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톨 씨감자를 심으면 보통 10~15배의 감자를 거둔다. 땅콩은 그 백 배를..깨는 천 배다. 그게 그렇다. 대한민국이라는 남한 땅에서 작금 활개치는 '친일파'들의 번식 행태가 그렇다. 참으로 기막힌 일들이 도처에서 마구 벌어지고 있다. "독도는 일본땅"이고.. "위안부는 돈벌러 제발로 간 성매매 여인들이니 소녀상은 철거"시키고".."일본은 우리의 근대화 은인"이므로.."원수를 사랑하듯 일본도 사랑하라"고 외친다. 일본사람 아니다. 한국인들이다. 이런 걸 떠드는 이들이 한 둘 아니다. 극소수가 아니란 말이다. 인터넷 들어가면 입이 딱 벌어지는 일들 비일비재다. '관제 데모'로 모두 설명하기 어려운 구석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남북한 관련해서도 이런 맥락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노무현이 NLL을 포기하고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증거라고 유세장에서 믿거나말거나 국가기밀 문서를 마구 흔들어대면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또한 그 세가 만만찮다. 야당에게 '빨강'은 금기색이다. 당장 빨갱이 종북좌파 딱지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깃발은 시뻘건 색깔이다. 유니폼도 시뻘건 걸 입고 선거판을 휩쓸고 다닌다. 누가 거기에 시비거는 이들 없다. 야당도 그렇다. 그거 시비하면 역풍이 두렵다. 북한의 조선중앙방송과 남한의 조선일보 조선 TV방송은 같은 '조선'인데도, 우리 남한사회에서 [조선일보] 아닌 '조선'이란 단어는 자기검열 용어다. 그렇게 '색깔' 하나로 세상을 편가르며, 같은 색깔 하나가 한 쪽에는 주홍글씨로..다른 쪽엔 체제수호 상징으로 전파된다. 이 쯤되면 나찌 정권의 선전상 '괴벨스'가 한 수 배우러 올 만도 하다. 안익태의 교향악 공연을 친전한 히틀러의 감탄이 괜한 것 아니다. 

  이들은 국정 역사부도에 제주도 을릉 독도가 왜열도와 같은 색깔로 칠해지고 남한 땅이 단군조선 영역에서 비껴난 왜열도 비슷한 채색구분을 애써 모르쇠 하면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뉴라이트 깃발을 흔들어 댄다. 촛불집회에 맞선다는 이른바 맞불집회장에 나부끼는 태극기가 바로 그 깃발이다. 그 깃발이 실은, 태극기로 위장한 '일장기'에 다름 아니다.
  이들이 뜬금없이 들고 나온 그 거대한 '성조기'도 본질적으로 '일장기'다. 대일 항쟁기, 친일파들이 조선 8도 방방골골을 누비면서 흔들어대던 그 일장기가 성조기로 바뀐 것뿐이다. 그 일장기를 내걸고 조선의 농.임.광산 자원을 반출하는데 앞장서고, 조선의 젊은이들 300만 명을 징병 징용 정신대로 내몰아 왜 열도는 물론 동남아 남북태평양 사할린 지나 위그루 사막까지 전개시키는데 주구走狗로 견마지로를 다 바쳤다.
  친일파들의 머리속 사상 이념은 가족과 개인의 일신 영달이라는 계급적 기득권이다. 국가나 민족은 그걸 지켜주는 보호막에 불과하다. 그 보호막이 제 구실을 못하면 다른 걸로 바꾸면 그만이다. 이들에게는 계급의식이 이념이고 신념이다. 그래서 생태적으로 '권력지향'이다. 권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지켜주는 체제적 '끈'이다. 이걸 놓치면 모든 걸 잃는다. 일반인들에겐 추상적이고 몰체감적이지만, 이들에겐 매우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생존의 항등식이다. 그래서 매국노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해 되시겠는가?
  "피도 눈물도 없는" 반동족 반인륜 반상식인 이들의 사고 성향과 그 잔혹했던 패악적 행태의 내면적 배경이 설명되어지는 연유다. 권력의 충직한 속성이기도 하다. 그 부류는 항시 인류사의 항수였다. '현대 시민민주주의'에 한 점 보탬은 커녕 그걸 막고자 애썼던 이들 치고는 뻔뻔한 개평꾼이고 참으로 고약한 말종이기는 한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적 실체다. 민족모순이 청산되지 못한.. 외세 분단체제하 주변부 부르좌 사회의 피할 수 없는 정의의 괴리다.  

  오늘의 정치 사회적 시국 상황은 결국 이런 민족모순 외세개입 체제가 빚은 현대 인류사적 화약고의 내적 비극이다. 동시에 반민족 친일매국노집단 '청산'이라는 인류사의 보편적인 역사적 과정을 '기각'당한 세계사적 역사 모순의 집약적 포커스다. 이러한 거시사적 위치속에 민중의 피땀으로  일궈낸 물량경제적 지표가 던져주는 위안이 과연 어떤 근본적  민족 민중 에너지로 승화될런지, 아니면 양극 양분 고착화의 분열적 지리멸렬 기제로 작동될런지 2017년은 중차대한 변곡점의 기로에 처해있다고 보여진다. 山人은 그렇게 역사과학적 시각으로 예견한다.
  오늘의 현상이 누적된 우리 사회의 반역 불륜이 잉태한 번식의 결과물이라면, 현재의 '촛불 탄핵'과 반동의 대치전선은 헌재의 결론과 맞물려 향후 우리민족의 지평을 통합이냐 쇠멸이냐를 가름하는 분기점으로 규정짓는 결정적 시기로 본다. 역사의 후과는 분명히 그렇게 결말지어질 것이다. 시.공간을 넘어선 인류사 교과서가 그렇게 일러준다. 외세가 빚어놓은 반쪽의 광복에 기생해서 뿌려진 동족 상쟁의 전란과 각각의 흑역사는 "시작은 초라하지만 결과는 창대하리라!" 그대로다. 
  임진란 초반 조령이 뚫리자, 집권 서인세력 조정은 전라.경상을 왜에 떼주고 화약하자 했다. 그 때 유성룡이 나섰다. 청일전쟁 때도 그랬다가 원세개의 '청.일 조선 분할론'을 러시아 개입과 조정의 일치된 국론으로 저항해 막았다. 그러다가 종래엔 팔아넘겼다. '을사 5적'이 다 아니다.  그들은 얼굴마담이다. 조정 핵심일당이 한통속이었다. 200여년간 이어져 온 노론세력과 순조이후 권세를 잡은 김씨-조씨-민씨 척족의 세도권력이 야합한 '계급 기득권'의 "이익 공유" 농단 앞에 국가는 이미 형해화 된 송장이었다. 그러니 고종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일제 작위 받은 자가 병탄 초기에 200여 명이다. 그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정희-근혜 정권의 권력유지 행태..이너써클의 국정농단 행태가 판박이다. 우연 아닌 썩은 권력 종말의 '정석'이다. 계급적 봉건지배권력체가 걷는 '제국 소멸'의 길 그대로였다.  그랬다. 지금이 그 때보다 달라지고 나은 게 뭔지.. 생각있는 시민 각자의 몫이다. 촛불집회 박사모집회 아니면 침묵의 방관자로 갈리는 기로다. 백두산 금강산 지리산 두 다리 성하면 반도 전역과 만주간도를 그래도 내 강토라고 제약없이 다닐 수 있었던 시절과 지금을 생각해 보라!
 
  꽉 막힌 불통 긴장을 쏟아내는 안팍내외의 전쟁위협에 녹아나는 하시절을 답답하다 못해 숨막히는 이 세월이다. 허나, 이 땅 어느 하늘아래 밤마다 축배의 잔을 치켜들며 "지금 이대로~!".. "위하여 위하여!" 건배하는 그들의 代 이은 만찬이 요즘 '순실이'로 인해 일시 불편한 한 편에선, 200만 같은 동족 젊은이들이 서로를 "주적" 삼아 휴전선에 사생결단 묶여있다.
  남북 군비 연간 400억불..세계 4~5위권 군비부담을 짊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뉴질랜드 GDP 수준이고 아프리카 최상위권 국력이 그렇게 동족대결 소모재로 사라진다. 대일 대중 대동북아  안보 대신, 동족상쟁의 분단안보가 자리하고 있다. 중국 비호를 받는 70년 단일독재 북한 김씨 왕조와 미국 일본 엄호를 받는 남한 친일지배권력의 상존은 유일무이 세계 분단국의 불가사한 특이 병존체제의 결정판이다. 밖에서 보는 눈이다. 우리의 절대동맹국으로 목매는 미국내 식자 중산층 다수가 뜻밖에도 '코리아' 하면 (부정적 뉴스로 보도되는 적대국) '북한'으로 알고 있다는 모 방송(인간극장) 출연 미국인의 얘기는 내국인과 다른 국제 사회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한 구별이 우리같지 않은 것이다. 우린 그저 "코리아!" 하면 다들 "아, 대한민국?" 인 줄 알지만 아니다. 남·북한 모두 코리아..한반도 한민족 모두 코리아인줄 그들은 바로 알고 있다.
  북한주민의 삶은 당장 논외로 치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소득격차 사회격차는 실로 심각하다. 하위 20%는 '삶의 질' 측면에서 조선말 노비층과 별다른 차이 없는 사회 경제적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게 경제사학자들의 진단이다. 상위 10%(10분위)가 국가총소득(GDI)의 50%를 가졌고, 소득격차 지표인 '지니 계수'는 0.6에 달해 멕시코 등 중남미 보다도 나쁘다. 부패한 친일 기득권 세력 미청산이 불러온 정치.사회적 후과다. '도전과 응전'은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운명적 해결 과제다. '촛불 혁명'은 그런 현대사적 맥락의 중심에 자리한 살아있는 실체적 역사의 변곡점이다.
  
  이승만~박정희..박근혜=대한민국=자유민주 체제! 를 동일시 선전 선동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인가? 여전히 저강도 전술로 금압받는 '사회적 의제'다. <블랙 리스트>는 표층수의 일각이다.  일제의 군국적 전체주의 유산을 불하받은 친일 정치.언론.재벌 연합의 메이저 커넥션 슬로건이 전략이라면, TK-호남  지역 갈라치기와 저학력 빈곤층 ..농촌.노인층..도시의 노령부녀층은 전술적 동원집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탈북새터민과 '일베' 등 현실에 좌절한 젊은 자생층들을 동원세력으로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부려먹고 있다.
  1945년 9월 남한의 통치권력을 온전히 인계하고 떠나면서 조선민중에게 일갈한 식민권력자 사이토의 "우리는 패해서 나가는 것 아니다..잠시 (미국에게) 맡겨둔 것이다..100년 안에 다시 들어온다!" 는 지금 현실이 되어가는 양상이다. 평화협정을 외면하는 분단.휴전협정의 당사국 미국 군산복합체의 지속되는 '악의 축' 전략과 절대권력 체제유지에 전일적 동원역량을 몰아넣는 김일성체제하 김정은의 공포독재는 상호 구실을 주고 받으며 저마다의 내부 균열과 민족의 위기를 부채질 하고 있다. 각각의 누적된 모순으로 누란에 걸린 건곤일척의 엄중한 현실앞에 생각있는 씨알 시민은 나라와 민족의 진운에 대하여 고민이 깊어진다.

  이러한 민족의 엄중한 현실앞에 북한정권의 핵 전략은 미국의 동북아 군사외교적 고강도 전략인 사드의 한반도 남부배치와 명분을 주고 받는 권력의 지렛대이자 반면에 주변국들의 꽃놀이 패다. 이들은 한반도를 마작판 수패 굴리듯 우리 민족의 동질적 주권적 존엄성을 희롱하면서 저마다 군비확장과 '전쟁 가능국가' 부활의 핑계 거리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핵에 올인하는 김정은의 체제유지 전략의 지속성은 되려 내외적 위기에 점점 봉착해 가고 있는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분명한 권력적 존재집단인 친일숭미 커넥션은 성조기 시가행진으로 주권국 내부문제에 개입해달라고 매달리며 위안부 협의를 역사적 합의로 강변하는 반민족 반민주적 행태에 거침이 없다. 둘 다 민족의 화해 평화통일, 사회통합에 큰 우환거리다.
  이들은 남북한 저마다의 체제에서 크게 보면, 그냥 절대지배권력 또는 계급적 기득권 그 자체만을 위한 '체제 유지'가 유일한 목적으로 보인다. 연이은 홍수와 흉작..부실하기 짝이 없는 치산치수 현실로 200만, 300만 인민들이 죽어나자빠져도 털끝만큼 책임지는 것 없이 되려 체제유지를 위한 절대권력에 광분한다.  주권 시민 연 1천 몇백만여 명이 광장에 촛불 횃불 들어도 입만 떼면 거짓말로 가리기에 급급하고, 나라와 국정이 혼란과 파탄에 빠지거나 말거나 제 자리 보존을 위한 갖가지 꼼수와 억지로 국법위에 군림하며 무슨 치외법권자나 되는 듯이 헌정 유린을 멈추지 않는 '근혜'와 '새누리'의 무책임한 후안무치 뻔뻔함도 별 대차 없는 막상막하다. 불쌍한 한반도여.. 민중이여..만백성들이여!  '수구 꼴통'이라는 작칭도 아깝다. "수구 우파"? 글쎄다. 이 분류가 과연 얼마나 적절한 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결론적으로 '수구'는 역사관이 없거나 박약하다. "내 코가 석 자"로 제 누리는 밥그릇 지키기다. 그러니 사실은 좌.우도 없다. "그럼 뭐가 우파 좌파냐?" 지금부턴 이걸 좀 언급하고자 한다.

  흔히 맑스의 '계급론'을 드는데, 이건 선행적 계급에게 조응해서 만들어진 19세기 용어다. '계급'이라면 고대 국가체제가 형성되고 완고한 율령이 자리잡으면서 상수常數가 된 "지배 계급"이다. 이 계급의식은 강고하고 끊임없이 지속가능한 내재적 동기유인을 강렬하게 깔고 있다. 그 핵심은 [착취 구조]다. 그걸 합리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권력의 설득력 여하에 따라 생명력의 장.단이 갈린다. 그러나 총체적으로는 권력적 계급집단은 다소의 '구성원적 결'은 교체되지만 지배체제의 연속성.계속성이라는 교체권력의 필요성에 의해 대체로 온존된다.
  이러한 계급의식과 이해관계의 조정.해결 방식이 크게 달라진 게 17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이다. 직접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생겨난 좌.우파다. (여행 버스 안에서...) -다음에 계속!

  루이 16세와 오스트리아제국 황손녀인 앙트아넷을 단두대로 처형한 혁명세력은 혁명이 성공하자 오래잖아 두 패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이 장악한 베르사유 왕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각기 혁명본부를 둔다. 왼쪽은 '자코뱅(당)', 오른쪽은 '지롱드(당)'이 그것이다.  좌편은 완전한 '공화정 파'이고, 우편은 영국을 롤모델로 한'입헌 공화정 파'다. 상대적으로 전자는 당시대적으로 "급진(Redical)" 소릴 듣고..후자는 "온건"하단 소릴 들었다. 이게 좌파 우파 시발이 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지향하는 세상과 이념 방법론이 둘 다 같았다. 말하자면 '동종 이란'이다. 둘 다, 절대군주정을 거부하고.. 시민(당시에는 제한적 시민)계급에 의한 공화민주주의 수립..개혁불가 혁명투쟁 등이 동일 동질적인 혁명동맹군이다. 갈라진 것은 권력에 대한 세력분할의 합의 불발이 본체다.
  좌:우가 진보:보수로 전화 한 건 맑스-레닌의 1848년 인터네셔널 콤뮤니즘 선언 이후다. 사회주의(공산주의) 노선이 밝힌 노동자 중심의 자본주의 질서재편 요구와 잉여가치론..유물론적 변증사관..생산수단의 국유(공공)화와 생산잉여의 공동분배 등은 당시에 급진혁명의 깃발이었다.  이게 앞선 시대의 공화좌파를 "덮어쓰기" 하면서, '진보..좌파'..급진적 진보로, 상대적으로 부르주아 자본가계급은 '보수..우파'..온건한 진보로 변환됐다. 어쨌거나 이렇듯 진화(?)한 신개념 "진보..보수"도 큰 틀에서는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진전돼 온 쌍생아다.

 

  이를테면, 첫째로 둘이 본시 한 몸으로 봉건적 절대군주정체를 시민적 계급혁명으로 혁파하고 들어선 새로운 정치체제의 주체세력이란 점이다. 둘째로 14~16세기 르네상스를 17~8세기적 시대정신으로 이어받은 '자유주의' 정신의 사회.경제적 결과물이란 점이다. 셋째로는 이들의 지향가치의 출발점이자 사회적 통합정신이 '보편적인 자유'..'청렴한 정의'..'평등 균형 사회의 실현'이다. 이게 서구 부르주아 보수의 출발점 이념이고 그런 가치를 나름대로 일정하게 추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방법과 생산력의 혁신이 끊임없이 획기적으로 이뤄짐에 따른 경제력의 대규모화..경제력 집중..대량화된 기계적 생산설비와 노동자 계급의 발생..경제권력의 정치권력화에 따른 독과점 발생과 사회 경제적 빈부격차 확대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쏟아냈다. 따라서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유지와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현상 유지"로 풀어질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개혁"과 쉼 없는 "혁신".."온정과 사회적 기여".."개인적 청빈"만이 기득권 보수집단인 부르주아 계급과 자본주의 체제가 맑시즘과의 투쟁에서 이겨내고 살아남는 생존 전략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과 그 함의를 생각한다면,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칭하는 '보수'가 그 태생적 역사성이나 지향 가치는 물론, 정치 사회적 책무성.. 행태 등 어느 하나라도 "보수적 가치"에 합당한 것인지 "맹목적  수구집단"으로서 사회공동체의 합목적적 상식의 질서를 훼손하는 맹동성 준동세력인지 자문해 볼 일이다. 
  
  "보수"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굳이 들자면, 수구적 보수..온건 보수..중도 보수..개혁 보수..진보적 보수 등이 있다. "진보" 또한 그렇다. 온건 진보..중도적 진보..강경 진보..혁명적 진보 등! 이 양 편 양 극단에 극우, 극좌로 불리는 정치적 이념형 극렬 집단이 존재한다. 히틀러 나찌와 현재의 일본 자민당 아베정권이 전자라면,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은 후자로 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큰 '박사모'..'일베'류는 이념적 극우 아닌, "극우 정치추종적 극렬 집단"이 적확한 성격일 듯 하다. 그런데 '마오'는 코뮤니즘에 중화주의와 다민족 포섭주의가 섞여 있고, 김일성 주의는 강한 민족주의가 가미된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어 고전적 의미로 일도양단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사상..이즘(~ism)을 정형화 해서 규정짓기 모호한 것이다. 따라서 철학적 공론이나 담론보다는 정치적 쟁투의 강력한 수단으로 이용돼 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公論 하나를 짚어본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빨갱이.."에 대한 다른 표현이고 의미상의 동의어다. 이는 북한에서의 불순 성분 대명사인 '부르주아' 보다 더 지독한 악칭이다.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좌파든 우파든 그 층이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인 '좌파'의 의미는 아무리 좌로 잡아도, "적극적인 개혁"..성장과 분배 균형에 방점을 둔 "복지 강화"..사회 정의와 미래지향성을 추구하는 본래적 의미의 "진보적 사고" 를 말한다. 또 다른 기준(아랫단에언급 참조)으로는 집권당에 반대편에 서 있는 '야당' 지칭으로 "좌파"라 부를수는 있다.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보수'다. '더불어민주당'이 딱 이 정도다. 미국 민주당~영국 보수당~독일 기민.기사당의 "비빔밥"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보수적 기조에 기반한 상대적 개혁진보성향이다. 이걸 공산당식 좌파라고 턱도 없는 악을 쓰며 자기가 보수라고 자칭하고 뒤로 잇속 챙겨먹기 바쁜 거다. '정의당'은 여기에 계층계급에 천착한 노동자성을 조금 더 강조하는 실용 노선을 간다는 점에서 서구 여러 나라에서 현재 집권하고 있는 사민당 수준이다. 정의당이든 사민당이든 브라질 룰라의 노동자당이든, 노동자성을 강조하고 그 계층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진보' 혹은 '보수좌파' 쯤이다. 해산당한 민노당의 경우, 분단된 민족 현실에 강한 문제의식을 두고 자주적인 민족통일을 통한 민족해방을 지향하는 정강노선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강경(?) 좌파라 할런지 아리송하다. 왜냐하면, '민족'을 강조한 지점에서 본래적 사회주의 노선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본류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거기에 주체사상을 일정부분(?) 수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게 맞다면 일반적인 사회주의 노선 보다도 소위 '김일성 주의'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민족좌파' 쯤일런지... 역시 아리송하다. 사상이나 이념이란 게 현실적 접목 방식에서 유동성이 크고, 가치의 속성상 인식이 주관적이다. 따라서 좌파 우파 진보 보수 등 몇 몇 단어로 쉬이 판단하거나 재단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는 양심의 자유와도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내면세계에 대한 자기결정권적 인권의 측면도 크다. 이걸 정치적 이해관계로 써먹는 것 자체가 反정치적이다.  
  어쨌거나 민노당 해산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다면 다양성 허용 범위에 대한 시험대였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과 국내적 찬반 논란은 물론, 극우 정권에 의한  정치적 공안탄압과 '헌재'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사법적으로 종결되었다. 그럼에도 이명박정권 때 다시 생겨난 탈북자 조작간첩사건부터 좌파 종북 소동은 여전하다. 
  山人이 객관적 역사적 학문적인 관점에서 소견컨데는,  현재 국회의석을 가진 대한민국 정치결사체(정당)에 정체성 불명의 집권 극우 정당과 몇몇 보수~범보수 정당은 있으나 좌파 정당은 커녕 혁신 정당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여전히 색깔을 통한 '공안 정치'가 판을 치고..선거철엔 어김없이 등장하고 약발이 먹힐까?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줄여 논해보자면, 이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배경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는, 친일-남로당 출신 박정희의 '레드 컴플렉스'가 혁명공약 1장에 박아넣은 "반공을 국시로 한다!".  이게 그의 18년 집권동안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고 사회 전체의 내면화 기제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둘째로는, 박정희를 포함한 수십 년간 지속된 정통성 부재의 역대 독재정권이 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무기로 고비 고비마다 써먹었다. 셋째로는, 6.25 한국전쟁으로 입은 "전쟁"과 사상적 결벽에 대한 국민적 트라우마가 그 토양이 됐다는 점이다. 
  "빨갱이"라는 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비열하고 치명적인 공격 수단이다. 근거도 없이 마녀 사냥식 덮어씌우는 '좌파 프레임'은 '저비용 고효율'의 가장 많이 남는 장사다. 이 말을 쓰는 사람들은 입만 뗏다 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쉽게 올린다.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이것이다. 1963년 11월 군복을 벗고 윤보선과 6대 대선에서 맞붙은 박정희가 받은 가장 괴로운 공격이 "박정희는 남로당원으로 군에 침투하여.. 여순반란 사건 실질 주모자.." 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사형을 언도 받은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 받았는데, 한국전쟁 초반 대혼란기에 과거 상관이었던 이용문에 의해 기적같이 소령 계급장을 달고 복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후일 朴은 그 아들 이건개를 약관 35살에 서울시경국장-치안본부장-서울시장으로 은혜를 갚는다).
  윤보선이 이걸 문제삼은 것이다. 그러자 박정희는, "...지금 상대 후보가 나를 '매카시'적 수법으로 마녀 사냥을 하며 국민들을 혼란시키고 있다.."며 개탄을 쏟아냈다. 그러던 그가 집권 내내 되써먹으며 공안통치 연명하고 후계자 전두환-노태우가 따랐다. 그러나 '문민~국민~참여 정부'도 이걸 치유 못했고 이명박정권이래 근혜정권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 이 "빨갱이"가 남북간 대화와 왕래, 이산가족 상봉 및 금강산 개성 등 경제 문화적 교류 등으로 더 이상 써먹기 불편해지자, "좌파"로 그 자리를 대체했다. 이 단어는 다시 "종북좌파"라는 기발한 단어로 진화하며 병행 등치 시켰다. 즉, 좌파=종북=빨갱이의 등식이다.  보수도 못되는 수구 친일 지배잔당은 보수 정치세력을 "진보 좌파"라고 을러대며 색깔을 입혀 자신들을 '보수'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진짜 생각이 그렇다면 知的 '무지렁이'이고, 알면서 그러면 아주 "나쁜" 人性이다.
  "빨갱이"는 옛소련 중국 북한 등 일부 공산주의 국가의 국기 바탕색이 '빨강'을 빗댄 적대적인 형용사다(*과거 공산권인 동구라파 나라들의 국기바탕색이 빨강은 거의 없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좌파 정당"이라는 건데, 말하자면 "공산주의를 지향 또는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빨갱이 혹은 종북 정치집단이고..그런 개인은 공산주의자라는 지칭을 에둘러 말하는 것이다.  남한 사회에서 이런 말은 북한에서 반동으로 몰린 월남자 가족과 같은 격이다. 분단과 남북관계를 정치에 끌어들이고, 지역 계층에 더해 무책임한 사상 공세로 찢어발리는 분열 정치공학의 전형이다. 반이성적 광기가 아닐 수 없다.  무슨 권리와 믿는 구석 있을까?  이른 새벽 낮게 깔린 자욱한 물안개다. 우리 사회의 낯익은 내면 풍경이다.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옛소련에서 집권자인 스탈린은 보수우파..트로츠키는 레닌시절 보수좌파로 불리다가 스탈린에 쫒겨난 후엔 진보좌파 또는 급진좌파로 불렸다. 중국도 그렇다. 모택동이 보수우파라면, 등소평은 진보좌파였다가 복권되고 권좌에 오르자 보수우파가 됐다. 교과서적으로 본다면 둘 다 역사적 맥락에서 진보..좌파다. 그럼 왜 그럴까?
  보수..진보 개념의 또 다른 구분 기준이 권력자의 피:아 어느 쪽이냐에 따라 권력측은 우파, 그 반대편에 서면 좌파로도 불린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박근혜는 우파(*드러난 통치행태를 보면, 새누리나 그녀나 '우'도 '보수'도 아닌 무이념의 '극렬 극우다'),  이명박이나 김무성은 (친일)좌파 보수로 불릴만 하다. 고정 불변이 아니란 말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상대적 용어다. 따라서 사회과학적인 전문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인 용례로 사용하기에 적절치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걸로 죽기살기식 싸움판이다. 침 튀기면서 사상검증이니 어쩌니 삿대질 하던 정치인들이 어렵잖게 그 정당으로 옮겨가는 일이 다반사다. 유치하고 웃기지도 않는 난장판이다. 정치불신이 사회불안으로 전이되는 경로다.
  이런 와중에 국내정치판에 뛰어든 반기문은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다"라는 글로벌틱한 멋진 말 한 마디가 뭔 잘못인지 낙마했다. 뭣이 문제였나? 그건 역으로 우리 사회가 보수 진보의 개념이 명확하게 역사성을 획득하지 못한 채 분단의 논리에 지배당해 온 반증이다. 파행적 정치와 그 논리로 지배해 온 정치집단의 이분법적 속임수가 불러온 집단적 국민의식의 왜곡 결과다. 거기선 감귤이 여기선 탱자가 된 것이다. 문제는 탱자가 귤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친일파가 보수 행세를 하는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혼란이자 비극이다.

 

  山人이 냉정하게 판별해 보건데는, 역사.현실적 본래의미로 재어볼 때 한국정치판에서 보수 우파(익)은 '민주당'과 '국민의당' 쯤이다. 그것도 '온건 보수'다. 진보 혹은 좌파라고 억지를 부리자면 '정의당' 쯤이다. 새누리(자유한국?)가 볼 땐 제일 먼 곳에 있으니... 그러나 정의당도 민주당 보다 아주 조금 더 나간 수준이다. 넓게 보면 "보수적 진보" 또는 앞서 언급한 바 "보수 좌파" 쯤?이다. 이를테면, 서구의 좌파라는 '사회민주주의'(*더러는 사회주의와 구분하여, '개량사회주의' 또는 '사회복지주의'라고도 부른다) '사민당'과 비교적 유사하다. 바른당  대선후보들의 경제 사회 공약을 보면 정의당과 뭐가 다른지 모를 정도다. '큰 정부론'의 확장형이 오늘날 세계의 보편인 점을 감안하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이걸 좌파 우파 타령으로 선거표 따먹으려는 정치 후진성과 이념적 폐쇄성이 사회 갈등의 뿌리 아닌가싶다. "~쯤"이란 건 서구처럼 상대적으로 명확치 못하다는 뜻이다. 정강 정책이나 정치적 주의 주장..행태(비헤비얼리즘)적 측면에서 그렇게 본다.  
  '새누리(자유한국당?)..바른정당'? 이들은 겉만 정당이지 본질은 권력적 이해관계로 모인 모리배들의 수직적 집합체다. 이 글 맨 앞단에 언급한 '계급적 기득권'을 위한 이익의 공유를 향해 모여든 정체성 불명의 변형된 친일파 잡탕나부래기다. 그래서 오히려 구심력이 질기다. 분열보다는 '이익의 단결력'이 강하다.  되려 자유주의적 오리지널 보수성향이 강한 현재 야권 정당들이 그 원심력으로 인해 이합집산이 빈번하다. 대비되는 지점이다. 친일수구집단 장기집권의 밑바탕이기도 하다. 이런 걸 정치의 아이러니라 한다. 이들은 물론 보수도..수구적 보수도 아니다. 그럼 뭐냐? 그냥 새누리..바른당이라 부르면 된다. 이념적 가치 중심의 정치결사체로 보기 어렵다. 꼭 우긴다면, 반공..종북좌파 척결이 정치이념이라면 이념일 수 있다. 그런데 민족이 통일되거나 북한체제가 변화된다고 하면 이런 구호도 자동소멸 되니 이념일 것도 없이 그냥 정치적 선동 구호에 불과하다. 그래서 정당결사체로 보기 쉽잖다는 말이다. 이들의 태생적 컴플렉스가 보수:진보 편가르기에 열심인 까닭이다. 혹여 이념이라 우겨도 문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는 핵심적 지주다. 사회주의적 이념의 경우, 다만 분단의 특수한 상황아래 국민적 합의로 일정한 법률적 제약을 두고 헌법재판소에 엄격한 판단을 맡기고 있다.  따라서 영원불변 금지 아닌 합법화 구성요건 충족시기 까지(그 때가 언제일진 모르지만) 한시적 유보의 성질로 보는 것이 보편적 합리해석이라고 소견된다.  아직 우리 대한민국은 "반쪽 민주주의"를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시민들은 겉으로만 헌법적 주권자이지 실상은 흑싸리 껍데기였다. 대중조작에 놀아나며 환호하는 열성적인 팬클럽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로 여기저기 동원되고 아전인수 해석당하는..심하게 말하면 민법상의 '물권적 객체' 쯤~ 이라 해도 과한 비유 아니다.  "근혜-순실이"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준, 국민이 신성한 투표권을 행사해서 현명하게 뽑은 대통령의 실체가 말해주고 있다. 뉘 탓할 일도 아니다. 쥐구멍에 머리 처박기는 커녕 또 근혜류 동종이인에 묻지마 투표할 선량한 유권자들 여전히 늘어서 있다. 그들 위에 친일파 못지않게 똑같이 매국매민에 앞장 설 상부구조물도 역시 늘어서 있다. 대한문 광장에서..일베류 인터넷 공간에서 그들을 만나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묻는 당신에게 山人이 되묻고 싶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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