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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 -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5년 11월
평점 :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집.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집이 시와서 출판사와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잇달아 출간되었는데, 다행히도 이 작품집의 표제작과 <우국> 말고는 겹치는 게 없다.
미시마 유키오의 특징이라면 뭐가 있을까? 단연 미문이다. 처음 실린 <곶 이야기>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해변에 있던 한 아이가 곶 주변을 헤매다 신묘한 커플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바다와 산, 커플이 아이의 관점에서 충분히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그 미문의 이야기에 깊게 들어가다보면 예상치 못한 요소들이 튀어나온다. 죽음. 아이는 그 진실을 윤곽 정도로 가늠했겠지만 독자는 아니다.
이처럼 미시마 유키오는 아름다움을 통해 욕망과 쾌락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이 가려고 하지 않는 죽음, 추함, 광기와도 교통한다.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움에 귀속되며 아름다움을 떠받든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건 평범한 것이다. 바로 뒤에 실린 표제작 <시를 쓰는 소년>은 어린 시절 미시마의 시론과 천재성, 오만함, 동경, 그럼에도 시 대신 소설로 가게 된 이유가 나오는 자전적인 소설이다. 동경하던 선배 R을 통해 실제 사랑이 문학에서 그려지는 사랑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 동시에 찾아온 그 선배의 이마가 자기 이마와 닮았다는 생각은, 평소 자기 이마를 아름답다 생각하던 것과 충돌해 그에게 삶에서 외면할 수 없는 불순물을 인식하게 한다. 그는 학생감독 말대로 실러가 아니라 괴테가 될 운명이었다(물론 괴테는 할복하지 않는다).
뒤에 이어지는 <의자>는 좀 더 노골적으로 미시마의 사유가 드러난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고집스런 보호 아래 자랐던 그를 별채에서 의자에 올라서서 슬프게 바라보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돌보다가도 곁에 있는 어린 미시마를 무릎의자에 앉혀 추행하던-근데 그도 불쾌해하면서 즐긴다(?)-간호사가 겹친다. 고통 속에 쾌락이 있다는 미시마만의 생각은 슬픔 속에 있던 숨어 있던 은밀한 기쁨이 노출될 뻔한 걸 깨달았을 때, 그 기쁨을 감추려고 슬픔마저도 감추게 되버린다는 사실과 겹쳐 찝찝한 진실을 드러낸다(어머니는 그에게서 슬픔이 보였다가 언젠가부터 사라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에겐 기쁨과 슬픔 모두 사라진 것이다). 고통-쾌락을 슬픔-기쁨으로 유비하는 미시마 특유의 탐미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글이다.
<진주>는 한 부인의 생일파티에서 부인의 진주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희비극으로, 캐릭터 설정이며 뒤바뀌는 심리, 상황이 유쾌한 재미를 가져다준다. 미시마가 이런 심오함 없이 재밌는 이야기를 썼다는 게 신기하다. 누군가 썰로 풀어도 재밌을 것 같다. 읽으면서 가장 웃겼다.
이런 경향은 <표>에서도 드러난다. 아내를 자살하게 만든 듯한 남자를-마치 햄릿이 양심을 낚아채기 위해 극중극을 시도한 것처럼-놀이동산 귀신의 집에 데려가는 이야기로, 겉이야기는 심각해 보이지만, 남편 센이치로의 어처구니 없는 성격과 괴담이 곁들여지며 재밌어진다. 풍요의 바다 4권 <천인오쇠>에서도 주인공 ‘도루’와 그의 서생이 놀이공원 회전컵 어트랙션을 타는 이색적인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여기서도 그런 유희공간의 묘사가 볼만하다.
<보온병>은 인물들의 불륜과 느적느적한 심리, 불안 등이 얽히는 에피소드다. 미시마의 중편 <오후의 예항>, <짐승들의 유희>에서 느껴질 법한 그 찜찜한 감정들이 세련되게(미국 사대주의와 그에 상응하는 일본 유카타 오비에의 미적 묘사) 묘사되어 있다. 그 찜찜함이란, 무언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메울 수 없는 균열을 발견하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겠다.
<시가데라 고승의 사랑>은 미와 추, 젊음과 늙음, 현세와 내새 등이 얽히고 전복되는 이야기로 풍요의 바다 시리즈에서 깊이 있게 다뤄졌던 불교사상(3권 <새벽의 사원>)과 사랑(1권 <봄눈>에서 사토코와 기요아키의 사랑), 미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모든 걸 버리고 독단이 된 미는 그 상태에서 한걸음 물러날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짧은 소설에서도 아름다움의 관찰 가능성과 도달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나팔꽃>, <히나의 집>은 어린 여동생의 죽음과 얽힌 이야기지만 결이 사뭇 다르다. 전자는 짧은 분량이라 슬픈 괴담으로 흘러가며 끝이 난다면, 후자는 히나마쓰리날, 여동생을 닮은 듯한 교코라는 여자 아이에게 홀리다시피 이끌려 그녀의 집에 가서 하룻밤 지내고 돌아갔다가, 후에 그 아이와 어머니 모두 광기에 휩싸인 인물로 드러나는데, 그럼에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형국에 감미로운 공상을 덧붙인다. 광기를 아름다움으로 이해해보려는 셈인데, 이런 기미는 풍요의 바다 4권 <천인오쇠>에서 도루와 유일하게 어울려지내는 광인 기누에를 연상케한다. 철저하게 세상의 미적 관점을 전부 부정하고 추한 자신을 세상에서 단연 아름답다 자신하는 기누에를.
<괴물>은 남-가족을 포함한다-을 골탕 먹이는 걸 긍지로 살아온 독특한 인물 ‘나리모치’가 노인이 되어 뇌출혈로 말을 못하게 되면서 그를 보살피는 가족들한테-그들조차 모르는-복수를 당하는 이야기로 유쾌하면서도 악랄하고 처연하면서도 징그럽다.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주인공 ‘혼다’가 4권 <천인오쇠>에서 악에 물들고 노년에 접어들며 드러내는 추악한 면모가 나리모치한테서도 보인다. 별장에 머물도록 허락해준 별장 주인 히가키가 어린 시절 자신이 못되게 굴었음에도 그런 기색 없이 극진히 그를 돌보는데, 그것이 나리모치의 딸 이쓰코를 사랑해서임을 뒤늦게 알게 된 나리모치는, 그것이 자신에게 가하는 복수라고 생각해, 이쓰코에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악행을 거듭하며 살아온 자, 내내 악한 복수에 대비해온 자를 무너뜨리는 게 사랑이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우국>은 읽기가 괴로웠다. 여기엔 서사적 곡선이 없다. 오로지 직선, 군도로 배를 가르는 직선만이 그려져 있다. 쿠데다 미수 사건에 자기 동료들이 얽힌 걸 알게 된 다케야마 신지 중위가 동료들을 죽일 수는 없어 아내 레이코와 마지막으로 관계를 나누고 자결하는 하룻밤을 담은 이야기다. 쾌락과 죽음이라는 두 요소를 극단적으로 드러내어 미시마가 추구하는 미의식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지만… 불쾌하고 맹목적일 정도로 신뢰와 마음이 일치하고 청결한 두 남녀 때문에 소설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소설 읽으면서 이렇게 역겨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풍요의 바다에서도 자결이 등장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이진 않았는데…
<우국>을 읽고 난 후유증을 마지막에 실린 <황야에서>가 말끔히 가시게 한다. 집에 침입한 청년에 대해 상상력을 끌어올려 독자로 가정하고 소설가의 고독과 관련지어 보는 관점이 독특했다. 일화에 가까운 일인데도 소설화한 게 대단하다.
이처럼 미시마의 단편들이 미문 일색에 형식적 완성도도 높지만 장르나 주제, 밀도가 전부 다 다르다. 다작을 한 작가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소설집이었다. 개인적으론 책 만듦새나 글씨체, 줄간격이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