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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4
자우메 카브레 지음, 권가람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평점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처음 소개된 카탈루냐 작가 자우메 카브레의 <나는 고백한다>(총 3권)는 치매를 앓게 된 주인공 ‘아르데볼’이 한 바이올린에 집착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역사적 악의 연대기가 밝혀지는 이야기다. 악을 주제로 골동품 수집, 사랑, 우정, 인문학, 나치, 배신, 종교, 유대인 등등 다양한 소재를 동원해 매력을 선사했기에 이번 단편집을 정말 기다려왔다.
이번 단편집 <겨울 여행>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여행>(우리나라에선 ‘겨울 나그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도 뮐러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을 테마로 하여 ‘형성’된 소설집이다.
음악가 피셔의 기이한 대위법, 슈베르트의 <겨울 여행>, 렘브란트의 그림 <철학자>가 소설 내에서 반복, 변주된다. 예술이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다. 연작소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소설마다 분위기가 극명하게 달라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물론 유기적인 면이 있다. 첫번째 단편 <사후 작품>은 마지막 단편<겨울 여행>과 같은 배경이고(하나는 피아니스트, 하나는 음악학자로 서로 친구이지만 멀어진다), <결과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와 <흔적>은 키킨이 주인공이며 <협상>은 <빵!>의 배후가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러나 여기 언급된 작품들의 화법이 저마다 달라서 연작소설집이라기 보다는 카브레 문학의 갈래를 전부 보여주는 이야기의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초단편에서 이야기적인 트릭, 장치들이 많이 실험되는데 <이 분>은 각 인물들이 이 분이라는 시간에 집착하는 이야기의 연쇄이고, <빵!>은 0-1-2-3이라는 순서로 첩보의 첩보 활동이 긴박하게 이루어진다. <유언장>은 예상 못한 반전에 잠시 멍해졌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손안의 희망>, <먼지>, <보석 같은 눈>,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꿈>, <나는 기억한다>, <발라드>다. 공통점이 뭔가 하니 이야기의 완결성과 수미상관이다. <먼지>에서 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아드리아는 <나는 고백한다>의 아르데볼이 생각나고, <보석 같은 눈>은 <나는 고백한다>에서 과거에 일어났던 갖가지 음모와 혈투를 상기시킨다. 게다가 화자가 이야기를 듣는 자들에게 거짓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꿈>은 저주 받은 재능을 떠올리게 하고, 음악적인 이야기라서 <나는 고백한다>의 초반부, 아르데볼이 바이올린을 배웠던 유년시절, 재능에 관해 논하던 부분이 생각났다.
사실 카브레의 이 단편집은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유대교를 비롯해 종교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상대적으로 낯선 카탈루냐, 헝가리 지방이 배경이다. 키킨이 주인공인 소설들은 그 나라의 음악이며 종교 이야기가 빈번하게 혐오하는 어조로 등장하는데, 정말이지 이입, 아니 이해조차 어려운 인물이었다. 또한 단편이다보니-에필로그에서도 작가 본인이 서술했듯이-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켜야 해서 생략하거나 압축한 정보들이 많다. 어떤 이야기인지 감을 잡는 데에 시간이 좀 든다. 그것들을 차근차근 이해해야 소설의 속도감이 붙기 때문에 꽤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고백한다>를 통해 카브레의 스타일을 먼저 파악하고 읽어야 그나마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나는 기억한다>다. <나는 고백한다>에서 다뤘던 악은 스스로의 발생과 대물림이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흥미로운데, 이 짧은 작품에서도 그게 전부 드러나기 때문이다. 참지 못한 기침 세번으로 인해 생겨난 비극에 잠시 생각이 중단되기도 했다.
소설마다 사랑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상대방이 떠나버려서 끝나는 방식으로 <나는 고백한다>와 똑같다. 작가의 사랑은 누군가 갑자기 떠나버리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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