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 관한 역설 문지 스펙트럼
드니 디드로 지음, 주미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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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이자 배우, 소설가, 극작가였던 드니 디드로의 후기 연기예술론.

제목대로 배우에 대한 이야기인데, ‘역설’이란 단어가 붙은 것은 위대한 배우의 자질이 ‘메소드 연기’처럼 감성에 몰두해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감성을 뺀 철저한 관찰자로서 연기해야 할 이상적인 모델을 습득하고 한치의 오차없이 모방해내는 연기를 하는 거에 있기 때문이다. 관객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정작 느끼고 있지 않다는 역설이 바로 배우에 관한 역설인 것이다.

그 누구도 연기해야 할 역할의 내면은 절대 알 수가 없으며(타인의 내면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역할의 외면만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위대한 배우에게는 관찰과 통찰, 기억력이 중요하며, (만일 감성에 몰두하면 연기가 오히려 우스꽝스러워지고 말기 때문에) 감성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디드로는 말하고 있다.

책은 1과 2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1이 주로 이야기 한다. ‘역설의 인간’이라고도 불리는 1은 아무래도 작가 디드로로 보인다. 본인이 감성을 극히 꺼려하나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 역설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보다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사람들의 감성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무대에 올라선 배우의 연기에 감성이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1은 앞에서 말했던 위대한 배우의 자질을 여러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반복적으로 제시하는데(무대에서 실제 그 사람과 그 사람이 맡은 역할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 같은, 즉 서로 구분되어야 하는 고유한 맥락들이 충돌하는 이중적인 상황) 그 과정에서 배우의 자질 뿐만 아니라 무대와 거리, 희극과 비극, 배우와 관객의 성질과 그 차이 등이 드러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사회의 무언가가 무대의 무언가로 옮겨지면 그것에 대한 평가가 뒤바뀐다는 점이었다. 감성, 진실이 그러한데, 1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눈물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눈물을 뽑아내는 말을 들으러 오는 것이고, 그런 자연의 진실은 관례적 진실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지.”(122p)

이러한 한계는 사회라는 양식, 무대라는 양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그는 각 양식에서 드러나는 재능이 서로를 훼손하지 않고자 이러한 한계가 설정된 거라고도 말한다. 이는 픽션과 실제를 가르는 이유와도 같다. 소설의 문어체를 실제로 말하면 어색한 경우가 있고, 실제 대화의 말을 소설로 옮기면 소설 같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자연 상태의 인간보다 뛰어난 게 극작가, 극작가보다 뛰어난 게 배우라고 말하는데, 이는 극작가까지가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배우는 본인이 느끼지 않고서 사람들한테 느끼게 해주는 감성의 모방자이기 때문이며, 결국 인간은 죽음이란 막이 내려오기 전까지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1과 2의 대화는 첨예한 논쟁이라기 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풀어놓는 대화에 가깝다. 외부 상황에 의해 대화가 중단되기도 하고, 결론 없이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도 하며, 혼자 둘이 되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대화의 자기분열), 어떨 땐 혼자 생각하느라 상대방의 말을 듣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대화가 교훈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픽션이라기 보다 18세기 프랑스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 재미가 있다. 후기작인 만큼 디드로의 여러 작품들이나 논증들이 충분한 설명 없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디드로를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각주가 정말 많아서 이해하기도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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