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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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체에 눈과 극심한 추위가 도래한 근미래의 한반도. 식량을 생산하는 남부의 온실 마을, 철을 생산하는 한강(중부)의 제철소 구역, 대륙군과 대척하는 압록강(북부)의 군사 구역으로 나뉘어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 구역과 저 구역 간에 물품들을 전달하는 짐꾼 일을 하던 온실마을의 ‘유안’은 일 때문에 친구 ‘도진’의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된 걸 계기로 압록강이 아닌 한강까지만 짐을 전달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북부로 갈 중부의 짐꾼이 턱없이 부족해서 받아줄 수 없다는 중부 구역장의 반대에 맞닥뜨린다. 반대에 줄만을 가졌다가 사정을 알게 되어 수긍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중부 짐꾼 ‘화린’과 함께 유안은 압록강 군사 구역에 들렀다가 화린의 친구 ‘기주’를 마주하고, 기주 옆에 있는, 여기 군인들관 어딘가 분위기가 다른 ‘백건’을 보게 된다.

이렇게 인물과 배경 소개가 이어진 뒤 소설은 인물들의 내면으로 향한다. 각자의 구역에서 벌어지는 못 마땅한 일들과 타 구역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을 통해 과거와 달라진 지금을 목도하는 그들은 지키고 싶었던 것들을 앞으로도 지켜나갈 수 있을지 같은 공허한 질문에 휩싸인다.

한쪽에 생의 경계를 넘은 존재 ‘도진’이 있다면 반대쪽에는 반도의 경계를 넘은 존재 ‘태하’가 있다. 태하는 화린, 기주와 어릴 적부터 친구 사이로, 화린 기주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도맡다가 군인이 되려는 기주를 돕기 위해 압록강 너머로 파견을 나갔지만 몇 년째 소식이 없다.

북부에서 남부 순서로 인물들을 나열하면 이러하다.

태하(대륙)—백건&기주(압록강+군인, 대륙군 출신/중부 출신)-화린&유안(짐꾼, 중부/남부)—도진(죽음)

백건과 기주가 묶이고, 화린과 유안이 묶이는 것은 직업과 지역이 같거나 비슷해서만은 아니다. 백건과 기주는 현재의 무의미함 속에서 내면의 혼란을 마주하는 쪽이다. 백건이 대륙군 특수부대로 육성되는 혹독한 과정에서 살인이 빙자한 것을 견디지 못하고 탈영했다가 반도군한테 붙잡혔을 때 구해준 게 기주다. 지난 전쟁을 계기로 자원해서 압록강 군인이 되었지만 반도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기량을 보여주는 백건을 보면서 스스로 군인의 자질이 있는 건지 의심하고, 또 친구 화린과도 멀어져간다고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기주를 알아주고 감싸주는 게 백건이다. 선택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맛봤다는 그 아이러니가 두 사람을 결속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대륙군이 다시 침략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쪽, 남하하는 쪽이 된다.

화린과 유안은 현재의 무의미함 속에서 외부의 사건을 통해 새로운 걸 추구하게 되는 쪽이다. 유안은 온실마을 도축장 남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알지 못하던 도진의 삶을 가늠하게 되고, 거기서 주운 씨앗과 도진이 남긴 생명도감으로 인해 사라진 줄 알았던 가능성이 잠재된 형태로도 남아있을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된다. 도진처럼 생명을 중요시해 썰매를 끌던 개가 죽었을 때도 사람처럼 화장해 그 유골함을 묻고 장례를 치러준 화린 앞에 나타나 당신을 지켜줄 테니 자기 시신을 찾아달라고 말하는 유령 아이는 화린이 무의미로 빨려들어가는 죽음에 장례 등을 통해 애도하고 의미를 덧붙여주던 게 헛된 게 아님을 깨닫게 한다. 대륙군이 침략했을 때, 유안은 화린이 걱정돼서 북상하고, 화린은 기주가 걱정돼서 북상하는 쪽이 된다.

백건 기주와 유안 화린이 이렇게 대조를 이루는 것 같아 보여도 다른 쪽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통된다. 그들이 알던 저들이 시공간과 생사에 있어서 점점 타자가 되어가도 그들은 저들을 여전히 위하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소설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북상하는 이들과 남하하는 이들이 만나는 순간이 온다면, 그들과 저들 간의 경계가 무화되어 죽거나 살거나, 과거거나 현재이거나,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가 ‘살아있는’ 존재로 거듭날 것이다. 심사평에서 이 소설을 가리키며 말하는 ‘생존주의’는 모든 것들을 되살리고 품으려는 시도 그 자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원망스럽고 괴롭더라도, 망각하는 것보다는 기억하는 게 더 나은 가능성을 상상하고 현실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진실임을 가리키는 기억 생존주의.

뒷부분에서 이 소설에 <저편에서 이리가>란 제목이 붙은 이유를 이야기에서 등장한 존재(씨앗)와 기록(생명도감)과 징조(유령 아이, 하울링 소리)라는 세 요소로 마주하게 되는데 참 근사하다. 공간적 측면(저편)과 시간적 측면(이리) 모두에서 거리감 있는 존재들이 지금 이곳에 나타나게끔 복원하는 게 이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제목이다. 탁월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다.

또래가 쓴 장편을 읽는다는 놀라움과 최근 줄곧 생각하던 ‘기억’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소설의 근미래적인 배경 설정이 그 자체의 매력을 강화하지 못하고 주인공 여섯 명의 감정을 찍어내기 위한 풍경(혹은 도화지)으로 동원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별들은 충분히 빛나지만 그 별들이 수놓인 밤하늘의 규격과 세부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디테일이나 묘사 대신 감정적 진술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경향,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면서 벌어질 일들을 설원 같은 표현들로 과감하게 생략한 점, 각 공동체 수장 인물들-이장, 구역장, 대장-의 성격이 거진 비슷한 점, 각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뭉뚱그려지게 그려진 점, 각 주인공들이 각 공동체에서 요직 인물인 점(어떻게 요직이 되었는지 하는 성장 과정은 기주 말고는 없다), 주인공이 많고 주변인물이 수장들 말고는 거의 없다보니 각 구역이 투톱 체제로 보인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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