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동정탑 -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구단 리에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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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주쿠 교엔 한복판에 교도소 탑이 세워질 예정이다. 명칭은 '심퍼시 타워 도쿄'. 그곳에 수용되는 범죄자들은 동정받아야 할 사람을 뜻하는 '호모 미세라빌리스'로 불릴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소설이 도심 내 교도소 건설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인 소설 같은데… 자세히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범죄가 개인의 됨됨이가 아니라 사회구조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범죄자는 동정 받아야 한다는 뜨거운 논쟁 아래 그와는 좀 많이 다른, 건축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보다 자세히 말하자면 미래를 염두하고 설계하는 ‘건축’과, 사유의 건축물인 ‘언어’를 끊임없이 이어붙이려는 이야기이며, 인공지능마저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독백의 시대, 그러나 누구도 누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소음의 시대에 말이 갖는 이중성과 위험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어쩌다보니 아쿠카타와상을 두 권 연속 읽었는데 둘 다 뭔가 인물이 비틀려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물론 이 소설은 비현실적이고 비약적인 전개, 독특한 사유와 고집스러운 철학, 의식의 흐름 전개와 모호하고 환상적인 서술, 희미하면서도 강렬한 상징들로 인해 이야기 자체가 어렵다. 인물들의 언어가 처음엔 다르지만 나중엔 죄다 비슷해져 작가라는 신이 너무 잘 보인다는 한계도 존재한다(AI를 사용해서 썼다는 사실이 밝혀져 수상 직후 논란이 되었는데 소설 내에서 AI가 비판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그다지 분량도 없어서 문제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묘하게 문장이 술술 잘 읽히며 강렬하게 전달하는 게 있기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래부터는 내가 이해한 걸 바탕으로 전개한 줄거리다.

‘심퍼시 타워 도쿄’. 왜 그렇게 부를까? 서른 일곱의 성공한 건축가인 마키나 사라는 어렸을 적엔 수학천재였지만 언제부턴가 자신의 지배욕을 견디지 못하고 건축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건축이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하며, 자신에게는 미래가 보인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녀는 심퍼시 타워 도쿄(가칭) 건축 설계 공모에 출전하기 위해 신주쿠 교엔 근처, 탑이 들어설 곳이 보이는 호텔에 숙박하며 스케치를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샤워를 하다 문득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녀는 말이 곧 현실이 된다고 믿고, 외래어를 표기하는 가타카나가 일본인이 일본어를 버리려 하는 증거라 여기고 경멸하며, 머릿속의 검열관에 의해 차별의 말을 과하게 삼가하려는, 언어에 있어서 예민한 타입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명칭은 명칭이고, 설계는 설계대로 하면 된다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명칭이 자꾸 걸린다.

어떤 건물이 지어질 이유에서 가장 앞서 놓이는 것은 그 건물에 살 사람이다. 여기서 그들은 바로 범죄자, 아니 호모 미세라빌리스다. 이 용어는 사회학자이자 행복학자인 마사키 세토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의 책 <호모 미세라빌리스, 동정받아야 할 사람들>에서 범죄가 개인의 인격이 아닌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중첩적이고 연쇄적인 고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범죄를 저지른 그들이 사실 최초의 피해자였을 거라며 동정받아야 할 인간으로 규정하며, '범죄자'라는 말이 가진 차별성을 배제하고자 호모 미세라빌리스라는 말을 생각해낸 것이다. 반대로 도덕적이며 행복한 사람들을 '호모 펠릭스'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호모 미세라빌리스를 동정할 것을 촉구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고 그는 믿는다.
그렇게 섬세하게 그곳의 거주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생겨났으니, 그 거주지 또한 색다르게 불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마키나 사라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떠들썩한 논란 끝에 지어진 도쿄 국립경기장을 보게 된다. 저녁놀에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빛나는 국립경기장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자신만의 강박적인 언어적 사유를 통해 바라보자, 그 경기장이 질문을 하고 있으며 북쪽 공원 일대에 세워질 그 탑이 그 해답이 될 거라는 생각에 미치고, 그 해답을 내놓을 사람이 자신이어야만 한다는 필연성을 떠올리며 드로잉을 시작한다.

다쿠토는 아름다운 외모와 옷차림 덕에 우연히 마키나 사라에게 호감을 사게 된다. 거짓말에 한번 올라타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줄어든다고 믿는 다쿠토는 자신이 고급 의류점에서 일하지만 가난하게 산다며 집세를 밝히기도 한다. 그는 올림픽이 인류의 평화, 인간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고, 올림픽에서 치러지는 스포츠 경기는 그를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못한다. 현대가 경쟁이라는 태그를 덧씌움으로써 지워버린 올림픽-평화의 연결고리를 감각하지 못한다. 또한 건축에 어떤 의미가 깃든다는 것, 언어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에게서 자꾸만 이상하게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결핍과 그림자를 본다.
그는 호텔에서 그녀가 노트북에 띄어놓은 건축 공모안에서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도쿄도 동정탑'?이라고 바꿔 말한다. 그의 말이 자신이 여태껏 고민하던 명칭에 대한 해답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탑이 세워지면 그 안에서 새롭게 바뀌어야 할 명칭들(교도관 같은)을 고민하다가 자신이 만든 언어의 감옥에 갇힌 듯한 행동을 보인다. 그는 그녀의 행동을 동정하며 막아선다.

저녁을 후에 그들은 교엔 산책에 나선다. 술에 취해 겁 없이 여기저기 활보하는 그녀를 따라가면서 나누는 대화는 그의 생각을 바꿔놓는다. 그녀가 추한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장악하고 싶은 지배욕을 가졌으며(그 때문에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끊임없이 믿고 그 비전을 마치 '답을 확인하듯'(102) 따라가기에 미래를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교엔으로 진입한 그는 공간과 자신의 관계성이 역전된 것 같은 기분, 그리하여 자신의 언어와 사유가 이 공간에 치환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는 낮에 도쿄도 동정탑 건설 반대 시위 현장이었던 곳에 놓여있는 여러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호모 미세라빌리스, 그들의 행복을 위해 탑을 짓는 게 인류의 평화 평등을 위한 길일까 묻는다. 타워의 명칭에 대한 해답은 찾았으나 거기에 살 사람들에 대해선 해답을 찾지 못한 그녀, 자신의 의견이 차별적인 발언이자 상처가 될 거라며 경계하던 그녀는 일순간 이곳에 도쿄도 동정탑이 들어선 듯한 묘사를 마치 질문에 답변하는 AI처럼 끊임없이 내뱉기 시작한다. 그 언어에 기겁하다가도 어느 순간 설득되어 마치 지금 눈앞에 도쿄도 동정탑이 세워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 다쿠토는 그 건물이 ‘압도적인 파괴’(111)임을 느끼지만 그것에 집어삼켜지고 만다. 그리고 마키나 사라가 자기 자신을 두 팔로 끌어안은 듯한 자세로 누워있는 걸 발견한 순간, 환상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거대한 탑이 모래로 뒤바뀌며 무너져내린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중반부다. 이후로는 4년후, 탑이 지어진 2030년으로 건너간다.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판 받는 미국인 삼류 기자 맥스 클라인은 지상 71층짜리 원기둥 타워인 도쿄도 동정탑 취재를 나가 그곳의 서포터(교도관)로 일하는 다쿠토와 대화를 나눈다. 360도 어느 방향이든 입장가능한 자동문, 자연광이 가득 들어오는 창문 등, 안과 밖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게 설계한 마키나 사라의 의도가 엿보이는 공간을 참을성 있게 잘 살피던 맥스 클라인은 70, 71층의 도서관에서 자유 복장으로, 남녀 구분 없이 평화롭게 생활하는 호모 미세라빌리스를 보며 결국 격노하게 된다. 범죄자 안락사 계획 등의 도쿄도 동정탑에 관한 음모론을 늘어놓고, 행복 증진을 위해 비교하는 등의 부정적인 말이 금지된 이 공간이야말로 예쁜 거짓말을 잘 하는, 진심을 능숙하게 숨기는 일본인들의 태도가 담겨있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리고 심퍼시 타워 도쿄라는 정식 명칭이 있으면서 도쿄도 동정탑으로도 부르며 언어적 혼란을 초래하고 언어를 무한히 생성하면서 감추려는 게 뭐냐고, 일본인이 일본어를 버린다면 무엇일지 묻는다. 그 질문에 AI를 활용하기까지 하며 답변해보려던 다쿠토는 결국 그녀, 설계자인 마키나 사라를 만나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쓰인 기사를 검토한 다쿠토는 맥스 클라인에게 수정사항을 보낸 뒤에 마키나 사라의 전기 쓰기에 몰두한다. '같은 것을 보는데도 전혀 다른 생각'(138)을 하는 인간들에게 재미를 느끼면서도 만일 다른 누군가가 마키나 사라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늘리는 말을 할까봐 그 전에 자신이 전기를 써야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맥스 클라인의 비난을 떠올리다 자기도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진 그는 70층 도서관의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 마저 전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득 도쿄도 동정탑 개축식날 등장해 축사를 한 사회학자 마사키 세토가 부정의 말을 잊어버리라고 주창한 것과, 그가 그날 집 마당에서 살해당한 일, 그 살해자가 했던 증언-마사키 세토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아서 그랬다는-을 곱씹는다. 시간이 늦었다는 걸 깨달을 즈음 지진인지 모르는 충격, 혹은 현기증을 느끼며 주춤하다가 순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 순간 전화가 온다.

그 전화는 마키나 사라의 전화다. 도쿄도 동정탑이 지어진 뒤 건축 일을 그만두고 종적을 감춘 그녀는 여전히 동정탑이 보이는 호텔에 칩거하고 있다. 그러나 다쿠토가 "가끔은 살아 있는 사람과 말하지 않으면 노이로제에 걸린다"(159)며 맥스 클라인과 인터뷰를 성사해준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인류의 평화나 존엄에 진지하게 관심이 없었으며 그저 누구에게도 그 일을 양보하고 싶지 않아서 임했을 뿐이고 결국 자기는 비난 받아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러고 앞으로 건축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영어 인터뷰가 번역의 다리를 건너다 왜곡되지는 않을지 AI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다가 영원히 반복되는 듯하면서도 무력한 말에 대한 피로함과 지겨움을 느껴 밖으로 나가 저녁을 때운다.

비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우중충한 저녁, 그녀는 탑을 바라보며 예전의 국립경기장이 그랬듯이 이번엔 탑이 질문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 답이 무얼지 헤아리며 다가간 탑 입구에는 수많은 경비원과 경찰들이 서있다. 다쿠토에게 전화한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고 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한 뒤 전화를 끊는다.

그녀는 탑을 올려다보며 탑의 미래-전에는 그것이 앞으로 이 도시에 미칠 영향을 상상했다면 이번엔-그것이 파괴될 미래를 상상한다. 건축물처럼 비바람이 치는 와중에 두 발로 땅을 디디고 수직으로 서 있는 자기는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상상한다. 그러다 생각을 바꾸어 곁을 지나가던 남자가 지금 자신을 영원히 서 있는 동상으로 만들었다고 상상하기 시작한다. 두 눈으로 탑을 바라보는 마키나 사라 동상은 뭐라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으나 자신을 가리키는 수많은 손가락들을 의식할 것이다. 그러는 채로, 영원의 끝이 도래하기까지 탑이 건네는 질문의 답을 생각하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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