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의 도쿄 도시 산책 시리즈
양선형 글, 민병훈 사진 / 소전서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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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윤리는 다른 영역이며 그 둘을 아슬하게 가로지르는 게 문학임을 가장 강렬하게 알려준 작가는 미시마 유키오다. 그의 만년 대작 <풍요의 바다> 시리즈에서 벌어지는 여러 범죄와 방종, 타락에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문학의 혁신, 나아가 미의 혁신이라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문장과 고전적인 형식을 갖춘 서사에 경도되었던 걸 부정할 순 없다. 그런 그를, 결단코 동의할 수 없으나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이 책, 양선형 소설가가 쓴 <미시마의 도쿄>가 알려준 것 같다.

작가가 작가를 바라보며 쓴 글이라 그런지 깊이감이 남다르다. 애착과 경멸이 동시에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미시마가 썼던 작품들(꽃이 한창인 숲-가면의 고백-금색-금각사-오후의 예항-풍요의 바다) 개별 내용을 상세하면서도 비평적으로 짚을 뿐더러 작가의 생애와 연결지어 미시마가 온몸으로 밀어붙인 삶의 의도를 치밀하게 서술하는 탁월함에, 나는 시대와 공간이라는 레이어에 걸려버린 미시마를 정확히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시간과 공간에서 그렇게 작동되었던 미시마를. 삶은 자신의 의지로 사는 것이지만 역사에 휘둘리지 않을 순 없다는 것도 보았다.

그는 삶과 문학의 합일을 꿈꾸며, 그것을 몸소 실천했던 문학가였다. 그의 문학이 갖춘 고전적인 형식미는 그가 쓴 책에서 비어져나와 그의 삶에도 고루 퍼진다. <나의 편력 시대>에서 서술한 소외가 <태양과 철>에 이르러 ‘자기 개조’, ‘문무양도’로 거듭났던 그의 삶은 프로젝트나 다름 없었다. 태양과 어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육체와 감수성, 보여지는 자와 보는 자, 무예와 문예의 대립을 느끼고 삶에서 그 대립쌍을 끊임없이 통합하려 시도하면서, 끝내 죽음이라는 최종적인 단절로 그 모든 요소를 단일화하는 형식을 부여했던 그의 강인함에 넌더리가 날 정도다. 정말이지 그는 완성을 욕망한 작가, 위험한 미를 쟁취하려 했던 탐미주의자였다.

미시마가 살았던 공간을 거닐면서 시간의 격차를 서술하는 양선형 작가의 솔직한 화법도 좋았고, 미시마가 느꼈던 동경과 위기의식, 돌발적인 정치적 행보가 어떤 역사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치밀한 서술도 좋았다(그의 문학과 다르게 밈처럼 우스꽝스럽게 활용되는 그의 극우적인 행보들은 그가 추구하던 합일화란 불가능하다는 걸 함의하는 것 같다).

한편으론 문학의 길을 갈지 고민하던 시기, 일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불안에 시달리던 청년 미시마를 보면서 그가 싹수부터 남다른 작가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했다. 전후 급변하는 일본 사회를 보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것도 좌파우파 같은 정치 맥락을 제거하고 보면 시대의 격랑에 맞부딪히며 고뇌하는 작가의 형상임이 뚜렷하게 보여서 그가 여타 작가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그 후 행보가 문제적이지만).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 이 책이 나중에 개정되면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미시마의 대작이자 유작인 <풍요의 바다> 시리즈의 세 번째 소설 <새벽의 사원>과 네 번째 소설 <천인오쇠>에 대한 분석이다. 이 책은 세네 번째 소설 번역본이 나올 때 탈고가 되어서 이 두 소설의 분석은 들어가 있지 않다.

첫 번째 소설 <봄눈>과 두 번째 소설 <달리는 말>까지만 보면 미시마가 추구했던 궁극의 삶, 죽음으로 미가 완성되는 삶이 뚜렷하게 보인다. 거기까지만 쓰고 할복 자살을 감행했다면 그의 죽음에 여러 복잡한 의문이 생겨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 소설로 가면서, 소설 속 보여지는 자인 기요아키의 환생자가 서사에서 점차 멀어지고, 소설 속 보는 자인 혼다가 악의 탐미주의자로 돌변하고 끝내는 허무에 도달하는데, 미시마가 일전에 크게 표현하지 않았던 궁극적인 허무가 보인다. 아름다움은 허무하고 허무함은 아름답다는 사유로 들여다볼 수 있기는 하지만, 나는 미를 찬미했던 그가 허무에 전도되었던 그 과정이 좀 더 담겨야 이 책의 아쉬운 뒷맛이 충족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천인오쇠>를 다 읽었을 때 곧장 든 생각은 미시마가 이 책을 탈고한 날, 아름다움에 투신한 게 아니라 허무함에 투신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든 또다른 생각은, 미시마가 미에 몰두했기 때문에 윤리를 하찮게 여겼다는 점이다. 그는 윤리와 연대와 치유를 모색한 오에 겐자부로와 대조적으로 미와 우익과 천황을 찬미했다. 그의 소설에 숱하게 드러나는 부유한 생활 묘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 이면에는 길거리에 널린 약자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또 혐오)하는 기만이 들러붙어 있다. 미시마에게 그들이 보였더라도 미를 택했을 거란 생각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진다.

한 작가가 쓴 책을 통해 시대와 철학을 들여다보듯이, 한 작가의 삶에 대해 쓴 책을 통해 한 작가에게 걸쳐진 그 시대와 철학을 알아간다. 이런 깊이로 문학과 세계와 시대를 통찰할 수 있어 행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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