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거리는 오후 2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7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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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초기작 <휘청거리는 오후>. 제목도 제목이지만 우연히 본 결말부의 문장이 박완서 선생님이 이렇게 날카롭기도 하다니, 싶을 정도로 인상 적이어서 무슨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런 작품을 두고 고전, 걸작이라고 말하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감정이 벅차오른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세 딸을 결혼시키며 몰락하는 중산층, 허성 씨 가족의 이야기다.

주요하게 등장하는 세 자매-맞선이 좌절된 뒤 부자에게 시집가고 싶어 중매시장에 자신을 내놓다시피 하는 ‘초희’, 오랜 연인인 민수와 결혼을 꿈꾸다가 일부터 저지르고 본 ‘우희’, 친구의 애인을 뺏어가면서까지 욕망에 휩싸이다 남자의 추악한 실체를 목도한 뒤 결별하고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말희’-는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과 환경의 안정, 행복을 꿈꾸는 여성들이다.

선생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맡게 되었다가 겨우 안정에 달한 허성씨는 양심만은 끔찍이 지키려는 태도를 가지고 결혼에 눈이 먼 듯 속물적으로 행동하는 딸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랑에 겨운 나머지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어한다(그건 아내인 민 여사도 마찬가지인데, 사업이 잘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돈이 필요하다고 그렇게도 남편을 닦달해서 미워질 것 같으면서도, 허성 씨와 마찬가지로 딸들을 끔찍이 위하는 게 느껴져 감히 미워할 수가 없다).

그러나 결혼 후에야 발톱을 드러내는 현실(특히 남편들의 돌변은 사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치가 떨린다)은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이루고 싶은 욕망뿐만 아니라 육친애처럼 희구했던 사소한 행복마저 좌절시킨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깊이 깊이. 잎과 줄기 뿐만 아니라 뿌리까지, 심긴 땅까지 전부 병들게 한다. 허성 씨가 딸들에게 내어준 새로운 삶은 모두 무너지고, 결국 허성 씨의 삶도 마치 도미노의 연쇄작용처럼 무너지고 만다.

이러한 비극에 가닿기까지 허성 씨의 무력하면서도 친근한, 시대에 뒤쳐진 듯하면서도 그런 혼란 속에서 시대를 날카롭게 진단하는 시선이 제일 좋았지만(물론 그는 1970년대 가장으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하기도 했던 가부장적인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민 여사, 세 딸, 공 회장, 민우, 정훈, 문경하, 오지경 씨, 문기범 씨, 윤 영감, 중매쟁이, 차 씨, 김상기-의 시선도 모두 그 인물의 성격을 생생히 드러내고도 남아 좋았다. 모두에게 공감이 가면서도 모두에게 징그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인간이란 바로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설은 모든 인물의 선의와 욕망을 전부 보여주고 있다. 옷을 전부 갖춰입고 화장까지 했는데도 오장육부까지 들여다보고 말하는 듯한, 소설 속 중매쟁이의 시선으로 쓰인 소설 같다.

인물들은 자신의 무형의 욕망을 결혼 풍습에 의탁한다. 공고히 이어져 온 제도가 욕망을 실현시켜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는 한쪽이 마음만 먹으면 과감히 그 약속을 져버리거나 상대를 속일 수도 있는, 허위적이고 기만적인 장난이 되기 쉽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욕망을 제도에 걸맞게 변형시켜 귀에 귀걸이 코에 코걸이 하듯이 걸게 되는 순간, 욕망은 그 제도의 허위에 어쩔 수 없이 전염된다. 그래서 어떤 계기로 제도의 허위가 낱낱이 밝혀지더라도, 제도에 동의한 인간은, 제도가 만들어준 욕망의 가면을 쓴 인간은 그 허위에서 벗어날 새 없이 물들게 된다. 그래서 그토록 양심의 편에 서서 딸들을 지지하려던 허성 씨도 결국엔 ‘감쪽같이’란 말에 자신을 내맡기게 된 것이리라.

아무리 남녀평등 사회라고 말들은 하지만, 결혼 풍습의 약자는 여성이며, 여성의 가족들이라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속는 것도 그들이고 결국 받아들이는 것도 그들이라고. 소설은 결혼 제도가 가진 추악한 허위, 여성을 위한다는 감언이설을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결혼을 만들어낸 사회 자체가 감언이설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그 거대한 감언이설 그 자체를 까발린다고 할 수 있다.

문장들이 복잡하진 않지만 한껏 벼려 있어서, 이야기 흐름에 익숙해지면서 자연히 방심할 때마다, 인물들이 행복에 가까워지려는 때마다 허를 찌르는데, 그 때문에 얼마나 탄식하며 읽었는지 모르겠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욕망이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본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서 갖은 사람들과 얽히며 벌어지는 사건들은 때론 그런 욕망도 부정한다. 부정과 부정, 욕망과 욕망의 파도에 휩쓸리다 허덕이다 도착하는 곳, 그곳이 바로 삶의 현재가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을 휩쓸리게 하는 부조리들, 물질적인 욕망과 권력, 위계 등을 문제시하는 동시에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말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아갈 줄 알아야 한다고 날카롭게 경고하는 소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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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엉겅퀴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8
라이너 쿤체 지음, 전영애.박세인 옮김 / 봄날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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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인 쿤체의 시선집. 해외 시집은 처음인데, 건강한 식사를 한 것처럼 몸이 가볍고 상쾌하다. 사회비판적인 시, 놀라운 통찰을 담은 시, 자연적인 시, 사랑을 담은 시, 시에 관한 시까지 전부 모여 있어서 시 입문자가 읽기에도 좋을 것 같다. 아주 예전에 쓴 시부터 최근에 쓴 시까지 실려 있어서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또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2005년 한국에 일주일 간 방문하고 쓴 시도 모여 있는데 분명 외국인의 시선으로 쓰인 시인데도 한국인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 모든 시에 지혜가 깃들어 있어서 잠언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절반 실린 독일어 원문을 읽지 못한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독일에 간다면 들고 갈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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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녹는 Entanglement 얽힘 1
성혜령.이서수.전하영 지음 / 다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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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람출판사가 시작한 세 작가의 ‘얽힘’ 시리즈 첫 번째. 키워드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하던 앤솔로지와 다르게 키워드 뿐더러 장소도 같이 얽혀 있었다.

이번 키워드는 ‘손절’이다. 세 소설 속 인물들은 관계의 단절을 생각하고 이행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 관계에 얽혀든다. 결국 누군가는 끝을 보고 헤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 관계에 새로운 의미를 찾기도 하며 누군가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세 소설마다 매력이 있었는데, 성혜령 작가의 <나방파리>의 경우 화자가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거에 공감이 갔고, 화자와 비슷한 듯 다른 종희의 전사, 화자의 죄책감에 골몰하면서 읽었다. 종희가 죽은 아들인 시온과 대화하고자 영매들을 찾으러 다니는 장면은 왠지 모르게 슬프기도 했다. 거기서 밝혀지는 비밀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를 긴장감 있고도 애처롭게 만들어서 새로웠다.

<언 강 위의 우리들>은 인물들이 빛을 발하는 소설이었다. 화자의 예술가적 기질과 두 인물의 앙칼지고 털털한 대화들이 매력적이었고, 그들을 바라보며 화자가 생각한 것들도 매력적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전들과 오래된 친구임이 느껴지는 뻔뻔스러움에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손절과 이별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전하영 작가의 <시간여행자>였다. 젊은작가상 대상작인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를 읽으면서도 감탄했던 건, 긴 분량을 아우르는 시간성이었다. 툭툭 끊어진 듯하면서도 다 들여다보면 커다란 시간 속에 원형처럼 이야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느꼈는데 이번 작품도 그랬다. 누군가의 죽음이 자꾸만 벌어진다는 체감에 이르러서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려는 시선이 좋았다. 아파하는 것보다 사랑하며 사는 게 그들도 바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뒤에는 해설이 아니라 세 작가가 서로 작품을 가지고 질의응답한 내용이 적혀 있다. 세 작가가 쓰면서 무엇을 고민했고 자신의 무엇을 투영했으며 서로 어떤 지점을 공감하면서 이 시리즈를 공동 작업 해갔는지를 알 수 있어서 유익했다. 밥 떠 먹여주는 듯한 해설보다(물론 어떤 작품은 해설이 꼭 필요하겠지만) 이런 방식의 뒷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더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청난 기대를 갖고서 신청한 서평단은 아니지만 각자의 소설이 전부 좋았고 이것이 얽혀드는 과정에서 ‘관계’에 대해 다양한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좋은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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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 - 세기전환기의 멜랑콜리
강덕구 지음 / 을유문화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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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모르는 것도 흥미를 갖게 하지만, 아는 거는 더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20세기와 21세기의 남성적인 영웅상을 문화적 측면으로 훑어가는 이 비관적이면서도 집요한 비평문 <한 움큼의 외로운 영혼들>에서 모르는 부분은 80%, 아는 부분은 20%였던 것 같다.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지만, 모험을 하는 것 같은 비평적 전개며 비평에서 다뤄지는 작품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키워드들-어둠, 멜랑콜리, 허무-과도 연결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읽을 때는 악마적인 글을 읽는 것 같아서 누가 훔쳐 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다 읽고 나니까 여태 혼자 캄캄한 어둠을 지나왔다는 고독한 기분이 든다.

이 글에서는 영웅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 영웅은 사람들을 구하고 칭송받는 영웅이라기보다 시대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 때론 예언자 같은 사람, 시대가 요구하는 전진, 변화의 선두에 서서 고뇌하는 사람 같아서, 폭풍이 몰아치는 배의 갑판에 홀로 선 선장이나 신 앞의 단독자 같은 이미지로 보인다. 20세기에서 그들은 폭풍에 휘말리며 나름의 항해를 계속했다면 21세기에서 그들은 목적지,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목적지에 이르러서 지나가버린 황금 같은 시간과 앞으로 지내야할 막다른 벽 같은 시간 사이에서 고뇌한다. 우린 뭘 더 할 수 있을까?

20세기에서는 필름누아르와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비틀거나 활용한 영화 거장들이 등장하고, 팝음악의 역사를 훑는다.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건 90년대 감독들의 이야기다. 쿠엔틴 타란티노나 웨스 앤더슨, 폴 토머스 앤더슨 같은 감독은 지금도 활동을 하는 감독이니만큼, 그들의 결과물들이 시대적 풍토를 어떻게 비틀고 대항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21세기에서는 힙합을 오션, 드레이크의 측면에서 볼 수 있었는데 힙합 음악에 전혀 흥미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유아인, 하정우의 분석에서는 그들의 비쥬얼적인 측면과 연기적 측면을 엮어서 다루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검정치마에 대해서는 여성혐오적인 입장의 비판을, 노래들이 그러한 가면-가학과 피학의 가면-을 씀으로서 남성들을 비판하고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데, 이는 드레이크에 대한 분석과도 일정 부분 유사해 보인다. 그러한 특징은 그들의 자아라기보다는 그들이 쓰려는 가면, 이미지로 변환되고 그들은 그렇게 왜소해지고 점점 사물이 되어간다. 어떨 땐 괴물이 되어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지만은.

21세기 부분에서 당연 흥미로웠던 건 정지돈에 관한 비판이다(내가 아는 20%가 여기였다). 정지돈의 잘못은 오토픽션적 글쓰기 때문이 아닌, 현실의 모든 걸 소설로 활용하려던 방식 때문인 듯하다. 그는 정지돈이 도망가는 글쓰기를 해왔다고 말하며, 현실보다 글을 우선하는 이야기들을 써나갔다고 말한다. 정지돈의 글에서 인물들의 삶은 아카이빙을 위해 도구적으로 다뤄질 뿐이며 서사에 드라마가 아닌 여담만이 담겨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서사를 거부하는 글쓰기라고. 내가 예전에 정지돈의 글에서 매력적이고 새롭다고 생각했던 부분들, 그러나 뭐라 설명하기 어렵던 부분들을 비판적으로 다루어서 인상적이었다. 정지돈의 서술 방식이 여러모로 제발트와 동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제발트를 읽으려다 실패한 나로서도 둘의 방식이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제발트는 현재 인정받고 있고 정지돈은 인정받고 있지 못한다면, 그건 왜 그런 건지도 궁금했다. 또한 정지돈이 이 책의 뒤에 등장하는 아리 애스터 감독 같은 관객 착취적인 영화, ‘닭지방’ 같은 영화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도 궁금했다. 더불어 정지돈의 서술 방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그가 어떻게 타개해갈 수 있는지를 다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것을 정지돈과 같은 후장사실주의자이지만 다른 길을 간 박대겸, 현실로 돌아오는 글쓰기, 공포를 대면하는 글쓰기를 하는 박대겸의 소설로만 약소하게 다룬 것 같았다.

이 책으로 음악에 관한 비평을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이런 식으로 음악을 이해하고 글을 적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줘서 좋았다. 특히 좋았던 건 현대의 문화 양식이 과거의 어떤 기점, 사건들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인지 흐름을 짚어준 부분들이다. 문화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과 흐름을 타고 생겨났다는 걸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양식에 들어있는 이야기 자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이야기는 자고로 어떤 형태여야 하는 건지,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 건지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좋은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총체적인 시대에 관해 다루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동원되어야 할텐데, 이 책이 남성성과 영웅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더 주제적으로 도드라지긴 하지만 나는 더 많은 다양한 분야와 주제의 비평을 보고 싶다. 그래서인가 이 작가가 쓴 다른 글들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앞으로 쓸 글들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부분부분 모두 재밌게 읽었지만 워낙 낯설고 많은 고유명사들이 등장해서인지 머리에 완전히 들어온 기분은 아니다. 천천히 다시 읽으며 흐름에 대해서 정리해야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평단 제공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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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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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서포터즈 제공 도서)

단편집 <밤은 내가 가질게>에서 느꼈던 마력,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지금의 사건이 겹쳐지면서 문제의식이 거대하게 불어나는 마력이 중편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에서는 태풍처럼 휘몰아친다. 소설의 1장부터 마지막 9장까지 손을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어린 시절 언니 전수미의 악행에 고통 받았던 동생 전수영은 악착같이 돈을 벌어 전수미로부터 독립한다. 이제 좀 살만해지는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사회가 전수영에게 갖은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전수미만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전수영을 마치 달력의 뒷면처럼 만들려고 한다.

전수미는 어린 시절 돌연 나타난 부조리의 끔찍한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수미는 타인들 위에 군림한 채 시시덕거리다가 우연히 목격한 타인들의 비밀로 타인들을 억누른다. 전수미가 과격하고 돌발적이라면, 사회는 쾌적하고 교묘하다. 거대한 구조로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그건 모두가 합의한 사항이라고 적힌 계약서를 들이민다. 합의라는 말 속에 많은 것들이 묵인된다. 목격은 방관이 되고, 돈은 방법이 된다. 그렇게 개인을 억누른다.

이 소설에서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은 ‘돌봄‘을 관통하고 있다.

부모는 전수미가 저지른 짓들을 수습하느라 바빴기에, 전수영은 마니또 같은 놀이로만 잠시 돌봐질 뿐이었다. 밖에서 전수미로 오해받아 전수미가 한 것보다 더한 폭력을 당한 전수영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가상의 더듬이를 만들고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그 아이는 방어적으로 자기를 돌보며 성장한다.

속은 예민하지만 겉은 방어적인 성격의 어른이 된 전수영은 반려동물돌봄센터에서 일하며 노견들, 아픈 개들을 돌보게 된다. 전수영은 그만의 예리한 촉으로 반려동물돌봄센터의 목적이 ‘돌봄’이 아니라 깔끔하고 알맞은 죽음, 이별이라는 걸 알아챈다. 센터의 구 원장은 죽음의 끔찍한 외면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업화한 것이다. 이를 알릴 방법을 궁리하던 전수영은 그 또한 죽음의 방관자라는 그물에 걸려버리고, 살려주는 대가로 묵인을 강요당한다. 자신이 서명한 계약서의 모르고 있던 뒷면이 드러난 것만 같은 순간이다.

반대로 어린시절 전수미는 돌봄의 독식자, 수혜자였다. 가족 모두가 쩔쩔 매며 그를 돌봤다. 그렇게 어른이 된 전수미는 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본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노인들의 죽음을 방관한 일로 살인 용의자가 된다. 증거는 불충분하다. 그러나 전수미가 살아온 이력은 살인자가 되기에 알맞은 자기소개서 같다. 누구라도 그걸 알게 되면 (전수미와 부모와 변호사를 제외하면) 모두 전수미가 그 노인들을 죽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릴 땐 누군가로부터 돌봄을 받다가 어른이 되면 누군가를 돌보게 되는 이 과정 자체가 삶이다. 그 점에서 보면 전수미와 전수영의 돌봄의 삶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그러나 용의자 선상에 오른 이 일은 전수미만의 일이 아니다. 전수영 또한 개들의 부자연스러운 죽음을 계속 방관하면 어느새 그렇게 혼자서만 용의자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또한 결국 전수미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전수영은 ‘전수미 되지 않기’를 택한다. 전수미와 달리 방관한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고 전수미와 달리 비밀 같은 걸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동료 직원 소란의 도와 전수영은 결국 센터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센터의 몇몇 개들은 버려지고 누군가는 직장을 잃게 된다. 전수영은 그걸 알고 있다. 진실하기 위해 견고한 거짓을 무너뜨린 자신이 한편으론 이기적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거짓은 영원했을 것이다. 영원은 구조를 갖춰 절대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속에서 또다른 전수영은 또다른 전수미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전수영은 자신이 낳은 그 모든 이기심을 돌봐야한다.

전수영은 전수미가 있어서, 전수미의 존재를 알고 전수미 되지 않기를 선택해서,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로부터 진실될 수 있었다. 아프더라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속이지 않을 수 있었다.

암담한 이야기라서 읽으면서 세상에 대한 신뢰가 전부 벗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신뢰가 벗겨져서야 알게 되었다. 신뢰란 사실과 다르다고. 신뢰는 언제나 안온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적나라하다고. 그 때문에 대부분 신뢰에 기댄다고. 그러나 신뢰가 아니라 사실 속에 언제나 내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보지 않으려고 세상을 무턱대고 신뢰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로 꽤 아팠기에 이제 어쩌면 내가 나를 쳐다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수미 같은 내가 아니라 전수영 같은 내가 되려면, 달력의 숫자가 아니라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모든 뒷면을 뒤집어 앞면이 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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