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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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했던 사람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 책을 동경했던 주인공 ‘석주’는 교사를 하라는 선생과 부모의 권유에 사학과에 입학해 교직 이수를 하려했던, 삶의 결정에 있어서 본인의 의지가 크지 않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책과 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계를 무릅쓰고 소설 창작 수업을 청강하게 되고, 졸업 후엔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출판사에 입사하고 여러 사람과 회사를 거치면서 편집자로 거듭난다.

평범한 삶 속 일의 이야기가 처음엔 단정하면서도 고저가 없는 것 같이 느껴져 서사가 조금 약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후반부 석주가 ‘안정묵’ 작가의 소설을 담당하면서 일어나는 변화들, 오십 대에 이른 석주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에 이르면서 작가가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이 마지막을 위해 이야기를 구성한 거구나, 감탄하게 되었다.

‘교한서가’에 입사해 교열부 ‘오기서 씨’ 밑에서 일하다, 편집부 ‘장민재 씨’ 밑에서 일하다, 회사 사정으로 퇴사 후 신생 출판사 ‘산티아고북스’에 입사해 대표 ‘차인석’과 편집장 ‘손유라’ 밑에서 일하고, 여러 동료를 만나고, 편집자 모임에 나가고, 동료이자 연인 ‘원호’를 만나고, 차차 승진하는 등-사건, 변화, 성장 세 요소가 고루 담긴-서사가 차분하게 정리돼 있어 장편소설 구조를 분석하기 좋을 듯하다.

출판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다루고 있어서 좋았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출판일은 출판사 사람들, 작가들, 독자들, 시대까지 얽혀서 예상하기 어렵고 또 복잡하다. 그런 복잡한 얽힘 속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이 고르게 분배돼 있어, 작가가 철저한 조사와 객관적인 시선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다는 인상을 받았다. 구체적인 연도가 언급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출판 역사를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석주가 입사하고서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헷갈려하는 점, 강압적인 필자를 만났을 때, 좋은 필자를 만났을 때, 좋지 못한 원고를 받았을 때, 좋은 원고를 받았을 때, 좋은 상사를 만났을 때, 좋지 않은 동료를 만났을 때, 처음 혼자 필자를 대면했을 때, 책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떴을 때, 한 책에 온 힘을 쏟느라 다음 책을 신경 쓰지 못했을 때, 독자와 작가가 긴밀하게 연결됐을 때, 오로지 작가만을 믿고 일을 추진할 때 등등.

그런 일들이 모두 지나고 석주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확 와닿으면서 이 책이 평범한 일을 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그토록 빈번하게 다양한 각도에서 다룬 일들은 석주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런 삶을 살았으니 석주에게 오직 나만의 것인 무언가가 자리잡힌 걸 테다. 남들은 평범하다고 평가할지 몰라도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확신이며 가치인가.

활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느라 가족과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한 석주지만, 삶이 실로 풍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자신이 아직 이 일을 좋아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이 좋았다. 모든 걸 다 알면서 살 수는 없다는 걸,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안정묵 작가와의 일화는 어디까지 예술이라 볼 수 있는지 그 경계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게 보았다(마광수 작가의 일화가 생각나는 부분이었다). 그의 소신과 편집자인 석주의 원고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얽히면서 보여주는 시너지가 좋았다. 가치라는 게 시대와 다수 집단에 의해 파묻히기도 하지만, 소수의 의지와 집념으로 다시 발굴되기도 한다는 게 느껴져서 좋았다. 책이 가지는 가치가 무한하다는 뜻 같았다.

한 사람의 생을 다루고 있다 보니 소설 속에 계절과 계절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반복된다. 그 면면들을 유심히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삶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삶이 주는 감동은 잔잔하고도 묵직한 거란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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