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대삼각형 오늘의 젊은 작가 51
이주혜 지음 / 민음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름철 대삼각형>은 소설의 첫 장에서 예고한 대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밤하늘에 수놓인 별, 이름도 없이 존재만 했던 별들에 누군가 이름을 붙이고 기원을 지어내고 가상의 선분을 이은 별자리로 만들듯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 옛 이야기가 닿고 삶에서 벌어지는 다른 이야기와 얽히고 이전에 들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파생되는 식으로 이야기를 인물들의 삶에 퍼뜨리며 그들이 무수한 점들 중 하나의 점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라 그중에서 특별하게 반짝이는 별 같은 존재임을 조명한다. 태지혜, 송기주, 반지영, 세 여성의 이야기가 ‘누군가 들려준 이야기’, ‘악몽’, ‘집’, ‘현재’ 같은 주제를 거치면서 갈수록 풍부해진다.

이전에 읽은 이주혜 작가의 단편 <이소 중입니다>, <여름 손님입니까>, <괄호 밖은 안녕>(가장 애정하는 단편)등에서 여태 한국문학에서 본 적 없는 걸출한 서사가 느껴져 장편에서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장편으로 오니 역시 풀어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게 느껴진다.

이번 소설은 사십대 여성 세 인물이 과거에 안게 된 결핍이 현재에 다른 국면으로 찾아와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서사를 추동하고 있다. 이토록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그들은 자신의 인간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신이 겪은 아픔을 누군가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고.

두 번의 유산과 이혼을 겪은 태지혜에게 그녀가 아꼈던 조카, 그러나 그녀를 외면하는 것 같았던 조카 우주가 임신을 했다며 찾아왔을 때 느꼈을 감정(시누이 성희가 낙태를 하고서 시어머니한테 미역국을 얻어먹는 장면과 태지혜가 유산을 하고서 시어머니한테 미역국을 얻어먹는 장면이 대치되는 것도 그렇고, 남편 성우가 오리온 자리를 보며 겁을 먹고 눈물 흘리는 태지혜의 마음을 몰라주면서 청혼을 하는 장면도 그렇고),

부모로부터 버림 받아 할머니 손에 키워진 송기주가 어느덧 자기가 딸 시오를 미워하는 걸 발견했을 때 들었던 생각(송기주의 할머니가 들려준 옛 이야기를 일본의 모모타로 이야기 아니냐고 되묻는 남편 지철, 송기주를 겁이 많아서 좋다고 했다가 나중엔 그걸로 핀잔을 주는 지절도 그렇고, 송기주가 지철을 보면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미워하는 마음이 더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엄마가 자신을 버리는 악몽을 꾸던 송기주가 시오를 낳고서부턴 아이를 버리는 악몽을 꾸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딸보다 사모의 딸을 아꼈던 운전기사 아버지가 어느 날 아파트에 놓인 여러 자전거들의 부품을 훔쳐 그 당시 사모의 딸이 탔던 분홍색 자전거를 만들어서 사십대인 딸에게 선물이라고 적어 놓은 걸 봤을 때 반지영이 느꼈을 감정(지켜주지 못한 학생 수호와 지켜주고 싶어진 학생 은우 사이에 놓인 과거와 현재의 대비도 그렇고, 단지 근처에 쓰레기 매립지 건설을 극구 반대하는 단지 내 여론과 달리 그들이 돈을 걱정하고 있으면서 아이를 볼모로 내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며 반대하지 않는 반지영도 그렇고)은 내가 소설이 아니라면 감히 가닿지 못했을 인물과 순간과 감정이라 여겨져 가슴 한켠을 찌르듯이 아프면서도 소중하게 와닿았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게 누군가에겐 절대 당연할 수 없는 것처럼 세 인물은 달라도 서로 다르지만 독서모임 ‘중구난방’을 통해 서로 어울린다. 여름철 대삼각형처럼 서로 다른 기원과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여름 밤하늘 은하수에서 반짝이면서 서로 연결되듯이 그들은 여름철 무주에서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뭉친다.

세 인물 각각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것을 하나로 엮는, 작가의 서술 같기도 하고 그들의 카톡방 대화 같기도 한 짧은 파트가 등장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세 번 정도 되풀이 되다가, 이들이 모여 무주로 가면서는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전개는 한번도 본 적이 없어 독특하기도 했고, 세 인물의 서사가 다 진득하게 와닿아서 지금 읽고 있는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한 부분에서 어떤 인물의 이야기인지를 깨닫는 순간 그 인물의 모든 이야기가 고구마 줄기처럼 술술 떠올라서 신기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뭉텅이로 삼켜지는 느낌. 이야기가 삶의 모든 구간에서 효력을 발휘하는 느낌이라 이 소설은 이야기가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크게 들기도 했다. 작가가 그만큼 이야기의 기민한 발신자로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후반부 무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직접 체험하러 간 것 같아 재밌기도 했고 정말 가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여기서는 우주와 시오의 내면도 서술되어 있어서 이들의 유대가 더 돈독하게 느껴졌다. 막바지 계엄과 여의도 집회의 장면은 우리가 그 긴 겨울을 지나왔기에 나올 수 있었던 얘기라고 생각된다. 하늘을 우러러 보며 관찰하던 별자리를 지상으로 내려보내 수많은 응원봉의 불빛으로 은유한 게 인상 깊었다. 그게 또 이야기라는 성질과 연결되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야기란 결국 저 멀리서 반짝이다가 나에게로 다가오며 살아숨쉬게 되는 거구나, 이야기의 위력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