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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평점 :
비평은 모르는 것도 흥미를 갖게 하지만, 아는 거는 더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0세기와 21세기의 남성적인 영웅상을 문화적 측면으로 훑어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집요한 비평문 <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에서 모르는 부분은 80%, 아는 부분은 20%였던 것 같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모험을 하는 것 같은 비평적 전개며 비평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들-어둠, 멜랑콜리, 허무-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읽을 때는 악마적인 글을 읽는 것 같아서 누가 훔쳐 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다 읽고 나니까 여태 혼자 캄캄한 어둠을 지나왔다는 고독한 기분이 든다.
이 글에서는 영웅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영웅은 사람들을 구하고 칭송받는 영웅이라기보다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 때론 예언자 같은 사람, 시대가 요구하는 전진, 변화의 선두에 서서 고뇌하는 사람 같아서, 폭풍이 몰아치는 배의 갑판에 홀로 선 선장이나 신 앞의 단독자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20세기에서 그들은 폭풍에 휘말리며 나름의 항해를 계속했다면 21세기에서 그들은 목적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목적지에 이르러서 지나가버린 황금 같은 시간과 앞으로 지내야할 막다른 벽 같은 시간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린 뭘 더 할 수 있을까?
20세기에서는 필름누아르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비틀거나 활용한 영화 거장들이 등장하고, 팝음악의 역사를 훑는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90년대 감독들의 이야기다. 쿠엔틴 타란티노나 웨스 앤더슨,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감독은 지금도 활동을 하는 감독이니만큼, 그들의 결과물들이 시대적 풍토를 어떻게 비틀고 대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21세기에서는 힙합을 오션, 드레이크의 측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힙합 음악에 전혀 흥미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유아인, 하정우의 분석에서는 그들의 비쥬얼적인 측면과 연기적 측면을 엮어서 다루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검정치마에 대해서는 여성혐오적인 입장의 비판을, 노래들이 그러한 가면-가학과 피학의 가면-을 씀으로서 남성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는 드레이크에 대한 분석과도 일정 부분 유사해 보인다. 그러한 특징은 그들의 자아라기보다는 그들이 쓰려는 가면, 이미지로 변환되고 그들은 그렇게 왜소해지고 점점 사물이 되어간다. 어떨 땐 괴물이 되어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지만은.
21세기 부분에서 당연 흥미로웠던 건 정지돈에 관한 비판이다(내가 아는 20%가 여기였다). 정지돈의 잘못은 오토픽션적 글쓰기 때문이 아닌, 현실의 모든 걸 소설로 활용하려던 방식 때문인 듯하다. 그는 정지돈이 도망가는 글쓰기를 해왔다고 말하며, 현실보다 글을 우선하는 이야기들을 써나갔다고 말한다. 정지돈의 글에서 인물들의 삶은 아카이빙을 위해 도구적으로 다뤄질 뿐이며 서사에 드라마가 아닌 여담만이 담겨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서사를 거부하는 글쓰기라고. 내가 예전에 정지돈의 글에서 매력적이고 새롭다고 생각했던 부분들, 그러나 뭐라 설명하기 어렵던 부분들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서 인상적이었다. 정지돈의 서술 방식이 여러모로 제발트와 동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제발트를 읽으려다 실패한 나로서도 둘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발트는 현재 인정받고 있고 정지돈은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면, 그건 왜 그런 건지도 궁금했다. 또한 정지돈이 이 책의 뒤에 등장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 같은 관객 착취적인 영화, ‘닭지방’ 같은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더불어 정지돈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그가 어떻게 타개해갈 수 있는지를 다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을 정지돈과 같은 후장사실주의자이지만 다른 길을 간 박대겸, 현실로 돌아오는 글쓰기, 공포를 대면하는 글쓰기를 하는 박대겸의 소설로만 약소하게 다룬 것 같았다.
이 책으로 음악에 관한 비평을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이런 식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글을 적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줘서 좋았다. 특히 좋았던 건 현대의 문화 양식이 과거의 어떤 기점, 사건들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인지 흐름을 짚어준 부분들이다. 문화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흐름을 타고 생겨났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양식에 들어있는 이야기 자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이야기는 자고로 어떤 형태여야 하는 건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좋은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총체적인 시대에 관해 다루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원되어야 할텐데, 이 책이 남성성과 영웅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주제적으로 도드라지긴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비평을 보고 싶다. 그래서인가 이 작가가 쓴 다른 글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쓸 글들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부분부분 모두 재밌게 읽었지만 워낙 낯설고 많은 고유명사들이 등장해서인지 머리에 완전히 들어온 기분은 아니다. 천천히 다시 읽으며 흐름에 대해서 정리해야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평단 제공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