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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시민 불복종
변재원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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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도 겨울이었을 것이다. 학교 과제로 사회 문제에 대해 찾아보아야 해서 급하게 기사를 둘러보다가 '이동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인 <버스를 타자>를 보면서 20년 전 모습이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물론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나 목소리 높여 싸우고 있는 그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를 감상하던 당시의 나는, 왜 이렇게 제자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따금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기사를 검색해 보긴 했지만 크게 시간을 쏟진 않았다. 가끔 버스를 탈 때면 계단이 너무 높아서 누군가는 못 탈 것 같단 생각을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생각은 점점 커져서 버스뿐만 아니라 건물에 들어섰을 때, 물건을 계산할 때, 식당에 갔을 때, 여행을 갔을 때 등 불쑥불쑥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건 이래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저건 저래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겠지.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태 실감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승강기가 없는 건물은 생각보다 더 많았고, 승강기가 있어도 공간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많았다. 계단도 마찬가지다. 종종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그리고 2023년이 되었다. 나는 올해 상반기에 이동권 시위 기사를 정말 많이 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왜인지 모르게 그 상황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사진이나 글을 읽는 게 무서웠다. 직접 찾아보지 않아도 내 SNS를 가득 채웠다. 읽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괴로워졌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다. 나는 이렇게 된 이상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차별의 단면이었다."(27p)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우리 삶 속에는 수많은 계단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우리 삶 속에는 차별의 단면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알지만 넘어갔던 것. 계단을 이용하는 건 내게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마치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세상 앞에 드러날 수 없는 방치된 '깍두기' 같은 존재인 장애인들은 데모하는 과정을 통해 더는 자기 자신을 혐오하지 않고 사랑할 기회를 갖게 된다. 중증 장애를 지닌 자신의 몸 그 자체가 장애인 권리 보장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장애인은 자신의 몸을 더 아끼는 동시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234-235p)
책 속에도 나오지만, 예를 들자면, 투쟁 같은 단어들을 떠올릴 때 우리는 대부분 두려움이 깃든 상황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내가 기사를 볼 때 괜히 무서워졌던 것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투쟁을 나의 언어로 해석하고 그들 또한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표준어인 거고, 그들의 표준어로 투쟁은 내가 느끼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2부 직면의 순간 안에 있는 '표준이 아닌 말들'이라는 챕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단락을 읽고 나선 그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세상에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변재원 작가는 라디오에서 규칙과 법을 어기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중략) 장애인들끼리 정치인을 찾아가서 '엘리베이터, 저상버스 설치해주세요' 얘기하는 것만으로는 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감하는 시민께서 함께 불편함을 호소하고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순간부터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정말 딜레마이고 죄송할 따름인데요 … 그럼에도 시민 여러분이 불편함을 감수해주신 덕분에 한국 사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함께할 수 있다면 같이 싸우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를 편하게 이용하는 건 장애인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싸워서 영역을 넓혀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편해졌다.
만약 앞으로 어떤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이유 모를 용기가 피어올랐다. 나처럼 이동권에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알아봐야 할지 잘 모르겠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가 한 번씩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어렵지 않게 그들의 삶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