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9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심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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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나고 자란 시코쿠 지방의 어느 숲 골짜기 마을의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신화 이야기. 신화, 전설, 민담, 역사 등 ‘이야기’가 가진 모든 특성-장점과 단점을 모두 포함해-을 소설로 담아낸 걸작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마을 신화를 줄곧 들으며 자랐던 화자는 어느 날부터 이야기 듣기를 기피하게 된다. 할머니의 사명감, 이야기를 듣기 전에 제사처럼 외쳐야 하는 문구도 그렇고, 여동생도 있는데 혼자서만 이야기를 듣는다는 부담감, 섬뜩한 sf소설을 본 뒤부터 엄습한 ‘이 이야기가 진짜가 되면 어쩌지’ 하는 공포 때문이다.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얼마 후, 계곡에서 죽을 뻔한 일을 겪은 화자는 거기서 각성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로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임무를 이어받은 마을 노인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청해 듣기 시작한다.

그렇게 주워 들은 이야기와 직접 본 것, 역사 사료나 마을의 유적지를 통해 알게 된 것, 마을의 풍습과 축제 등으로 자연스레 알고 있는 것들을 토대로 화자는 지금, 자식들도 성인이 된 시점에 이르러서야 글로 써나가기 시작한다(그렇게 늦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에 줄곧 관통하는 단어가 바로 M과 T다. 여러 의미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M은 메이트리아크, 여족장, 여가장을 뜻하고 T는 트릭스터, 말썽꾼이자 영웅을 뜻한다. 신화에서부터 전설, 민담, 역사 순으로 마을의 이야기가 흘러가며 M과 T의 형태로 여러 인물(파괴자, 오바, 오시코메, 메이스케, 메이스케의 어머니, 메이스케 동자, 작가의 어머니, 작가의 아들 히카리, 작가 자신)이 등장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뭉클함과 무용담을 듣는 듯한 짜릿함이 느껴지는데, 이는 소설이 입말로 서술되고 있으며, 이야기 전달자(할머니, 마을의 노인과 신관, 어머니 등)의 목소리를 구전의 형태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나에게 이처럼 이야기의 압도를 선사한 또 한 작품, 모옌의 <개구리>도 이와 비슷한 서간체 형식이다).

물론 구전이라는 이야기 방식은 오래된 만큼 낡은 것이기도 해, 한계가 적지 않다. 어느 이야기는 결말이 두 개이기도 하고 어느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모순되며 사실과 다르기도 하다. 이야기가 딴 길로 새거나, 똑같이 되풀이 되기도 하며, 이야기의 앞뒤가 끝내 다 밝혀지지 않을 때도 있다.

화자의 서술방식도 이와 비슷해서, 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한 이야기에 제기한 의문을 나중에 다른 이야기로 답하기도 하는 등, 친절하면서도 여기저기 딴 길로 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소설은 시간대가 복잡하게 나타나더라도 읽고나면 선형적으로 정리되기 마련인데(안 그런 소설도 많고 그걸 의도한 소설도 많지만), 이 소설은 ‘소설’의 특성보단 ‘이야기’의 특성이 강해 서사가 선형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뿌리를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읽다보면 전개상 필요한데(혹은 궁금한데) 빈 부분이 눈에 보이기도 하고 얼개와 인과를 스스로 짜맞춰야 할 때도 생긴다. 누군가에게 듣는 것처럼 편하게 읽히지만,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지? 의문이 드는 순간 앞으로 이동해서 이야기 흐름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그래서 입말과 구전 형식이지만 마냥 쉽게 읽히는 가벼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구전 문학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이 자체가 의도인 듯 느껴지고, 때문에 이걸 소설로 담아낸 게 놀랍기만 하다.(한편, 입말인데도 문장이 어렵기도 했다. 문장 자체가 길고, 주어와 술어가 멀거나 호응이 잘 되지 않기도 하며, 주어가 무엇인지 헷갈릴 때도 적지 않고, 주어 앞의 수식이 많아 문장이 단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기도 한다. 이는 오에 문체의 특징일까?)

구전이라는 특성이 이 소설이 가진 재미의 중심축이라면, 그 축을 기준으로 뻗어가나는 이야기의 ‘신비함’ 혹은 ‘기이함’은 그 재미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을 창건한 자는 자신의 형수(‘오바’)와 도망친 자로, ‘파괴자’라고만 알려져 있고,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복고운동’을 한 여성 ’오시코메‘는 마을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자신을 구덩이에 유폐한 사람이며, 마을 봉기의 선두자였다가 감옥에 갇힌 ’메이스케‘는 면회 온 어머니한테서 “괜찮아, 괜찮아, 죽게 되더라도 내가 곧 다시 낳아줄게!”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밖에도 ‘파괴자’는 아침마다 마을의 중앙에 자란 백양나무의 줄기 하나를 잡고 타잔처럼 날아 착지하는 습관이 있고, 파괴자를 비롯한 마을의 창건자들은 거인화되어 백 년 넘게 살아간다. 마을에 일본제국의 군대가 들어오려 하자 마을 사람들은 ‘파괴자’가 마을을 창건할 때 ‘대암괴’를 폭발시킨 일에서 착안해 강에 댐을 만들어 물을 가뒀다 폭파시켜 군대를 몰살시킨다. 마을에 대대로 전해지는 연극은 항상 어떤 군인이 나무에 목을 매는 모습으로 끝나고, 숲에는 발가벗은 채 파리떼를 몰고 다니는 ’엉덩이눈‘이나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살고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자급자족하던 마을이 메이지 유신 등을 기점으로 국가에 알려지게 되는데(즉 신화에서 역사로 편입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발을 디밀려는 국가 권력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모습도 흥미를 보장한다. 전쟁 여파로 인한 징집과 세금을 우려해 호적에 마을 사람 절반만 이름을 올리고, 마을의 특산물인 목랍을 비밀리의 숲길로 유통해 풍족한 경제를 유지하고, 외국으로부터 불도저와 장난감 총을 수입해 개조해서 활용하는 등 마을의 생활적인 내력도 흥미를 더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신화에서 역사로,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작가 개인의 삶으로 수렴하는 듯하다. 그러나 마지막 파트에서 작가의 어머니와 작가의 아들 히카리, 작가의 아주 어릴 적 경험과 그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숲의 신비’를 통해 이야기가 무한히 확장되며, ‘파괴자’의 신화보다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가, 결국 시간과 죽음까지도 초월한, ‘혼’과 함께 영원히 살아숨쉬는 마을의 정체성으로 마침내 완성된다.

오에 겐자부로는 읽으면 읽을수록 작품세계가 정말이지 확고한데(장애를 가진 아들의 이야기와 마을 신화, 핵 반대 운동 등), 그 안에 여러 갈래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놀라게 된다. 만년에 나온 장편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에서도 이 마을 이야기와 메이스케를 필두로 하는 마을 봉기 이야기도 나온 걸로 기억한다. 거기서는 그 이야기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이것도 혁명 이야기다)와 연결되어 영화화하는 전개로 이어지는데, 여기선 그 마을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고도 재밌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런 게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전에 학교 수업에서 즐겁고 흥미롭게 들었던 신화 관련 이론(이때 ‘트릭스터담’이란 말을 주워 들었다)과 한국의 신화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고, 그때 배운 신화 전설 민담의 갖가기 특성을 이 소설이 전부 다 담고 있어서 정말 경악하면서 읽었다. 특히 ‘파괴자’ 이야기가 너무나 인상적이라 집중해서 읽었다.

지금까지 읽은 오에의 작품 중에 제일이고 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타는 데에-<만엔 원년의 풋볼> 다음으로-한 몫한 작품으로 꼽힌 이유도 알 것 같다. 마르케스처럼 겐자부로도 이야기의 보물을 어른들로부터 물려받았구나 싶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다. ‘이야기’란 것에 갈증이 생기면 다시 들여다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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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오후 2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7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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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초기작 <휘청거리는 오후>. 제목도 제목이지만 우연히 본 결말부의 문장이 박완서 선생님이 이렇게 날카롭기도 하다니, 싶을 정도로 인상 적이어서 무슨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런 작품을 두고 고전, 걸작이라고 말하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감정이 벅차오른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세 딸을 결혼시키며 몰락하는 중산층, 허성 씨 가족의 이야기다.

주요하게 등장하는 세 자매-맞선이 좌절된 뒤 부자에게 시집가고 싶어 중매시장에 자신을 내놓다시피 하는 ‘초희’, 오랜 연인인 민수와 결혼을 꿈꾸다가 일부터 저지르고 본 ‘우희’, 친구의 애인을 뺏어가면서까지 욕망에 휩싸이다 남자의 추악한 실체를 목도한 뒤 결별하고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말희’-는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과 환경의 안정, 행복을 꿈꾸는 여성들이다.

선생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맡게 되었다가 겨우 안정에 달한 허성씨는 양심만은 끔찍이 지키려는 태도를 가지고 결혼에 눈이 먼 듯 속물적으로 행동하는 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에 겨운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어한다(그건 아내인 민 여사도 마찬가지인데, 사업이 잘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그렇게도 남편을 닦달해서 미워질 것 같으면서도, 허성 씨와 마찬가지로 딸들을 끔찍이 위하는 게 느껴져 감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혼 후에야 발톱을 드러내는 현실(특히 남편들의 돌변은 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가 떨린다)은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이루고 싶은 욕망뿐만 아니라 육친애처럼 희구했던 사소한 행복마저 좌절시킨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깊이 깊이. 잎과 줄기 뿐만 아니라 뿌리까지, 심긴 땅까지 전부 병들게 한다. 허성 씨가 딸들에게 내어준 새로운 삶은 모두 무너지고, 결국 허성 씨의 삶도 마치 도미노의 연쇄작용처럼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비극에 가닿기까지 허성 씨의 무력하면서도 친근한, 시대에 뒤쳐진 듯하면서도 그런 혼란 속에서 시대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시선이 제일 좋았지만(물론 그는 1970년대 가장으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던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민 여사, 세 딸, 공 회장, 민우, 정훈, 문경하, 오지경 씨, 문기범 씨, 윤 영감, 중매쟁이, 차 씨, 김상기-의 시선도 모두 그 인물의 성격을 생생히 드러내고도 남아 좋았다. 모두에게 공감이 가면서도 모두에게 징그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이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설은 모든 인물의 선의와 욕망을 전부 보여주고 있다. 옷을 전부 갖춰입고 화장까지 했는데도 오장육부까지 들여다보고 말하는 듯한, 소설 속 중매쟁이의 시선으로 쓰인 소설 같다.

인물들은 자신의 무형의 욕망을 결혼 풍습에 의탁한다. 공고히 이어져 온 제도가 욕망을 실현시켜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는 한쪽이 마음만 먹으면 과감히 그 약속을 져버리거나 상대를 속일 수도 있는, 허위적이고 기만적인 장난이 되기 쉽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욕망을 제도에 걸맞게 변형시켜 귀에 귀걸이 코에 코걸이 하듯이 걸게 되는 순간, 욕망은 그 제도의 허위에 어쩔 수 없이 전염된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제도의 허위가 낱낱이 밝혀지더라도, 제도에 동의한 인간은, 제도가 만들어준 욕망의 가면을 쓴 인간은 그 허위에서 벗어날 새 없이 물들게 된다. 그래서 그토록 양심의 편에 서서 딸들을 지지하려던 허성 씨도 결국엔 ‘감쪽같이’란 말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이리라.

아무리 남녀평등 사회라고 말들은 하지만, 결혼 풍습의 약자는 여성이며, 여성의 가족들이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속는 것도 그들이고 결국 받아들이는 것도 그들이라고. 소설은 결혼 제도가 가진 추악한 허위, 여성을 위한다는 감언이설을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결혼을 만들어낸 사회 자체가 감언이설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감언이설 그 자체를 까발린다고 할 수 있다.

문장들이 복잡하진 않지만 한껏 벼려 있어서, 이야기 흐름에 익숙해지면서 자연히 방심할 때마다, 인물들이 행복에 가까워지려는 때마다 허를 찌르는데, 그 때문에 얼마나 탄식하며 읽었는지 모르겠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욕망이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서 갖은 사람들과 얽히며 벌어지는 사건들은 때론 그런 욕망도 부정한다. 부정과 부정, 욕망과 욕망의 파도에 휩쓸리다 허덕이다 도착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삶의 현재가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을 휩쓸리게 하는 부조리들, 물질적인 욕망과 권력, 위계 등을 문제시하는 동시에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말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날카롭게 경고하는 소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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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엉겅퀴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8
라이너 쿤체 지음, 전영애.박세인 옮김 / 봄날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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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인 쿤체의 시선집. 해외 시집은 처음인데, 건강한 식사를 한 것처럼 몸이 가볍고 상쾌하다. 사회비판적인 시, 놀라운 통찰을 담은 시, 자연적인 시, 사랑을 담은 시, 시에 관한 시까지 전부 모여 있어서 시 입문자가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예전에 쓴 시부터 최근에 쓴 시까지 실려 있어서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또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05년 한국에 일주일 간 방문하고 쓴 시도 모여 있는데 분명 외국인의 시선으로 쓰인 시인데도 한국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모든 시에 지혜가 깃들어 있어서 잠언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절반 실린 독일어 원문을 읽지 못한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독일에 간다면 들고 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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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녹는 Entanglement 얽힘 1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 다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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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람출판사가 시작한 세 작가의 ‘얽힘’ 시리즈 첫 번째. 키워드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던 앤솔로지와 다르게 키워드 뿐더러 장소도 같이 얽혀 있었다.

이번 키워드는 ‘손절’이다. 세 소설 속 인물들은 관계의 단절을 생각하고 이행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에 얽혀든다. 결국 누군가는 끝을 보고 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관계에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 소설마다 매력이 있었는데, 성혜령 작가의 <나방파리>의 경우 화자가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거에 공감이 갔고, 화자와 비슷한 듯 다른 종희의 전사, 화자의 죄책감에 골몰하면서 읽었다. 종희가 죽은 아들인 시온과 대화하고자 영매들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했다. 거기서 밝혀지는 비밀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긴장감 있고도 애처롭게 만들어서 새로웠다.

<언 강 위의 우리들>은 인물들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었다. 화자의 예술가적 기질과 두 인물의 앙칼지고 털털한 대화들이 매력적이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화자가 생각한 것들도 매력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들과 오래된 친구임이 느껴지는 뻔뻔스러움에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손절과 이별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전하영 작가의 <시간여행자>였다. 젊은작가상 대상작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으면서도 감탄했던 건, 긴 분량을 아우르는 시간성이었다. 툭툭 끊어진 듯하면서도 다 들여다보면 커다란 시간 속에 원형처럼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는데 이번 작품도 그랬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꾸만 벌어진다는 체감에 이르러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시선이 좋았다. 아파하는 것보다 사랑하며 사는 게 그들도 바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뒤에는 해설이 아니라 세 작가가 서로 작품을 가지고 질의응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세 작가가 쓰면서 무엇을 고민했고 자신의 무엇을 투영했으며 서로 어떤 지점을 공감하면서 이 시리즈를 공동 작업 해갔는지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밥 떠 먹여주는 듯한 해설보다(물론 어떤 작품은 해설이 꼭 필요하겠지만) 이런 방식의 뒷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청난 기대를 갖고서 신청한 서평단은 아니지만 각자의 소설이 전부 좋았고 이것이 얽혀드는 과정에서 ‘관계’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좋은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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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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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모르는 것도 흥미를 갖게 하지만, 아는 거는 더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0세기와 21세기의 남성적인 영웅상을 문화적 측면으로 훑어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집요한 비평문 <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에서 모르는 부분은 80%, 아는 부분은 20%였던 것 같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모험을 하는 것 같은 비평적 전개며 비평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들-어둠, 멜랑콜리, 허무-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읽을 때는 악마적인 글을 읽는 것 같아서 누가 훔쳐 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다 읽고 나니까 여태 혼자 캄캄한 어둠을 지나왔다는 고독한 기분이 든다.

이 글에서는 영웅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영웅은 사람들을 구하고 칭송받는 영웅이라기보다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 때론 예언자 같은 사람, 시대가 요구하는 전진, 변화의 선두에 서서 고뇌하는 사람 같아서, 폭풍이 몰아치는 배의 갑판에 홀로 선 선장이나 신 앞의 단독자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20세기에서 그들은 폭풍에 휘말리며 나름의 항해를 계속했다면 21세기에서 그들은 목적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목적지에 이르러서 지나가버린 황금 같은 시간과 앞으로 지내야할 막다른 벽 같은 시간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린 뭘 더 할 수 있을까?

20세기에서는 필름누아르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비틀거나 활용한 영화 거장들이 등장하고, 팝음악의 역사를 훑는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90년대 감독들의 이야기다. 쿠엔틴 타란티노나 웨스 앤더슨,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감독은 지금도 활동을 하는 감독이니만큼, 그들의 결과물들이 시대적 풍토를 어떻게 비틀고 대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21세기에서는 힙합을 오션, 드레이크의 측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힙합 음악에 전혀 흥미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유아인, 하정우의 분석에서는 그들의 비쥬얼적인 측면과 연기적 측면을 엮어서 다루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검정치마에 대해서는 여성혐오적인 입장의 비판을, 노래들이 그러한 가면-가학과 피학의 가면-을 씀으로서 남성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는 드레이크에 대한 분석과도 일정 부분 유사해 보인다. 그러한 특징은 그들의 자아라기보다는 그들이 쓰려는 가면, 이미지로 변환되고 그들은 그렇게 왜소해지고 점점 사물이 되어간다. 어떨 땐 괴물이 되어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지만은.

21세기 부분에서 당연 흥미로웠던 건 정지돈에 관한 비판이다(내가 아는 20%가 여기였다). 정지돈의 잘못은 오토픽션적 글쓰기 때문이 아닌, 현실의 모든 걸 소설로 활용하려던 방식 때문인 듯하다. 그는 정지돈이 도망가는 글쓰기를 해왔다고 말하며, 현실보다 글을 우선하는 이야기들을 써나갔다고 말한다. 정지돈의 글에서 인물들의 삶은 아카이빙을 위해 도구적으로 다뤄질 뿐이며 서사에 드라마가 아닌 여담만이 담겨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서사를 거부하는 글쓰기라고. 내가 예전에 정지돈의 글에서 매력적이고 새롭다고 생각했던 부분들, 그러나 뭐라 설명하기 어렵던 부분들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서 인상적이었다. 정지돈의 서술 방식이 여러모로 제발트와 동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제발트를 읽으려다 실패한 나로서도 둘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발트는 현재 인정받고 있고 정지돈은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면, 그건 왜 그런 건지도 궁금했다. 또한 정지돈이 이 책의 뒤에 등장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 같은 관객 착취적인 영화, ‘닭지방’ 같은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더불어 정지돈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그가 어떻게 타개해갈 수 있는지를 다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을 정지돈과 같은 후장사실주의자이지만 다른 길을 간 박대겸, 현실로 돌아오는 글쓰기, 공포를 대면하는 글쓰기를 하는 박대겸의 소설로만 약소하게 다룬 것 같았다.

이 책으로 음악에 관한 비평을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이런 식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글을 적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줘서 좋았다. 특히 좋았던 건 현대의 문화 양식이 과거의 어떤 기점, 사건들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인지 흐름을 짚어준 부분들이다. 문화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흐름을 타고 생겨났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양식에 들어있는 이야기 자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이야기는 자고로 어떤 형태여야 하는 건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좋은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총체적인 시대에 관해 다루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원되어야 할텐데, 이 책이 남성성과 영웅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주제적으로 도드라지긴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비평을 보고 싶다. 그래서인가 이 작가가 쓴 다른 글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쓸 글들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부분부분 모두 재밌게 읽었지만 워낙 낯설고 많은 고유명사들이 등장해서인지 머리에 완전히 들어온 기분은 아니다. 천천히 다시 읽으며 흐름에 대해서 정리해야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평단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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