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들에게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났다. 행복해야 할 순간에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그 누구도 처음부터 싸울 생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지구인들은 상황을 꼬이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기대가 오히려 화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스카우르나의 외계인들은 헛된 기대나 희망을 버리고 평정의 상태를 지니게 된 것일 거다. 기대하지 않으면 서운할 일도 없는 법이니까. -32
-"얘는 똥개가 아니야. 그리고 현아야, 잘 들어. 너한테 누구를 싫어할 자유는 있을지 몰라도 상처를 줄 자유까지는 없어. 나쁜 감정은 좀 감출 줄도 알아야지. 네 말대로 나처럼, 착한 척이라도 좀 해 봐. " -72
-짱구가 잠시 예리를 올려다보더니 다시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예리는 이런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짱구라면 어쩐지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게 되어도 혹은 인간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더라도 비밀을 끝까지, 영원히 지켜줄 것만 같았다. (중략) 강아지의 마음은 마치 펼쳐진 책 같았다. 지구인처럼 진심을 감추거나 일부러 남을 속이지도 않았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표현하는 일에 눈치 보지 않았다. -79
-짱구와 함께 호숫가를 걷고 있자니 철학자가 된 것 같았다. 스카우르나에서 지구의 자연을 탐내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자연은 이치를 일깨우고 생각의 깊이를 선물하니까. -81
-예리는 주변의 이웃들을 보며 생각했다. 예리에게는 강아지 모리가 있지만, 13층 할아버지에게는 자전거가 있다. 10층 아주머니에게는 꽃꽂이가, 8층 오빠에게는 기타가 있다. 3층 이모에게는 고양이 다다가 있다. 예리에게 모리가 소중하듯 이웃들에게도 저마다 소중히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다.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