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 지음, 이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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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구원 / 한병철

문장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접할 때마다 자유로움과 고양감, 한계 없음, 선명함, 나 자신의 작아짐을 느끼곤 한다. 그렇게 미의 현현에 압도되는 와중에도 그것들이 어떻게 기능하고 감각될 수 있는 건지, 그것들에 숨겨진 함의는 무엇인지가 궁금해서 미와 미학을 알아보기 위해 서점을 거닐다 이 책을 만났다.

한병철은 오늘날이 긍정사회이며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사회이기에, 미도 긍정성으로 소비된다고 전제한다. 그는 미가 긍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부정성과 결합하는 속성을 지녔는데, 이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근대사회에서 미(긍정성)와 숭고(부정성)가 분리되었고, 오늘날엔 숭고마저도 긍정성으로 환원되었다고 지적한다(이 점이 내가 예상하던 미와 미학과는 다른 부분이라 흥미로웠다). 그래서 오늘날의 미는 주체의 만족을 추구하기만 할 뿐이라고. 이런 비판이 책 내내 다양한 개념의 대비(정보-지식, 애로틱-포르노그래피, 기억-데이터, 사진-영화, 디지털 미-자연미, 미술관-축제, 별-재앙, 동일성-비동일성)로 전개된다.

한병철은 근대의 철학자 칸트와 헤겔(그들의 한계였던 주체와 이성의 우월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미의 부정성에 주목하던 현대 철학자 아도르노, 하이데거, 블랑쇼 등을 불러서 미를 재조명한다.

미는 고통에서 온다. 고통은 부정성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경험이다. 경험을 통해서 주체는 주체의 위치를 내려놓고 객체와 타자를 볼 수 있으며 타자와 연결되고 화해할 수 있다. 그것이 미다. 그래서 미는 단순한 아름다움에서 그치지 않고 윤리와 진리,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찰나가 영원이 되고 순간이 머무름이 되어 인간과 인생의 한계를 허문다.

문장이 현학적이고 시적이라서 읽는 내내 즐겁게 밑줄을 쳐가면서 읽었다. 인용된 철학자들의 문장도 시적이라서 철학자들은 다 시인이구나 생각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미의 복고운동을 주창하는 듯 오늘날을 가열차게 비판하는데, 2016년작임에도 최근의 숏품 문제까지 아우를 정도로 비판이 워낙에 날카로워서 오늘날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대하게 하나, 그런 부분은 ‘구원’이라는 단어로 모호하게 처리되어 아쉽기도 하다.

철학자의 ‘긍정’사회라는 말은 ‘무비판적인’ 사회라고 수정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부정사회이자 긍정성이 귀해진 사회이기 때문이다(사회가 이 모양인데도 불구하고 긍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내적인 비판을 통해 긍정성을 추구하기로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체의 만족에만 만족하게 된 것은 구조적인 면이 큰 듯하다. 집단과 권력이 여전히 교묘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단과 권력, 타인에게 지쳐버렸고 겨우 나 자신이라도 지키기로 마음먹은 상태다. 지킬 수 있는 최전선은 나 자신이며,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보상은 만족이다. 만족에만 만족하는 현대인보다는, 만족에만 만족하게 만드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보충되어야 할 듯 하다. 그래야 철학서가 현재성을 띨 듯하다.

또한 오늘날의 예술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할 테니(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를 주목한 듯) 그런 부분의 이야기도 만나고 싶다. 그의 비판하는 관점이 나의 관점과 상당히 일치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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