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4
예소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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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빚을 져서 / 예소연

초연결 시대, 그로 인한 몰이해의 시대다. 사람들은 서로한테서 기꺼이 멀어지면서 동시에 지독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언젠가부터는 비극, 참사를 목격할 때에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게 되었는데, 초연결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초연결은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해롭고 무가치한 것들을 눈앞에 징그러울만치 들이민다면, 비극으로 인해 촉발되는 연결의 감각은 우리를 잇고 있던, 아주 얇아 보이지 않는 실의 존재를 깨닫게 해준달까.

그래서 비극을 목격한 어떤 순간에, 아주 잠시였지만, 죽음만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게 아닐까 의문을 품은 적도 있다. 비극으로 연결된 실이 모두를 태우지 않을까-무기력에 압도된 나머지-상상하기도 했다.

죽음이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남겨진, 혹은 살아 남은 경우는 뭐라 해야 할까. 죽음 같은 무력감을 느끼는 경우를 뭐라 이름 붙일 수 있을까. 비극은 죽음과 삶의 영역을 역치시키고 그 근간을 뒤흔들며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고통엔, 고통 말고 다른 이름이 없다.

소설에 나타나는 여러 비극들-캄보디아의 압사 사고,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동이 엄마의 투병과 죽음, 혜란의 불행 등-은 그 숨어있던 실을, 투명에 가까웠던 실의 실체를 드러낸다. 나름대로 그 일들에 괴로워하고 슬퍼했지만 동이는 외면했다. 외면하며, 외면하지 않으려던 친구 석이마저도 외면했다. 하지만 석이의 실종과 석이를 찾으러 간 캄보디아에서 만난 삐썻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실과 이어진 석이를 새롭게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 실을 잡아당기며 석이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분량이 적기도 하고 중반부터 결말이 예상이 가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 ’실‘에 대한 이야기로서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 실은 나와 너를 동시에, 그 존재를 동시에 감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를 알아가고, 타인을 발견하고, 또 타인이 하나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그 실의 무한한 연결을 타고 가다보면 영원한 무언가(죽음도 초월하는 무언가)에 닿을 수도 있다는 걸 소설이 말하고 있다. 아득한 만큼 더 많이 더 길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심연을. 그 심연을, 슬픔을 믿어보기로 한다. 그 실에 믿음이라고 이름 붙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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