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 - 폐 끼치는 게 두려운 사람을 위한 자기 허용 심리학
이지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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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 중 단번에 이 책으로 서평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건, 내 행동과 생각의 의미를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소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기 전 한 번씩 머릿속에 미리 그려 본다. 말실수를 하고 싶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쁜 사람이기 싫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고, 내가 원하는 ‘나’가 되지 못하는 내가 싫어서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해도 실수하지 않을 순 없다. 가끔은 나조차도 그냥 저질러 버릴 때가 있다. 과하게 신경 쓰는 게 싫어서 노력을 덜 하면 노력을 덜 한 게 후회되고, 반대로 노력을 많이 하면 노력을 많이 해서 후회됐다. 내가 이렇게 애쓰는데 왜 안 될까. 이 생각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앞에서도 자꾸만 나타나 내 발목을 붙잡았다. 게다가 나의 이런 복잡한 머릿속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밖에선 되도록 티내지 않았고, 집에서는 재미있고 자극적인 것들, 예를 들면 릴스 같은 것으로 사소한 생각들을 지웠다. 그것들에 잠시 집중하고 나면 후회도 슬픔도 분노도 가볍게 증발되곤 했다.

책 속에 적힌 이지안 작가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들과 그가 만난 내담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직면하는 과정을 보며 과거의 내 마음을 지금에라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살피는 일’이란 걸, 여태 알면서도 잘 안 됐던 그 일이 이젠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건지 알 것만 같다. 이 과정은 단지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읽었을 뿐인데 어느새 내게 와 있었다. 조곤조곤 말하는 작가를 따라 책 한 권을 쭉 읽어내리면 어느 순간 마음에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내 마음 상태를 다양한 의학 용어들로 불러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실제로 상담에서 이루어지는 치료 방법도 나와 있는데, 일상에서 쉽게 해 볼 수 있는 것들이라 거리감이 가깝게 느껴져서 좀 더 기억에 잘 남았다.

그중에는 내가 하고 있는 모닝페이지에 대한 설명도 있다. 모닝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무것도 의식하거나 고민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세 페이지를 쓰는 것이다. 세 페이지는 되어야 내 마음이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침잠이 많고 귀찮다는 핑계로 한 페이지 정도만 쓰고 있었다. 내 마음이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 보니 그저 일어나자마자 끄적이는 것에 그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이제 내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 알게 됐다. 예전의 나라면 모닝페이지를 제대로 쓰지 않는 나를 자책했을 테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나를 자꾸 들여다보는 게 내가 너무 과해서인 것 같단 생각에 발을 살짝 걸치기만 할 뿐이었다. 내 마음이 봐 달라고 소리치는 건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이제 나는, 그때 나는 너무 바보 같았어/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이 일이 잘 안 풀릴까 봐 걱정돼/나는 아직 한참 멀었고 다른 사람에 비해 게으른 것 같아 이런 생각보다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내가 지키고 싶고 소중히 하는 욕구는 무엇일까/내가 무서워하는 건 무엇이고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과 배려를 아낌없이 내어 주는 만큼 나에게도 선물할 것이다. 쉬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평생 풀리지 않을 것 같던 고민과 이상한 죄책감이 책을 읽고 절반 이상은 사라진 것 같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점점 나아질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나도, 작가님도, 또다른 누군가도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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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프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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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고통=쾌락"


김사과 작가가 서문_비행기와 택시를 위한 문학에서 위와 같이 제시한 정의는 한 권의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처음엔 그래, 도시는 고통의 공간이고 쾌락으로 가득하지 하며 가볍게 공감할 뿐이었는데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내가 현실을 너무나도 미화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 <02>를 읽고 김사과 작가의 글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주인공들이 어딘가 아주 좁은 공간에 갇혀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단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는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감상인데, 반대로 공간 자체는 아주 넓지만 그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좁아진 곳에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포화된 상태. 그리고 계속해서 포화되는 중. 그게 무엇이든.

이 소설집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다. 과감한 문단 나누기(소설에서 문단 나누는 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영어 단어나 문장 혹은 특수문자의 사용 등이 소설의 배경을 미래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청 빠르고 자극적인 영상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미친듯이 쳇바퀴를 굴리는 한 마리의 쥐처럼.

그렇게 소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남긴다.

도시란 어떤 곳인가. 도시는 지금 어떤 상태인가. 그 도시 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삶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것 진정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인지? 뭔가 추구하고 있긴 한 거야? 사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아니고?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누가? 어떻게? 왜?

답을 말하기도 전에 질문이 쏟아진다. 나는 질문 포화 상태가 되어 답을 생각해낼 수 없고 그저 읽어나간다.

만약 이 소설집이 이야기들이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다면 그건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조금 더 나았으면 해서, 조금 더 인간다운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었으면 해서, 나도 잘 살고 싶어서 이 소설들이 그저 '소설'이기를 바랐다.

한 번쯤 돌아봐야 하는 시기가 있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눈감지 않고 이젠 두 눈을 뜨고 봐야 한다. 김사과 작가가 직면한 이 소설 속 세상들처럼 말이다.


*출판사 서평 이벤트를 통해 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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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최은미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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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미 작가의 글을 읽을 때면 서늘함이 자주 느껴진다. 그 서늘함이 계속해서 서사를 긴장감 있게 유지시키고, 자연스럽게 인물의 깊숙한 내면까지 파고들어가기도 한다.

 '마주'는 우리가 지나온, 2020년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다. 그때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최대한 사람을 피하고 아주 작은 접촉도 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선을 넘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했다. 거절하는 만큼 거절당하는 일상이었다. 인물들은 이러한 시간대에서 너무나 위태롭고 불안하게 지내지만 끝내 서로를 마주한다.

 이 책은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배제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를 배제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도, 배제당한 사람에게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우리는 우리가 만든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존재들을 자꾸만 배제했다. 지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하지만 이제는 배제하기 이전의 삶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더 이상 나의 삶과 너의 삶을 완전히 구분할 순 없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라는 핑계로 배제했던 것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나는 나리와 수미,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에게 아이란 어떤 것일지 계속 생각했다. 나에겐 아이도 없고 아이 같은 존재도 없어서 쉽게 가늠이 안 되었다. 나리와 수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도 처음엔 그 감정에 온전히 이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그녀들의 집착이, 엇나가는 마음이, 왜 시작된 건지 알 것만 같았다. 아이는 나와 다른 존재임을 알지만, 알면서도 죽음을 감수하고 내가 낳은 것에 대한 소유욕과 그 존재를 향한 무한한 사랑은 약속처럼 정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관계라고 말이다. 그 감정을 잘 조절하고 나와 다른 인격체로 분리해서 보는 것 또한 엄마에게 주어진 숙제이지 않을까.

 늘 그랬듯 날카롭고 집요한 묘사로 독자를 휘어잡는 최은미 작가의 다른 글과 앞으로 나올 소설도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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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
델핀 페레 지음, 백수린 옮김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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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동화나 그림책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렸을 땐 얼른 어려운 책(그땐 지금 읽는 한국소설이나 시, 인문학 등이 어른들의 책처럼 보였다)을 읽고 싶었는데 오히려 이젠 아동문학을 내 의지로 찾곤 한다. 아동문학을 직접 쓰고 배우며 내 안에 박혀 있던 가시들이 뽑아져 나가기도 했고 새로운 덩어리가 채워지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란 책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게시글을 봤을 때 바로 신청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백수린 작가님이 번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작가님의 섬세하지만 뚜렷한 시선이 더해져 어떤 작품으로 다가올지 기대됐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의 어느 여름 이야기이다.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풍경, 잠자고 있는 모습, 사탕을 먹어 보려고 하는 주인공, 장화가 작아져 버린 일 등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마치 파노라마 같다. 인화한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며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회상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주인공의 사소한 일상을 보며 자연스럽게 내가 지내왔던 여름들을 떠올렸다. 집 앞에 있던 하우스가 도로 공사로 인해 없어지기 전에 밤이면 그 앞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할머니와 함께 별을 보던 일, 해가 늦게 떨어지는 덕분에 저녁까지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했던 것, 학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록색 뱀을 보았던 일,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배차 시간이 긴 버스를 기다렸던 것. 생각하면 끝도 없이 나오는 소소한 일화들이 어느새 나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엄마, 그거 알아요?

-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어요.

(118p)

마지막에 주인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었다고 말한다. 소란스럽지 않고 느릿느릿하게 흘러갔던 그 여름이 말이다.

나는 여름만 되면 몸이 쉽게 피로해져서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는다. 매년 기온이 올라가는 탓도 있겠지만, 날씨가 더우면 기분이 쉽게 상하기 마련이니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더위는 내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있어서 절대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여름을 마구 가지고 놀며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름이 즐겁기보단 무서워지는 건 환경 문제가 클 테고 그 원인에 나의 부주의함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여름을 예전처럼 마음껏 만끽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방금 언급했듯 환경에 대한 것도 그렇고 나의 일상이 여러 가지로 일로 여유를 잠시 미뤄두면서 전전긍긍하기 바빴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서평단 활동을 통해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되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언젠가 그 여름을 넘는 더 아름다운 여름이 내게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 여름을 만나는 날까지 천천히 걸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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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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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년도 겨울이었을 것이다. 학교 과제로 사회 문제에 대해 찾아보아야 해서 급하게 기사를 둘러보다가 '이동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인 <버스를 타자>를 보면서 20년 전 모습이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목소리 높여 싸우고 있는 그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던 당시의 나는, 왜 이렇게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따금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긴 했지만 크게 시간을 쏟진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탈 때면 계단이 너무 높아서 누군가는 못 탈 것 같단 생각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생각은 점점 커져서 버스뿐만 아니라 건물에 들어섰을 때, 물건을 계산할 때, 식당에 갔을 때, 여행을 갔을 때 등 불쑥불쑥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건 이래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저건 저래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 실감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생각보다 더 많았고, 승강기가 있어도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많았다. 계단도 마찬가지다. 종종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그리고 2023년이 되었다. 나는 올해 상반기에 이동권 시위 기사를 정말 많이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왜인지 모르게 그 상황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사진이나 글을 읽는 게 무서웠다. 직접 찾아보지 않아도 내 SNS를 가득 채웠다. 읽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괴로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이렇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차별의 단면이었다."(27p)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우리 삶 속에는 수많은 계단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 삶 속에는 차별의 단면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알지만 넘어갔던 것. 계단을 이용하는 건 내게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마치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세상 앞에 드러날 수 없는 방치된 '깍두기' 같은 존재인 장애인들은 데모하는 과정을 통해 더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사랑할 기회를 갖게 된다. 중증 장애를 지닌 자신의 몸 그 자체가 장애인 권리 보장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더 아끼는 동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234-235p)


 책 속에도 나오지만, 예를 들자면, 투쟁 같은 단어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대부분 두려움이 깃든 상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내가 기사를 볼 때 괜히 무서워졌던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투쟁을 나의 언어로 해석하고 그들 또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표준어인 거고, 그들의 표준어로 투쟁은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2부 직면의 순간 안에 있는 '표준이 아닌 말들'이라는 챕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단락을 읽고 나선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세상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변재원 작가는 라디오에서 규칙과 법을 어기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중략) 장애인들끼리 정치인을 찾아가서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주세요'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감하는 시민께서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고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정말 딜레마이고 죄송할 따름인데요 … 그럼에도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을 감수해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함께할 수 있다면 같이 싸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를 편하게 이용하는 건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싸워서 영역을 넓혀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해졌다.

 만약 앞으로 어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이유 모를 용기가 피어올랐다. 나처럼 이동권에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가 한 번씩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어렵지 않게 그들의 삶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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