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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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 전지영

부조리적인 상황을 통해 죄책감, 열등감, 수치심을 파고드는 여덟 편의 이야기. 대부분의 문학들이 ‘있음’을 그려내는 것에 치중한다면, 이 소설집은 ‘없음’에 치중해서 외려 ‘있음’을 강조한다. 마치 검은 여백에 쓰인 흰 글씨를 보는 것 같다. ‘있음’을 공허로 만들어버려, 괜한 헛헛함에 ‘있음’을 찾아보려고 시도하게 하는데, 어떨 땐 그마저도 실패한다.

갈등하는데도 불구하고 모호하게 느껴지던 심리 양상과 전개가 뒷소설로 갈수록 차츰 뚜렷해진다. 앞의 네 편은 3인칭이고 뒤의 네 편은 1인칭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단편들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인물들의 심리를 명쾌하기 알기 어렵게 서술되어 있어서(설명이 아닌 철저한 보여주기), 독자로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호했던 적은 처음이다.

대부분의 소설집은 읽다보면 주제나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어느새 명확하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인데(그래서 익숙해지기도 하고 어떨 땐 지겨워지기도 하는데) 이 소설집은 그런 걸 명확하게 꼬집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무언가 반복된다는 느낌 없이 변주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곱씹으면서 다음 소설로 넘어가게 했다.

아파트, 타운하우스, 상류층 저택 등등 공간 위주로 상황이 전개된다. 어떤 공간에서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말의 눈>), 사건이 뭉뚱그려지며 인물에게 침묵이 강요되기도 한다(<쥐>). 억눌러왔던 심정을 터뜨리기도 하고(<난간으로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어떤 마음은 버리거나(<맹점>) 묻어두기도 한다(<남은 아이>).

비나 눈, 어시장 바닥에 고인 물, 정주못 등 물이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한몫한다.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의 경우가 감정이 가장 다양하게 느껴졌던 소설이다. 인물들의 화해가 폭우 속 아파트에서 조용히 성사되는 모습이 강렬하다. <맹점>은 제목이며 사건 전개며 인물들(특히 재복씨)이 생생해서 재밌게 읽었다. 삶을 살아가게 하는 흥분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뒤의 세 편(<언캐니밸리>, <소리 소문 없이>, <뼈와 살>)은 예술에 종사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모두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캐니밸리>와 <소리 소문 없이>는 모두 부자 동네인 ‘청한동’을 배경으로 하는데, <소리 소문 없이>의 화자가 사는 공간(마당보다 무릎 높이가 낮은, 마당에서 안이 전부 들여다보이는 1층)에는 또 거기만의 위계가 느껴져 인상적이다.

<뼈와 살>은 예술에 접근하는 두 방식-상업성과 예술성-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알게 모르게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지독하게 그려져있다.

마지막에 실린 소설은 <남은 아이>인데 처음 실린 <말의 눈>처럼 학교폭력 문제에 시달리는 학부모가 화자로 등장한다. <말의 눈>에서는 그 문제를 외면하고픈 징그러운 심정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밝혀진다면, <남은 아이>는 그 문제의 진상을 알고 싶어하는(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피해자 아이를 쫓아다닌다. 둘 다 난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거나 회피하거나 할 수만은 없는 인간의 마음인지라 몰입해서 읽게 된다.

여덟 편의 소설이 소설 속의 공간처럼 구조적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소설집 만듦새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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