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관여 실행의 주도자로 김기춘과 조윤선이 며칠 전 구속됐다. 근혜순실 게이트로 검찰-특검에 구속된 이들이 현재 10여 명이다. 말하자면 ‘범털’들이다. 모두 주인 잘못 만난 탓 크고 잘못 모신 죄 크다. 더 큰 죄는 삐뚤어진 욕망으로 맺은 개인적 인연으로 머무른 게 아니라, 온 나라 시민들에 저지른 되돌릴 수 없는 패악질이니 자업자득 치고는 너무도 큰 죄업이다.

  왜 ‘조윤선’인가? 하고많은 범털 중에 조윤선을 끄집는 연유는 “박근혜의 감옥살이 예행연습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윤선의 이력이나 지위는 현직 대통령 박근혜의 발뒷꿈치도 못따라간다. 근혜가 공주로 자라나  태후노릇을 거쳐 여왕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제 능력이든 제 애비 후광이든 아니면 최순실 기획작품이든 여하튼 로또 1등 이상의 확률을 뚫은 그녀다. 그런 근혜는 논외로 치고, 동류 여성으로서 조윤선의 주변 배경이나 학벌 그리고 현재까지의 이력 등은 약관의 성공한 젊은 정치인으로 보기에는 권력의 징검다리를 타넘는 속도가 한국사회에서는 대단히 화려하고 비약적이다. 아우토반 고속도로다. 무슨 탁월한 능력이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런 비례 대칭성을 뛰어넘는 것같이 보인다. 그래서 ‘신데렐라’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스스로 비참해 하는 것은 글로벌 최고 엘리트라는 자존감의 붕괴 때문이다. 최순실은 비록 대통령을 등에 업고 최고 권력을 누렸어도 스스로 ‘엘리트‘라는 생각은 못하며 살았다. 그래서 감옥 아니라 그보다 더 험한 곳에 가더라도 개걸스럽고 억척스레 적응하고 버티며 살아갈 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윤선이는 그게 아닌 거다. 감옥에 간 그녀를 끄집어 얘기하는 까닭이다. 그 추락의 속도와 충격 또한 ‘딥 임팩트’다. ‘급전직하’..요즘 말로 “드롭” 걸렸다. 그 체감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곳이 바로 교도소다. 말이 교도소지 형무소 감옥이다.

  그 곳은 입감절차부터 일상의 생활까지 인간의 신체 뿐 아니라 정신까지 구금하는 차가운 밀폐 공간이다.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고 시간이 멈춰진 일종의 정신병동이나 다름없다. 이런 데가 전국에 47 곳 있다. 교도소 36 곳, 구치소 11 곳이다. 이 안에 지금도 5만5천~6만여 명의 수인들이 바글거리며 우리들 곁에서 바깥세상과 함께 숨쉬며 살고 있다. 전자는 기결수 후자는 미결수가 주로 수용된다.  교도관(간수)이나 접견차 들락거리는 변호사들에게는 ‘직장’이지만 수감자들에게는 박탈과 억압의 ‘수용소’다. 한 공간에 함께 실존하지만 양자 사이에는 전혀 별개로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뭣이든지 남의 일삼아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TV 다큐에 비쳐지는 모습이나 영화 ‘검사외전’에서 묘사되는 그 곳 풍경은 양반이다. 실제적 디테일은 바깥의 축소판이다. 이 글의 주된 대상인 ‘범털’들은 대부분 서울구치소에 몰려있다. 범털 개인의 좌절 참담함과는 별개로 그들은 그 안에서도 돈과 권력의 위세를 다양한 형태로 여전히 누리며 지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2중 모순의 실체다.

  조윤선... 그녀가 가졌고 누렸던 그 특별했던 존재감이, 세상의 시야에서 가려진 그 특별한 시·공간에서 지금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허물어져가고 있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박근혜의 감옥살이 모습이 선연히 그려질 것이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  구속영장은 묘하게도 늘 밤 12시 전후로 떨어진다. 왜 그럴까? 유치장(또는 검찰 구치감)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피의자의 불안감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며 높아져 간다. 그러다 급하게 뛰어들어오는 수사관의 말 한 마디, “떨어졌어”로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리고 어지럽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이어져 오는 이 것도 인권 측면에선 개선되어야 할 악폐다. 어떤 불가피한 필연성이 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다.

  여기서 잠깐 삼성 이재용부회장 件을 짚어본다. 검사고 판사고 간에 법으로 따지고 먹고사는 전문직업인이긴 해도 인간의 본성이 잠재적으로나 현재적으로 머릿속에 먼저 작동됨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예단’이다. ‘금기어’라는 것은 역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반증어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대형 사건은 굳이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기 전이라도 법관들은 언론을 통해 세세하게 기승전결을 파악하고 사건의 본질을 이해한다. 직업상으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기 판단‘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게 ’예단‘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 이재용에 대한 22시간 고강도 심문조서와 제출된 많은 증거자료 아니라도, 오전에 벌인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결정 통보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발부나 기각 여하를 떠나 이 ’뇌물죄‘ 사건 개요는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긴 시간 고심 고뇌 끝에 내린 어려운 결정인 듯 포장된 ’쇼‘로 보이는 이유다.   법의 해석논리는 유권해석 당사자(판.검사)의 선험적 자기판단에 따라 이리저리 달라질 수 있고 심지어는 180도 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앙선관위가 대통령피선거권 자격으로 규정된 조항 “...입후보자는 국내에 5년이상 거주하여야 한다...”라는 법조문을 “생애에 통산 5년이상 거주하면 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반기문을 살려주는 경우가 극단적 유권해석의 사례다. 법률가도 아닌 일반 사무직원들인데 말이다. 이 문제는 조만간 피하기 어려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현령 비현령‘이다. 그래서 변호인의 힘은 “로비의 힘”이고 로비력의 차이로 귀결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다.

   다시 앞으로 돌아간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야심한 밤중에 유치장 밖으로 끌려져 나온 피의자는 창문마저 검게 썬팅된 봉고 호송차에 실려 어디론가 실려간다. 물론 교도소로 가는 길이지만 눈가리고 방향감각을 잃은 채 잡혀가는 죄수의 심정을 비로소 체감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교도소 정문앞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 경비교도대원이 지체 없이 육중한 정문을 열어준다. 첫째 관문이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낯설고 생경한 어둠속에 내려진 피의자는 수사관의 손에 이끌려 본관  어느 대기실로 따라 들어간다. 잠시 후 보안과 직원이 내민 신상조사서를 작성하고 지장을 찍은 후 수사관과 교도소 직원간에 신병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이제부터 교도소 식구가 된 것이다. 데리고 온 수사관은 악수를 나눈 후 곧바로 돌아가 버리고 의자에 앉혀진 초범 피의자는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난다. 범털일수록 더욱 그렇다. 기선 제압하는 일종의 심리적 장치구실이 한 밤 영장 발부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사위가 고요한 캄캄 밤중에 교도소 구조를 전혀 모르는 피의자는 이미 심리적으로 무장해제다. 보안과 조사실을 나오니 1층인지 지하충인지 내려가 들어선 곳은 희미한 형광불빛 내려깔린 반 평 남짓 어느 골방이다. 윤선이는 여기에서 일생일대의 치명적인 수치심을 맛본다.   담당 교도관과 단 둘이긴 하지만, 온몸을 발가벗기운 그녀는 “이건 이곳에 오면 누구나 하는 법적인 입감 절찹니다” 교도관의 짧은 설명을 들으면서 자신의 알몸 앞뒤 위아래를 검색당한다. 잠시 후에는 허리를 구부리라는 지시와 함께 항문 주위도 유심히 살펴본다. 물론 김기춘 조윤선 등 고관대작 범털들이 설마 마약 담배가루를 담은 비닐캡슐을 삼켜 항문주변에 감췄을리는 만무하겠지만(?) 규정대로 해야한다. 전두환 노태우도...재벌총수들도 그랬을까?

  그랬을 거라고 믿는다. 법앞에 평등을 떠나 기계적인 의무수칙으로 해야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하얘지는 수치심과 저 아래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모멸감에 온 몸을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지?”).....  잠시 후, 담당 교도관은 아래위 죄수복 한 벌을 꺼내놓고 속옷만 남기고 입고 온 사제복은 모두 벗으라고 명한다. 조윤선은 대한민국 문체부장관에서 명실공히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가 부착된 구치소 미결죄수로 거듭난 것이다. 수인번호는 1*** 대.. 형사잡범 분류번호다. (민주화운동) 정치범은 2천번 대라 누가 봐도 당당하다. 죄수아닌 죄수다. 가진 것 없어도 감옥안 모든 수인들로부터 인정받고 대우받는다. 한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 최고권력자와 동락同樂했던 김기춘 조윤선의 형사잡범 처지는 그래서 비참하다.

  수갑에 채인 그녀는 안내 교도관을 따라 어두컴컴한 수용사동 건물 몇 채를 지나 제일 후미진 곳 사동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수인들은 이미 8시 半소등하고 잠에 들어 깊은 한밤중이다. 사동 건물을 지나갈 때마다 천근 무게로 “철커덕” 거리는 2중 철문을 열고 닫으면서 울리는 금속성에 윤선의 오장육부는 쪼그라지고 오므라들었다. 몇 개 사동舍棟을 지났을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지낼 방 앞에 도착했다. 작은 ‘독방’이다. 이제부터 특별한 일 없으면 여기가 자신의 집이다. 독방은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다. 일반 잡범은 언감생심이다. 주로 정치범 사상범 또는 특별관리가 필요한 형사수감자다. 동시에 가장 외롭고 지루하고 정신적으로 힘겨운 곳이다. 모든 교도소 건물구조는 동일하다. 수용자 관리도 운영 규칙에 따라 동일하다.  이곳의 실세는 보안과장이다.   보안과장은 이 귀한 새 식구에게 각별히 신경 써줄 것을 담당자에게 이른다. 그런데 이게 더욱 촘촘한 감시의 눈길로 느껴져 불편함은 가중된다. 깊은 한숨을 들이시며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방에 들어서고 교도관은 비로소 그녀가 찬 은팔찌 수갑을 풀어줬다.

 

  그녀의 방은 1.9평! 생각보다 작지 않다. 서울역 뒷골목 쪽방보다 훨씬 크다. 여관방 급이다. 독방도 크기가 여럿이다. 2.75평 1.9평 1.2평 등... 제일 작은 게 0.74평이다. 학교 교실 교단 2개 이어붙인 크기에 길이는 그보다 더 짧다.  혼자 누우면 양옆 틈 없이 머리~발끝 딱 낀다. 벽과 천정은 모두 흰색 석회칠에 뿌연 형광등도 24시간 켜져 있어 창문만 없으면 낮과 밤 구별 없다. 

  방 안팎에 설치된 카메라와 감시자의 눈길에 24시간 노출된 죄수의 숨은 턱턱 막히고 알 수 없는 울화에 어쩔줄 몰라한다. 그나마 주간에 앉아 지내면 공간감이 느껴져 숨을 내쉰다. 여기서 1년을 잘 보내면 누구나 도인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말처럼 세월만 보내면 되는 건 아니었다. 신체 적응과 불면의 고뇌를 이겨내는 내면 자아투쟁이 따르는 험난한 내공수련이다.  어쨌든지 이만한 수양처가 없다. 故신영복선생이나 비전향장기수들이 여기서 꼬박 20년을 보낸 그 경지를 상상해보라!

 

  그러고 보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바쁘게 설치고 날뛰며 굴러먹다 들어온 사람에게 1.9평은 수양처로 삼기에 과한 호사일 수 있다. 그러나 난전판 천덕이로 굴러먹다 들어오는 부류와 달리 태생 신분이 다른 금수저에게는 사실 이만한 고통도 없다. 윤선이의 현재이자 근혜의 미래다.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다. 검찰의 마수에서 도망쳐 온 이 곳인데 다음 날부터 다시 매일같이 불려나가는 심리적 고통과 열패감은 참기 힘든 억하심정이다. 이 틈을 검찰도 노린다. 무너뜨리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윤선이는 그래서 힘들다. 검찰에 불려나가도 구치감 방안에 수갑을 찬 채 종일 갇혀 “이제나..저제나..?” 하루를 보내다 그냥 되돌려지면 참담하다. 그렇게 2~3일 반복하다 검사 앞에 불려나가면 너무 고마워서 묻지 않는 것까지 술술 불기 십상이다. 그리곤 다시는 불러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검사는 이걸 놓치지 않고 잡아챈다. 갇힌 자의 한계다. 조윤선이 누군가? 어제의 동업자가 오늘은 적이 됐다. 창과 방패로 서로가 서로를 겨눈다. 권력의 흥망이 교도소 담장위를 걷는 처지에 다름 아님을 그녀는 이제 조금씩 알아간다. 아무나 공익의 대변자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함부로 나설 일도 능력을 과신할 일도 아님을 윤선이는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지금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다. 이건 음모다. ("독해야 살아남는다")....

 

  입맛 밥맛 모두 잃은 이에게는 진수성찬도 만사휴의인데 하물며 감옥의 밥이며 반찬이 그녀의 입에 가당키나 하겠는가? 수백 명의 밥과 반찬을 대량으로 짓고 만든 1,400원짜리 1식3찬이니, 그 맛이며 질이 어디 눈길조차 가겠는가 말이다. 북촌 반가 12첩 밥상만 받아먹던 윤선이 처지에서, 상종조차 않은 까마득한 계단아래 인종들 손으로 짓고 만든 걸 먹어야 하는 “내 신세“라니...!   그녀를 더욱 괴롭히는 건, 손수레에 실린 커다란 밥통 국통에서 국자로 질질 흘리며 퍼담아 주는 식판조차 겨우 드나드는 ‘식구통’으로 서투루 받다 부딛쳐 복도바닥이고 방바닥에 흘려 듣는 천한 것들의 한 소리다. 그녀는 어금니 질끈 깨물고 눈을 내리깔며 화장실로 들어가 식판음식을 변기통에 쏟아버리고 변기옆 수도꼭지를 틀어 수세미로 닦는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거울 하나 없는 방구석에서 며칠 째 보습제도 못발라 메마른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마음을 추슬러본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감청고소원 표정으로 닦은 식판 내놓으라 또 닦달하는 배식 '소지'들의 흘리는 웃음에 화들짝 들이미는 윤선이 얼굴은 또 한번 얼룩졌다. 복도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변기통 입구를 수건으로 가린 채 볼 일 보는 윤선이에게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한다는 사실은 가상이 현실이 돼버렸다. 사실 식사 후 간수는 세면 겸 식판 세척실로 가서 씻고 닦도록 문을 따준다. 윤선이가 이를 기피하는 것일 뿐이다.

  종일 갇혀있다 하루 3 번 이 때를 놓칠새라 우루루 몰려가 떠들고 정보도 교환하는 수인들의 눈총과 수다앞에 자신을 감추고 싶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방 변기통옆에 쪼그려 앉아 양치질과 세면..먹지도 않고 버린 식기세척을 모두 해결하고 있다.  안받으면 단식이 되고 교도관들이 달려오는 일이 생기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윤선이가 진짜 힘든 일이 어디 이 뿐이랴! 하루 한 번씩은 사방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작은 마당에서 교도관 감시 아래 운동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 여기서 이런저런 일이나 작당이 유무상통하기도 하지만 그나마 몸을 움직이고 푸른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윤선이는 이것도 여간 부담이 아니다.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놀림거리 구경거리 된다.  그러니 종일 좁은 방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 윤선이의 숨막히는 열불속을 어쩌겠는가? 

  어제는 하도 답답해서 변기 앞부분 튀어나온 곳에 두 발을 딛고 코딱지만한 창만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냈다. 무릎이고 정강이가 까지고 쑤셔 밤새 잠을 설쳤다. 자신이 개.돼지 취급받는 존재임을 깨달은 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난해인가, 교육부 모 관리가 “국민 90%는 개 돼지다..밥만 먹여주면 된다..“해서 소란이 났던 일이 생각났다. 지금 자신이 그 개 돼지가 된 것만 같다. 아침 6시 기상은 그런대로 할만 한데, 8시 아침밥..11시 반 점심..3시 반 저녘밥! 그러니까 7~8시간 안에 하루 3끼니를 모두 먹이고 5시에는 폐방! 8시 되면 취침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종일 좁은 골방안에 갇혀 지내는 윤선이는 참 괴롭고 힘들다. 그녀는 이래저래 ‘식음 전폐’다. 

  그런 윤선이에게 유일한 탈출구가 있다. 변호사 접견이다. 가족면화와 달리, 변호사 접견은 교도소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데다 매일 가능하고 시간제한이 없다. 다만 선임 변호사가 수임 사건이 여러 건이다 보니 온종일 윤선이한테만 시간을 내어줄 수 없는 게 문제다. 물론 더 큰 거금을 들여 1인 전담제로 그를 사면 되지만 그만큼의 실익은 없다. 설사 그리 내줘도 눈치 보이고 말도 나면 변호사도 입장 난처해 질 일이니 두어 시간 쯤 바깥바람 씌고 밖에 동정도 들어보고 이러저러 시간 보내다 들어오는 게 하루를 버티는 힘이다.      

 

  아,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집이고 땅이고 벌어놓은 전 재산 몽땅 털어서라도 하루빨리 지옥같은 이 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차는 나날이다. 그렇지만 만만치 않다. 검사가 요구하는대로, 있는대로 사실을 다 불어댔다가는 근혜여왕의 후환이 두고두고 걱정된다. 근혜 뿐 아니라 자신과 가족이 들어가 있는 1% 기득권 그룹에서 따돌림 받고 밀려나는 것은 세상에서 밀려나는 두려움이다. 그녀를 더욱 뻔뻔하고 후안무취한 인간으로 남게 하는 동기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게 ‘위안’이 되고 ‘독’이 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윤선이다. 그러나 어쩌랴! 저질러진 일, 나라고 국민이고 우선 내가 살고 볼일이지 별 수 있겠나? 기왕에 망가진 거, 더 나빠질 일도 없겠지 싶다. 윤선이는 마음을 다시 독하게 다져본다.

  자신이 10년 간 몸담았던 최고 법률회사 ‘김앤장’도..역시 이 곳에 몸담은 스타 변호사 남편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신을 변호해주려고 나서기 어렵다. 변호사가 변호사를 산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지만 어쩌랴! 자신만은 못하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변호사를 남편을 통해 구한 윤선이다.

  이 변호사에게 바라는 건 한 가지다.  자신이 실형감인지 집행유예감인지는 더 잘 알 일이니, 이 사람이 하루도 거르지 말고 접견이나 잘 와서 그나마 자유롭게 숨 쉴 시·공간을 많이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기결수로 넘어가면 면회나 접견도 월 4회정도로 그친다. 끔찍하다. 그 전에 어떻게 해야 한다. 윤선이는 이래저래 밥맛을 잃다시피 사실상 ‘식음 전폐’ 중이다. 나날이 2만원씩 쌓이는 영치금으로 사식을 사 먹으라는 가족의 득달같은 성화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엊그제는 이곳, 같은 구치소 어느 독방엔가에 들어앉아 있을 정호성과 안종범 방에 특검 수사관들이 들이닥쳐 방안에 있던 물품들을 싸그리 훓고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차하면 교도관들도 수시로 입방해 거둬들인다. 조심해야겠다. 걔들이 뭘 모르고 순진해서 그런 일을 당한 거다. 글로 종이로 남긴 흔적은 보관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순실이 방 '압색'했다는 보도는 듣도 보도 못한 것 같다. "밖에서 부린 위세가 여기서도 통한다니까!" 틀린 말 아니다. 알아서 편의 봐주고 알아서 챙겨주고 귀띰도 해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런 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소내 배식 복도청소 교도관(간수) 잔일 보조 등을 하는 모범수들인 이른바 ‘소지’를 잘 꼬득여 메신저로 활용해 한 다리 두 다리 건너가며 연락하는 방법도 있고, 이 쪽 저 쪽 변호사들끼리 입을 맞추는 방법도 있고.. 같은 사동내 힘깨나 쓰는 고참 방장이나 조폭 보스를 통해 바깥과 소통하는 방법도 찾으면 있을 수 있다. 집필실이나 세면장 TV관람실 운동장 등 수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방법이 다 있다. 궁하면 통한다. 모든 걸 일일이 다 감시하고 잡아내기란 실상 어렵다. 검찰 등 수사기관도 이런 가능성을 늘 열어두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다. 정호성 안종범의 감방을 ‘압색’한 것도 그런 경우가 충분이 존재함을 방증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조윤선의 요즘 하루하루는 검찰과의 전투 연속이자 자신의 양심 정신력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자신도 모른다. 거대한 역사의 강물앞에 홀로 버려져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윤선이가 생각하기에는, 감방 안에서 받아보는 일간지 뉴스들을 보나 여기 들어오기 전 종편뉴스들을 보나 이제까지 든든한 우군이자 호위무사를 자임했던 이른바 ‘보수 언론’들이 모두 박근혜를 버렸다. 아니, 버린 정도가 아니라 물고 뜯어대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새다.  확실하다. 일반 국민들이나 종북좌파들이야 그렇다 치고, 그나마 비빌 언덕이었던 언론들마저 야멸차게 배신하고 떠나갔다. 대통령은 이제 비비고 일어설 그 무엇이 없어 보인다.  모두 반기문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반반”이다. 여기저기 후보감 물색하느라 꼴 사납게들 헤맨다. (“아, 나는 어떻게 될까... 어떻게 해야 될까?”)

  윤선이는 오늘도 식음을 전폐하며 잠 못드는 겨울의 긴 긴 밤을 지새우고 있다. 내일 또다시 불려나가 대적해야 할 그 검사 놈을 막아낼 최후의 은장도 날을 벼리고 있다. 그리고 4주 지나면 법정에 불려나가 판사와 지루한 전투를 처음부터 다시 벌여야 한다. 그렇게 3개월.. 항소 가서 4개월..대법까지는 무조건 가야지! 거기서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그 사이에 혹여 새 정부 ‘광복절 특사‘로 정치 사면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게 마지막 희망이다. 

  그나저나 근혜 대통령이 여기에 오실 날도 머잖을 것 같은데 어찌 감당하실는지... 아마도 전두환이 지냈던 4.5평 모텔급 그 방에서 조금은 특별하게 대우받으며 지내시기는 하겠지. 어쩌면 내가 그 분 대행으로 예행연습을 벌이고 있는지도 몰라. 지금.....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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