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유복한 가정에서 장군의 딸로 자란 15살 소녀 기너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아버지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비터이 장군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기너를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머틀러 기숙학교‘로 보낸다. 가혹한 규칙과 통제, 그리고 촌스러운 교복만이 지배하는 그곳은 기너에게 감옥과도 같았다.반항심에 친구들이 소중히 여기는 전통적인 비밀을 사감에게 고백하는 실수를 저질러 전교생에게 따돌림을 당하며 처절한 고립감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기너는 친구들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고, 서서히 그들과 깊은 우정을 쌓으며 성숙해진다.어느 날 아버지는 기너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는다. 무의미한 전쟁에 헝가리의 젊은이들이 동원되어 죽어나가는 현실에 분노한 아버지는, 사실 반나치 저항군(레지스탕스)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체포될 경우 기너가 인질로 잡혀 이용당할 것을 우려해, 그녀를 가장 안전하고도 눈에 띄지 않는 이곳 ‘머틀러‘에 숨겨두었던 것이다.이후 독일군이 헝가리를 본격적으로 점령하면서 기너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하지만 기너는 학교 뜰의 조각상 ‘아비가일‘의 이름으로 전달되던 의문의 도움들과, 아버지가 학교 곳곳에 심어놓은 조력자들의 헌신적인 도움 덕분에 무사히 학교를 탈출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무겁고 비극적인 역사도 발붙이지 못할 것만 같던 순수한 소녀들의 공간 머틀러 기숙학교와 소녀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조각상 ‘아비가일’. 머틀러 학교의 소녀들에게 ‘아비가일‘ 석상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위기에서 구해주는 구원이자 희망이었다. ˝석상이 어떻게 사람을 돕느냐˝며 냉소적으로 비웃던 기너조차 결국에는 아비가일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서보 머그더의 전작 『도어』를 무척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작가의 이름만으로 선택한 『아비가일』은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