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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채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평점 :
1.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김채원
사촌 혜임과 나가 할아버지의 집으로 향한다. 세 달 째 연락이 되지 않는 할아버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러. 다행히 할아버지는 살아 있었고, 그것도 잘 살아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종묘원이라는 온실을 가꾸느라 그런 듯 보인다. 그런데 그 온실에서 마주한 건… 다름 아닌 죽은 누군가의 발이다.
마치 방학을 맞아 정겨운 시골로 떠난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중반까지는). 중반에 이르러 죽음이 급작스레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소설이 무거워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작가가 무거워지지 않게 소설을 떠받치고 있구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목격한 죽음과 할아버지가 그 시신을 발견된 거기에 묻어주려 했던 이유가 묘하게 얽히는 한편, 나와 혜임의 관계(한 명이 말하면 한 명이 맞장구 쳐주는, 한 명이 눈을 뜨면 한 명이 눈을 감는)와 나의 태평하면서도 다정한 상상력(식물과 빛과 그림자의 살아있음)이 곁들여져서 별과 모과와 땅(죽음)이라는 자연의 순환(이해할 순 없지만 들여다보게 되는)을 보여준다. 짧아서 아쉽지만(혜임과 나의 관계성을 더 반복적으로 파고들었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 이야기를 비틀어서 보려는 풍경이 자못 사랑스러운 소설이다. 소설 읽으면서 내가 쉬고 있다는 느낌을 간만에 받았다.
2. 추도 / 길란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 수습하는 방식, 그 죽음과 다른 사람의 죽음이 자본의 지표에 의해 무게가 갈린다는 것, 그리하여 어떤 죽음은 계속해서 사랑받고 어떤 죽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면받는다는 것 등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얄팍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저기 배치한 많은 소재들이 얽히면서 풀어낼 수 있는 모순과 갈등의 부피(사건)가 충분한데도, 브레이크를 밟아 추도하는 장면으로-죽음은 형언할 수 없다는 의미를-찍어누르듯 마무리해서 아쉬웠다. 백모가 와인 한 잔을 하고 아들 이삭이 죽은 그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장면의 긴장감이 상당했는데, 그러곤 아예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버려서 편집된 건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백모의 영상을 찍어주게 된 전모가 이 소설의 핵심이자 전부인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사연이 조금 복잡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파악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백모의 집이 주 공간인데 잠깐 들른 장소처럼 다뤄진 느낌도 있었고 인물도 내면을 포착할 수 없었다(변화를 보여주는 소설이 아니라 재확인을 보여주는 소설이라서). 그럼에도 현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다른 단편들도 더 읽어봐야 할 듯하다.
3. 나는 야구를 사랑해 / 남의현
제목이 나에겐 진입장벽이었으나(야구에 미친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있으나 나는 야구-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이야기가 나를 허물어 뜨렸다. 스타일적인 측면에서 ‘젊은’이라는 호칭에 가장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숙모네 집에서 자라는 ‘’나의 이야기는 숙모의 아들과 나의 단짝인 민희와 민희가 좋아하는 야구와 얽히면서 사랑과 돌봄, 사랑의 이면인 폭력과 사랑으로 건강해야 할 삶(과 성장)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예소연 작가의 <사랑과 결함>이 떠오르면서, 단편임에도 부피가 상당하다고 느껴졌다. 가장 독특한 점은 소설에서 시의 리듬감이 있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인 연결을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직관적으로 이어지는 문장과 이미지들을(새와 눈과 캐치볼과 촛불) 보며 이 작가는 자기만의 세계가 분명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내 등장하는 소설 제목도 심상치 않다. <오렌지와 놀이와 오렌지 놀이>. 다른 소설도 이런 톤일지가 궁금해진다.
4. 히데오 / 서장원
대학 시절을 회고하는 소설은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종류의 소설이다. 예술대학 학생인 화자 ‘수진’과 ‘히데오’(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의 관계가 그들이 준비하는 연극 <따귀 게임>으로 돈독해지는데, 그 과정에서 수진은 히데오의 비밀-그가 과거 겪은 차별과 폭력, 그것에 대한 복수심에서 흘러나오는 연기의 진정성을 본다. 히데오의 그런 비밀과 비밀스러운 성격은 수진이 전에 만난 영도와는 영 딴 판이다(수진 같은 사람이 영도를 만난 게, 얼마간 그를 견뎠다는 게 좀 대단하다). 관찰자적인 마무리가 무난해서 어디서 본 거 같은 인상을 받긴 했지만 재미있었다는 건 부정 못하겠다. 비밀을 들려주는 이와 비밀을 듣는 청자(그 비밀은 어느 정체성이든 주류 집단에 비해 소수거나 타자에 가까울수록 폭력에 노출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라는 관계성은 그 비밀이 주류가 되어 모두에게 스스럼 없이 공개되면서 원래부터 없었던 듯 사라진다. 왜인지 씁쓸한 한편 기묘하다(히데오의 한국어 이름을 우리는 모른다는 점에서도).
5. 귀신이 없는 집 / 위수정
‘크로스드레서’(여장 남자)라는 파격적인 소재와 너무 잘 읽히는 문장력이 볼만 했던 소설이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눈과 돌멩이>에서도 크로스드레서가 등장한다길래 서로 연관이 있을까 싶어 먼저 읽었는데 연관이 딱히 있진 않았다. 놀라운 건 두 소설의 톤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이었다. 하여튼 이 소설은 크로스드레서이자 기러기 아빠인 ‘재원’이 크로스드레서 카페에서 코요라는 인물과 연락해 할로윈데이에 홍대 거리를 걸어보려는 내용이다. 그는 크로스드레서이긴 하지만 집에서 입어보고 아내와 공유하는 정도(여장하는 모습이 하도 비밀스러워서 아내도 이해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이며 바깥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정체성을 실감하면서도 현실이 보고 싶어하는 정체성이 아니라는 판단에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부풀어가는 내면과 들이밀어지는 현실 그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앞집 남자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만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그런 그가 용기를 내어 여장을 하고 길거리를 다니기로 한 건, 열심히 활동라는 코요를 본받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좀 반하기도 했다), 시드니에서 종종 영상통화를 하는 아내 상미가 곧 돌아갈 거기도 하고 딸아이 세라도 크고 있으니 이젠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서이기도 하다(어쩌면 마지막 기회). 결국 코요와 만나기로 한 약속은 한 순간의 충동이 아닌 중요한 결심이 된다. 하지만 막상 코요와 술집에서 만나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한 후 길거리에 나가서는 더 큰 혼란이 찾아온다(재원 또한 매혹과 혐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둘 다를 느끼던 사람이었다). 코요라는 이름에 얽힌 설화처럼 집에 혼자 남아 자기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에게서 나는 한 인간의 외로움을 보았다. 타인의 시선이 정말이지 폭력적이며 그 때문에 정체성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한다.
6. 일일야성 / 이미상
남편 경수가 갑자기 페미니스트를 선언하고 관계를 갖지 않겠다고 아내에게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며, 내가 깨달았으니 아내가 보인 그동안의 악한 것도 끌어안겠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펼쳐지는 익살극, 풍자극일 줄 알았는데 아내 운주와 친구 선숙이 겪은 오래전의 우정과 현실의 간극, ‘노스탤지어의 캠프파이어’의 시도와 실패, 그때와 지금의 몸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에서 아내로의 이야기 선회가 조금 산만한 감이 있었으나 이미상 작가 특유의 신랄한 감성은 여전하다(<옮겨붙은 소망>도 그렇고 요즘은 부부관계를 주로 쓰시는 듯하다). 하루 동안 야성을 되찾는 일일야성 캠페인은 육체적 자유가 아닌 육체의 한계(폭력, 노화, 노동)를 느끼게 했던 것이다. 운주가 남편을 못 견디고 선숙의 집으로 가서 지내는 하룻밤 동안 쏟아내는 회상이 재미있는데(계급과 폭력을 낱낱이 보여준다), 시간의 야속함과 인간의 잔혹함, 인간의 연약함을 떠오르게 한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이것도 역시 좀 더 길었으면 싶었던 단편이다.
7.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 함윤이
강원도 소도시 면사무소 공무원 노아가 박녹원 주사와 함께 천문대에 자리잡은 사이비 신도들을 만나러 가는 이야기. 이야기적 선명도를 일부러 흐리게 하면서 노아라는 이름과, 천문대에서는 그 이름을 감춰야 했던 것, 그 이름을 지어준 엄마의 이름 정선화를 가명으로 쓴 것, 그런데 마침 그 이름이 신도를 이끄는 여성의 이름과 같았던 것 등에 이야기 힘을 쏟는다. 그들이 떠나기 전날 밤의 종교 행사에 노아를 초대했던 이유가, 실은 노아를 적으로 생각해서였으며 적이 와야 구원이 가능하다는 믿음 하에 불 지르는 의식을 치렀던 것이 드러나면서 기묘한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경찰 소방관들이 개입하면서 식는다. 노아가 그들에게 이끌리는 것도, 직장에서는 부적응자처럼 보이던 박녹원이 천문대에 가서는 편안한 얼굴이 된다는 것도, 불을 피우자 독수리들이 모이는 것도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안개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할 듯한데, 그 모호함이 구체성에서 뒤로 한발짝 물러난 모호함 같아서(처음 천문대에 가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그 집단이 벌이는 일에 관한 민원에 대한 경고와 그 집단에 대한 의심 말고는 큰 의미로 자리잡지 못했다) 독자들이 붙잡고 이 이야기를 지켜볼 터가 없는 듯해 아쉬웠다. 작가노트에서 이 적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잘 썼다고 생각드는 작품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좋은 작품, 마음에 와닿고 기억에 남을 작품은 찾기 어려웠다. 소설 읽기에 무뎌져서도 있을 테고, 장편에 익숙해져서 단편의 맛이 영 아쉬워진 것도 있을 테다. 단편 미학이 잘 드러난 한국 문학을 더 찾아봐야 할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