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생각, 감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13mm의 거리***
13mm의 거리. 안경 렌즈와 각막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안경을 쓰는 사람은 씻을 때와 잠을 잘 때 빼고는 매 순간 안경을 착용하는데, 적응(adaptation) 기제가 작동해 당사자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착용자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색부터 질감, 크기 모두가 렌즈에 의해 교정된 모습이지만 인간은 이를 실체 그대로의 세상으로 인지하게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2024년 11월의 모 주말은 스트레스를 받아 자존감이 떨어지는 시기였는데, 독서를 하며 ‘중요한 건 관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프레임이라 불리는 인식의 틀을 거쳐서 수용하는데, 역으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면 희비가 뒤바뀔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괴로움(불안, 불만, 분노, 욕심, 질투, 시기, 허영, 호불호 등)이 객관적 실체라기보다 내면적 요소가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씀하셨듯이요. <13mm의 거리>는 작가님 특유의 섬세한 시각으로 일상의 다양한 순간을 관찰 후 해석한 점이 인상깊었던 산문집이었습니다.
***인상깊은 구절***
* 한국에서 모든 시간은 무언가를 위해 미리 준비해야만 하는 때였습니다. 미국 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오니 그 점은 더욱 눈에 거슬렸습니다. 특정 나이에는 정해진 것을 해야만 하는 암묵적이지만 동의한 적 없는 합의와 관념과 이념은 한국 사회에 담근 몸을 더욱더 무겁게 만드는 수압이자 기압이었습니다.(p18)
*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리는 와중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안경과 렌즈를 꼭 눈에만 착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내려 마음속 저 깊은 방 안에 웅크린 녀석에게도 둘 다 씌워봐야겠습니다. 방 안을 채운 그림과 사진과 영상과 향기와 감촉을 들여다보라고 해야겠습니다. 거기에는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태어난 이래로부터 1990년대와 2000년대와 2010년대와 2020년대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죠. 어떤 대답을 저에게 들려줄지 꽤나 큰 기대를 하게 됩니다.(p71)
* 취미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만 했습니다. 사전에서 벗어나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했고 그것을 원했습니다. 맥주 한 병 정화수 삼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질서 없이 튀어오르는 단어와 단어를 선별해 문장으로 뱉어냈습니다. 첫째, 호기심과 흥미를 계속해서 불러일으켜야 할 것. 둘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것. 셋째, 과정에서 지적, 감성적 자극을 받을 것. 넷째, 결과가 짓는 표정에 개의치 않을 것.(p104)
* 양자물리학에서 말합니다. 상자를 열어 관측하기 전까지 상자 속 고양이의 상태는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이 공존한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 대상은 관측해야만 비로소 실체가 존재하고, 관측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얻은 제 관측의 결과가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 적절한 울림을 가져다주었기를 기원합니다.(p151)
*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