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어느 날 [희망의 집] 맨 뒷편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나타났다. 다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쩐 일이여???"
"글쎄 말이여...?" 그들은 다름 아닌 기춘이랑 윤선이였다. "며칠 있으면 재용이도 온다"는 소문이 벌써 파다하다.
예배당 온종일 갇혀 지내는 이 곳 생활 중 모처럼 제법 멀리(그래야 몇 십미터지만) 외출하고 사회인을 대해볼 수 있는 때가 종교활동 시간이다. 같은 교도소 안이라도 이 때 만큼은 미결수들은 그 축에 끼지 못한다. 기결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금 비록 미결수라고 해도 '특수한' 별외의 인물들이라서 "이 정도야 별 문제 아닌 걸"로 한 모양이다. 보안과장 전결에 무슨 에외적 단서 조항이 있을 것이다. 범털 위한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놓고 규칙을 만드는 법이니까.
한편으로는, 예수.부처를 믿는 놈들이 이런 천하 몹쓸 곳에 죄 짓고 들어온다는 게 말이되는가싶은 생각도 들었다. 틀림없이 이 시간에 예배당, 법당은 파리만 날릴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게 아니다. 매주 화, 금요일 두 번 있는 교회와 精舍(절) 예불 시간만 되면 신자 죄수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옆 방 사람한테 이유를 묻자 “바람쐬러 가는 시간”이라며 빙긋 웃었다. 수용자 막사를 개조해서 만든 넓은 방을 예배당, 법당이라고 하는데 대부분이 무신론자이고 무슨 위안이나 교화를 얻고자 가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라고 했다. 거기 가서 바깥 소식좀 귀동냥하고 민간인도 보고, 평일 날 감방 벗어나는 해방감과 여러 사람을 만나는 기대감 그리고 찬송가나 찬불가를 구실로 소리를 실컷 질러댈 수 있다는 이유 크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예배당과 정사를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2079번이 있던 4동 독방舍 맞은편 두 번째 건물이 반절씩 쪼개 절과 예배당이다. 문제는 그 곳이 아니라 맞은 편 사동이다. 이 사동은 기결수 합방 사동인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별로 나누어 수용된 곳이다. 공장 나갔다 돌아와서 저넠 밥을 먹자마자부터 울려오는 소리는 여간 소음이 아니다.
불경,성경을 외우는 소리, 통성기도 소리, 노래부르는 소리 등등...게다가 불교와 기독교 사이에 서로 경쟁이 붙어 상대방을 이기려는 듯 옥타브가 점점 올라가는데 7-8미터 떨어진 내 사동은 꼭 빈 집같다. 한 장기수 왈 “난 체질이 맞지않아 안 갔지만 저게 다 자기 건강관리법입니다” 하긴 교도소 사람들이 제일 끔찍히 생각하는 것이 [건강]이다. 건강한 몸으로 밖에 나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었다. 꾀병부려 의무실 들락거리는 사람들도 이런 이유다.
다른 사동에서 저렇게 소리치고 떠들었다가는 당장 징벌방감이었다. “저기서야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아무리 목놓아 불러대도 좋으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풀리겠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래 목사님이나 스님들이 어떤 설교.설법을 하십니까?” “순 공팔(갈)만 치다 가는거지요 뭐...” “뭐라고 그러는데요?” “뻔한 거 아닙니까? 또 나쁜 죄 저지르면 심판 때 깊은 지옥 맨 밑바닥에 떨어진다..다음 세상에 소,도야지로 태어나 평생 쇠빠지게 일만하다가 푸주간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그러니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거 뭐 그런...인생을 살아도 더 험하게 살면서 난다 긴다하다가 여기 온 놈들인데 그 앞에다 대고 국민학교 1학년 애들한테 말하는 식이니 그 사람들이 애들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사람들은 거기 가는게 좋다는 거였다.
그런 중에 간혹 주기도문이나 반야심경을 제대로 외는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때 다시 떠오르는 소박한 의문이 있다.
“인간이 죄를 만들었나, 죄가 인간을 만들었나? 욕망과 이성은 얼마나 가깝고 멀까? 저 안에는 흉악범과 사기범 양심범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쓴 무죄의 죄인들도 함께 섞여 있을 터인데.....” 2079번의 맥 없는 자문이다.
얼마 후 종교인 사동은 점차 사그러들어간다. 나지막한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취침 시간이 점점 다가온다. 저녘 8시면 무조건 잠들어야 한다. 저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숨을 죽인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으리라. “빨리 이 곳을.. 무사히 나가게 해달라!”고.....
지금 기춘이랑 윤선이가 매주 한 번씩 거기에 열심히 나가고 있다. 빼먹지 않고... 사람되려고 말이다. 이런 걸 '개과천선'이라고 하던가? 지금 그런 와중에 있다. 그런데...그런데 말이다. 엊그제 재용이가 들어왔다. 이 건 전혀 생각 못한 일이다. 어찌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그 천하에 없는 귀공자 재용 왕부회장이 여기에 올 줄이야 꿈엔들 생각이나 가당한 일인가? "아~ 이 나라가 어찌될 것인가? 그럼 우리 근혜 공주님은? 이건 분명히 사태다. 내란이고 반란이다. 대체 청와대는 지금 뭘 하고 자빠진 건가...TK랑 태극기는 왜 이리 더듬거리는가?" 발발 동동거리는 기춘이는 이럴수록 더 열심히 기도에 정진하리라 마음 독하게 먹고있는 중이다. 요즘. 윤선이는 변호사 남편 내세워 매일같이 접견실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선이에게는 지금 근혜 공주가 없다. 예배당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기는 기춘 오빠랑 매 한가지다. 기도 제목이 좀 다를 뿐이다. "내 코가 석자!"다. [빼박켄트]에서 얼른 탈출하는 거다. 탈옥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힘들고 고되다. 하루가 천년 이다. 생전 관심없던 윤선이의 기도빨이 요즘 더 세어졌다. 그래서 교도소가 아닌 "희망의 집"이라고 그런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두고 볼 일이다. 개과천선이 될지 아니면 개차반 개털천악이 될지 말이다.
[사족] '징벌방'이란 감옥안의 감옥이다. 마침, '2079번' 방 바로 옆방부터 4개 방이 그 징벌방이다. ('2079번' 방과 징벌방은 0.7평, 교실 교단 두개 이어붙인 넓이다. 이 곳서 두 차례 1년 가까이 특별대접 받으며 보냈다^^) 징벌방이 다른 점은, 사방이 먹칠한 합판으로 차단되어 24시간 햇빛과 절연되어 있는데다가, 손.발이 포승과 수갑으로 묶이고 채워져 있어서 앉지도 바로 눕지도 못하고 모지게 웅크려 있어야 한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포승줄이 몸에 파고들어 마치 저 ‘빠삐용’에 나오는 그런 독방보다도 더 참혹한 곳이다. 식사도 입으로 해야 하고 용변도 억지로 억지로 보는 등 사람이 아니다.
조직폭력배들이 난리를 쳐서 이 곳에 들어 올 경우, 동료 수감자들이나 소지가 담당의 묵인아래 밥을 넣어주는 ‘식구통’으로 복도에 쪼그려 앉아 숟가락으로 밥과 반찬을 떠넣어주는 풍경도 흔하다. 이 징벌방은 수형자들이 어떤 사단을 일으켰을 경우 보복적 수단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그 기준이 자의적이라 남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2079번'은 옆 방에서 또는 복도에 나왔을 적에 신음소리만 간간히 들었다. 징벌방 자체가 잘못된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조폭은 별중의 별로 쳤다. 지금은 달라졌을 것으로 믿고싶다. '2079번' 생각이다. ♣ -끝.

-"그들이 나타났다.." 오늘이 토일도 아닌데. 억센 대구사투리로 앙칼지게 악 쓰는 중년여인이 생경하다. 여긴 TK가 아닌데..? 북쪽 땅끝 감자바우 변방인데..! 두 대 크레인에 걸린 16개짜리 고성능확성기가 작은 네거리를 흔들어댄다. 그러고보니 관광버스도 있고 장비트럭도 서 있다. 노인들이 많다. 아마 전국 투어를 하는가 보다. 일당에 밥과 간식에 '애국 여행'도 하고, 좋은 일자리 창출인 것 같다. ("돈은 어디서 나올까?") 山人도 노인네 축이라 몇 마디 나눠봤다. "이 나라는 벌써 빨갱이 나라가 다 됐다"는 투다. 검찰도 판사도 죄다 포섭된 종북들이 지배한단다. 그래서 "사법내란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근혜가 불쌍하다!"고 한다. 나라가 불쌍한 건 아닌 듯 했다. 山人은 이들이 열배 백배 더 불쌍하게 보였다. 기초연금이라도 받아 살면 다행이겠다 싶다. 젊은이들이 돈벌어 이들을 먹여살리니 이런 일로 나대는 것 같아 동류 세대 처지에서 면목이 안선다. "미안합니다..지금 50대 이하 젊은 세대여! 그대들은 늙어가도 이들 따라가진 않으실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