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대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너무나 다르다는 걸 계속 확인해가면서도, 끝없이 들어주고 배려하고 의견을 말하고 되묻다보면 대화란 저절로 깊어지고 거기에 유대 또한 쌓이는 걸까.

변화를 간곡히 원하는 스무 살 가정부 여성과 변화를 원하지 않는 중년의 행상 남성이 나누는 대화는 수많은 대명사들이 동원되고 사려깊은 말솜씨까지 더해져 언뜻언뜻 추상적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들이 이야기한 ‘희망하기 위한 희망’에 가까운 대화, 생활과 형편과 처지로 겹겹이 둘린 삶의 내부를 비추는 대화가 된다.

해설에 실린 대로 이들은 결핍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결핍을 채우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 아니라) 욕구를 욕구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그 실현은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전에 없던 결심과 행동, 선택, 객관적인 자기인식만으로 되지 않는다. 그들이 희망하는 실현의, 만족의 그날은, 파도처럼 들이쳤다 빠져나가는 희망과 절망의 길항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며 살다보면 우연히 시작된 이들의 대화처럼, 얼굴에 따뜻한 붉은 빛을 던져주며 지는 노을처럼 자연스레 피어오를 테다.

어떤 행복은 완성되는 순간 파도처럼 부서지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어떤 소소함은 그 자체로 귀하고 만족스럽다. 어떤 일상은 그 속내를 설명서처럼 전부 꿰고 있으면서도 벗어나기가 도저히 어려우며 어떤 떠돎은 외롭더라도 전혀 불행하지 않다. 그것들을 차차 짚어나가는 대화 속에서 그들의 마음에 퇴적된 것들을, 모래 속의 사금처럼 반짝이는 것들을 나 또한 보았다.

길고 깊은 대화를 겪은 이들의 우연과 저녁으로 차차 물들어가는 동네 공원의 풍경이 질투가 날 정도다. 좋은 대화를 나눴다 싶은 날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두둑하게 얻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랬던 날들이 그리워지는 소설이었고, 좋은 대화란 어떤 건지 표본으로 삼아도 좋겠다 싶은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